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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Apr 05. 2023

오마카세 대담, 자격이 부족하다면 헌신으로 대신해라.

IT 스타트업 창업, 떨어지는 낙하산에서 비행기 만들기 1

합류한 성곤


오늘은 성곤이가 팀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는 날이었다.
사실 성곤과 형민이 항상 함께하긴 했지만 이제 정말 풀타임으로 함께 일하게 된다.
성곤은 기존에 다니던 회사가 있었고, 그를 일부분 정리하고 팀에 합류했다.


형민도 성곤도 그리고 나도 안정적일 수 있는 부분을 일부분 포기하고 세 명이 만들어나갈 가치에 과감하게 베팅을 했다.
물론 나 또한 내 소중한 20대 후반을 걸었지만.
두 친구가 얼마나 큰 걸 포기했는지, 또 그렇기에 얼마나 큰 걸 얻고 싶을지.
그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내가 이 친구들을 위해 뭘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장 잃을 게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두 친구는 나보다 잃을 게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함께 좀 더 멀리, 더 높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



사실 형민 성곤과 삶의 일정 시간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서 업을 함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도 가끔 셋이 있을 때 불현듯 어쩌다... 이 친구들과 삶의 일부분을 함께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친할 수 없던 부류의 사람들이었고, 그렇기에 친해질 것이라고조차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둘 다 너무 약간... 건달 같았다. 또 그 둘에게 나는 사회성 부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성인이 되고 내가 편협함을 고수하지 않고, 세계를 확장한 덕분에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행운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함께 다양한 고난을 겪으면서 정말 많은 삶을 나눴다.
어쨌든 성곤은 누구보다 첫 출근이 기분이 이상했을 테지만 잘 티를 내지 않았다. (조금 덤덤한 그 친구 특성상 기분이 이상하지 않았던 걸지도.)

3층으로 올라가 탁 트인 복도에서 남산을 보고, 우리 사무실 문을 열자 이제 3명이었다.
2명이 아닌 3명. 딱 한 명이 더 늘어났을 뿐인데 팀 같은 느낌이 더 들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형민과 나는 왜 이사회가 3명으로 구성되는 줄 알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2명이 팀이라면 개인 대 개인의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3명부터는 오고 가는 의견을 조율하는 무게감이 다르고, '팀'으로서 서로 긍정적인 긴장감이 큰 폭으로 올라간다. 확실히 관계 안에서 힘의 분리라는 것이 잘 이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팀의 인원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관계 속에서 힘을 나눠가지게 되겠지. 그로 인한 역동성이 계속 시시각각 달라질 텐데 그때마다 그런 에너지를 느낄 것을 생각하면 기대가 된다.




회의 노션


처음 3인 체제로의 루틴을 만들기 위해 장기 회의를 했다.
성곤은 자유와 음주가무를 좋아하지만, 극도로 효율성을 추구하고 또 든든한 재직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오자마자 근태 관리를 제안하고 사무실 구조를 바꿀 것도 제안했다.
이외에도 다 같이 근무 형태에 대한 정리, 1분기에 대한 회고, 2분기 OKR과 MVP 아이템을 선정할 기준에 대해서 3시간에 걸친 회의를 했다.








그리고 성곤이 합류와 그로 인한 3명의 완전체 기념으로 오마카세를 갔다.
녹사평 경리단길 쪽에 있는 초승달이라고 하는 오마카세였는데, 꽤 맛있었다.
높은 도수의 전통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몇 가지 생각나던 것은 이렇다.




성곤 "우리는 이제 한 명이라도 아프면 안 돼. 3명이 모두 주축이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번아웃 오면 망하는 거야. 일은 열심히 한다고 해도 너무 자신이 지칠 것 같은 일이면 과감하게 그만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야 해. 이제 우리 정신과 몸은 개인의 정신과 몸이 아니야. 세 명의 공동 소유야. 최근 몸이 안 좋은 형민을 위해 진지하게 내가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했어. 홍삼 먹니?"

형민 "아니 홍삼 몸에 안 맞아."

성곤 "나도 안 맞긴 하더라. 그래서 선물 받아서 안 먹는 홍삼 줄까 했지."


성곤 "우리 팀은 어떨까? 우리 팀은 스포츠 팀 같으려나? 아니면 가족 같은 팀?"

수연 "난 가족 같은 팀은 반대야. 가족 같은 팀이 있을 수 있나? 더군다나 진짜 솔직히 가족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도 않아. 좋은 가족 경험을 했어야 가족 같은 팀을 만들지."

형민 "난 스포츠 팀은 반대야. 고등학교 내내 스포츠 선수였는데 스포츠 팀 진짜 거지 같아."


수연 "스포츠 팀이라고 하기엔 너무 극단의 성과 중심이고 친구 같은 팀이라고 하기엔 목표가 부재하네. 그 중간 지점의 단어가 필요해."

형민 "팀원의 개인적인 영역까지 스킨십이 많은 팀일 것 같아. 수연이 대표니까."

수연 "난 어쨌든 극단적인 투명성이 유지되는 팀이면 좋겠어."

성곤 "그게 좋긴 하지. 그런데 확실히 극단적인 투명성이라는 건 어떤 세상의 이치에서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모두에게 설득하려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

수연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그게 가능한 이상적인 팀을 만들어나가고 싶어. 서로의 약점을 잘 알고, 그걸 서로 함께 커버해 줄 수 있는.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경영진끼리 어렸을 때 트라우마나 힘들었던 기억까지 모두 공유한대. 그러면서 가지고 있는 심리적 장벽이나 약점들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런 요소까지 함께 대처하면서 모든 걸 만들어가는 거지."

성곤 "토스가 진짜 대단한 것 같아. 조직이 커지는데도 조직문화를 정말 잘 지속하고 있잖아. 조직 크기나 비즈니스가 스타트업이 아닌데도 정신은 계속 스타트업 정신을 가지고 있는 거지. 아직도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아냐.'라는 정신이 조직 전체를 관통한다고 하더라고 정말 대단해."

형민 "이런 대화 좋다. 브랜딩이잖아. 외부 고객보다 내부 고객이 더 중요하다니까. 이런 대화를 많이 해야 해."



"홍삼 먹니?" "아니"



이런 대화를 하면서 중간중간에는 여느 때와 같은 서로에 대한 극딜, 음식이 맛있다, 술이 도수가 세다.라는 말이 섞여 들어갔다.
그러다 음식을 모두 다 먹고 후식 파르페를 먹는 동안 문득 몇 개의 질문이 생겼다. 그중 하나를 골라 형민과 성곤 모두에게 던졌다.


수연 "나에게 올해 기대하는 바가 있어?"

사실 질문을 하고 답을 받기에는 꽤나 긴장이 됐다. 아무리 서로에 대해 숨김없이 보여주고, 피드백을 솔직하게 많이 주고받는 사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드백을 받을 때 긴장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니까. 서로 너무 잘 알고 있기네 몇몇 피드백은 가끔씩 폐부를 찌른다.

형민 "사람을 조금 더 잘 다루면 어떨까 싶어. 상과 벌이 명확하다든지. 좀 더 영악했으면 좋겠어."
성곤 "외부에서 멋진 우리 대표님.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 뭔가 우리 팀 특성상 우리가 좀 만만해 보일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더 자랑스럽고 든든했으면 좋겠다고 해야 하나."


해준 말들이 내 속에 많이 남아서,
오마카세 가게에서 나와 오랜만에 시원하게 비가 내려 붓는 이태원을 쭉 걸을 때에도 계속 되뇌게 되었다.
사실 그 말들 때문에 갑자기 이 글을 쓰게 되기도 했다.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1. 형민이 했던 말에 대한 생각,
나는 팀 안에서 일과 개인적인 부분을 넘나드는 정서적 스킨십을 자주 하면서 리딩하는 것을 주로 하는 편이고, 이게 내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했을 때 팀원들이 팀에 대한 애정도 느끼고, 유대감이 생기고, 각자의 개성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팀이 된다는 것을 여러 차례 느꼈다. 팀 안에서 팀원들이 심리적 안정성, 그로 인해 파생되는 투명성 등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그게 충분히 섞이면서 발현되면, 서로를 존중하는 개인들이 모여 다함께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또 엄밀히 말하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주로 리딩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의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금전적인 보상을 충분히 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다른 형태의 보상 요소들을 잘 배치해야만 느슨해지지 않는다. 나는 그러한 다른 형태의 보상을 재미, 개성 있는 개인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팀, 함께 무언가를 했다는 성취 등으로 삼았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만 하는 팀에서는 내 기존의 방식이 부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제까지 했던 방식은 확실히 사람을 다룬다기보다는, 사람들을 그저 팀 안으로 계속 감싸 안기만 하는 것에 가까울 수 있다. 형민이 말한 부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표인 내가 액션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이전에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확실한 목표, 책임, 그리고 그를 지속적으로 트래킹 하는 시스템, 결과에 따른 확실한 피드백과 확실한 보상. 체계가 잘 세워져 있어야만 그걸 기반으로 내가 더 영민하게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쪽을 조금 더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계와 동기부여가 어떻게 하면 함께 잘 맞물려 갈 수 있을지. (그런데 물론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에서는 체계를 완벽하게 세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고, 대표의 직관에 기반한 그때 그때의 보상 리액션이 더 필수적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도 염두해둬야 한다.)




2. 성곤이 했던 말에 대한 생각,
확실히 이제는 우리 팀과 내가 외부와의 접점이 많아지고, 다양한 갈래의 조언을 들을 기회가 많아졌다. 그래서 나 또한 최근에 어떤 것이 나를 휩쓸리지 않고 더 단단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많았다. 내 생각엔 그게 치열함인 것 같다. 내가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치열한 과정을 거쳐서 배출된 것들이 많을수록 어떤 '핵', 또는 '알맹이' 또는 더 바꿔 말하면 '신념'이나 바뀌지 않는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다. 내가 뭔가를 더 많이 삼켜서 나만의 정신과 몸을 통과시켜서 내놓는 게 많을수록. 내가 아무리 겸손하고 친근하게 군다고 해도 그 치열함은 티가 나기 때문에 만만해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고. 결국에 이제까지 나의 치열함의 부재가 나를 조금 더 물렁하게 보이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치열함이 필요하다. 더 많이 치열한 사람들만 가지고 있는 그런 단단함이 있다. 나는 이제 그걸 가져야 한다.







오늘 전까지 요즘에 내가 너무 부족한 대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많았다.
자기 의심은 내 고질병이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어떻게 안 부족할 수가 있을까?
그러한 내 생각에 스스로 답변을 하고 싶었던 건지, <언카피어블>에서 읽었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헌신이 자격을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배웠다."






Action Plan

1. 어떻게 하면 조직의 보상/책임 체계와 동기부여가 잘 맞물려갈 수 있는지 배워야겠다. 책을 찾아보자.
2. 치열함을 가지자. 치열함에서 오는 단단함, 반짝거림을 획득하자.
3. Self Doubt killed more dreams than failure ever will.
    자격이 부족하다면, 헌신으로 대신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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