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이 Dec 24. 2021

고꾸러지고, 떨어지고, 산산조각 났다가 다시 일어서서

2021년 아포피스와 함께 하는 개인 회고글

곧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는 아포피스의 굿즈 사진 입니다.


2021년에 대한 회고 글이자, 아포피스에 대한 글.
항상 독백 어투로 쓰던 회고글을 이번에는 뭔가 누군가에게 정말 전한다고 생각하고 쓰고 싶습니다.
왜 그럴까요? 누군가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 건지, 이유를 확실하게 제시하기엔 부끄러워서. 잘 모르겠다는 말로 대충 뭉그러뜨리고 싶네요.

이건 저의 2021년 회고 글입니다. 개인적인 글이라 조금 불친절할 수 있습니다.

저는 프리랜서 서비스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고, 

사실 그 말이 무색하게도 지난 1년 저는 아포피스라는 서비스만을 했습니다.
아포피스의 총괄 PM이자 서비스 내의 스토리 작가, 그리고 챗봇 시나리오 작가로서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포피스는 맨 땅에서부터 제가 팀원들과 함께 만들고 있는 앱 서비스입니다. 사실 2021년 회고 글을 쓰려고 해도, 아포피스 밖에 안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포피스 얘기를 쓰게 됩니다. 지난 1년이 그랬습니다. 아포피스가 조금이라도 세상 밖에 나오기 전까지 타인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삶에 가장 중심에 있는 걸 피하면서 말을 하고 글을 쓰려고 하니까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고 글도 써지지도 않더라고요. 결국 2021년을 아포피스의 베타 서비스와 크라우드 펀딩을 열면서 마무리를 하게 되네요. 조금 망설여지지만, 이제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번 털어놔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포피스는 일주일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세계관 속에서
가상의 인물과 실제 7일 동안 채팅 형식으로 함께 유서를 써보는 앱 서비스입니다. 


아포피스의 시작은 2012년의, 그리고 2020년의 죽음이었어요. 제가 죽음을 처음 진지하게 생각해봤던 과거의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가 어느샌가 희미했어요. 2012년에 사람은 정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구나를 처음 느꼈고.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하고 싶은 걸 하자고. 그 죽음을 원동력으로 절박하고 힘차게 살았었는데, 너무 긴장감 없이 오래 사니까 그런 힘이 다 시들해져 버린 것 같았죠. 


그런데 2020년 2월 어렸을 때부터 저를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쩌면 정말 처음 맞이하는 실질적인 죽음. 할머니의 차가운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보면서 죽음이, 아니 정말 삶이란 뭔지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를 계기로 과거에 저에게 존재했던 죽음을 다시 끌어올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그리고 제 안의 질문들과 욕망들을 모두 쏟아붓기에 바빴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죠. 죽음은, 또는 삶은 무엇이냐고요. 그런 것들에 대해 타인들과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뭉치고 뭉쳐서. 죽음을 가정하는 일주일 동안의 거대한 챗봇인, 아포피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맞아요. 저를 참 많이 닮아있는 서비스입니다. 그래서인지 멋지고 짜릿한 순간도 많았지만, 그것들을 집어삼킬정도로 큰 어려움과 숙제에 부딪히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IT 서비스든 뭐든, 팀이란 건 모두와 함께 하는 순간 서비스는 결국 팀원 모두의 것인데, 제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으니 당연히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사실 이제야 속 시원하게 말하자면, 현실적으로는 20대 후반의 중요한 1년을 사실 꽤나 거하게 날려먹은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저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 졸업과 취업을 할 때 또는 저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연차를 쌓을 때. 저는 아포피스의 스토리보드를 정리하거나, 챗봇에 들어갈 글을 쓰거나, 회의 준비를 하거나, 많으면 일주일에 6번의 회의를 하거나, 팀원들에게 전화를 돌리거나, QA를 하거나, 발표 준비를 하거나, 발표를 하거나,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마다 여러 책을 찾아보거나, 플롯을 짜는 법을 연구한다거나, 사람들을 인터뷰를 하거나, 굿즈 제품 사진을 찍거나.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하거나. 했으니까요.

처음엔 너무 즐거워서, 그다음엔 내가 다 쏟아붓지 않으면 완성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다음엔 지금 쏟아붓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그다음엔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보고 싶어서, 그다음엔 함께 해주는 팀원들에게 너무 고마워서, 그다음엔 오기가 생겨서, 그다음엔.. 그다음엔... 그다음엔 뭐였더라... 누군가 그렇게까지 하라고 한 적 없지만 어떤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가게 되는 걸 막지 못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BM도 없고 리텐션도 없는 서비스를 이렇게까지 하는 것. 이런 건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 죽음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으니 나 자체까지 불안정해지거나, 온갖 현실의 불안감에 잡아먹힐 때도 있었고. 혼자 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몇십 번을 고꾸러지고, 떨어지고, 산산조각 났다가 다시 일어서서, 기어올라가서, 조각들을 이어 붙이는 것을 반복하다가 지금까지 왔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포피스의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크라우드펀딩 오픈 전이기도 하고요. (당장 크라우드 펀딩 완료하고 완성된 프로덕트를 릴리즈 하는 것이 남아있긴 하지만.) 아. 그리고 저의 미래도 말이죠.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어도 돌아오는 답이 없네요. 내년 열심히 살아야지 하...

그리고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을 지나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 그거 하나만이라도 손에 꽉 쥐고 이번 해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삶은 항상 어떤 것에 열의를 다하는 만큼, 딱 그만큼 얻어가는 게 있으니까요. 제가 여기에서 그만큼 얻었는지에 대해는 나중에 차차 알게 되겠죠. 만약에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웃어넘길 예정입니다. 구석구석을 돌아봐도, 조금 더 잘해볼걸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자체로 후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포피스에 함께 골몰하던 분들에게 고맙다고도 전하고 싶습니다. 훗날 제가 어떤 걸 하고 있더라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가요?
마지막으로 진심을 다해 어떤 사람을 껴안아 본 적은 언제인가요?
스스로에게 어떤 친구인가요?

아포피스에서 던지는 질문들이 아직 저에게 해결되지 않은 걸 보면,
가장 아포피스가 필요한 사람은 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1년 동안 만들었던 서비스, 아포피스가 텀블벅 공개 예정 프로젝트에 올라왔습니다.
알림 신청을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추후 크라우드펀딩과 베타 서비스 관련해서 가장 빠르게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아포피스 공식 오피셜 계정입니다.
여러 아포피스 소식들과 죽음에 대한 타인의 인터뷰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apophis.iscoming/








<함께 써 내려가는 삶의 마지막 대화. 아포피스 제작 일기 시리즈>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재밌게 읽으셨다면, 구독/좋아요/댓글로 마음을 건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화 _ 처음 마주했던 죽음을 기억하나요?


2화 _ 점에서 선으로 뻗어나가면 세계가 되는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점에서 선으로 뻗어나가면 세계가 되는 게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