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해하지 말고 하루라도 너로 살아갔으면 해.
불안, 증명해내지 못하면 죽을 것만 같은 기분, 조급함.
나는 꽤나 오랫동안 이러한 감정들과 친하다.
딱히 친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너무 익숙해서 나도 모르게 친해져 있는 소꿉친구 같다고나 할까.
정신 차려보니 지난 3년을 했던 창업이 끝나있었고, 나는 이 불안이라는 친구들과 함께 어딘가에 덩그러니 서있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 실패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고, 길지도 않고, 금방 끝난다고 말했던가.
나는 결코 끝나지 않는 실패의 가운데에 있었다. 겨우 버텨내는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이 시기가 지나면 나도 실패가 그다지 길지 않았다고,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고 말하게 될까? (잘 모르겠다.)
어떤 아침이었는지, 그날도 일어나서 무엇을 할지 몰라서 멍하게 침대에 앉아있었다.
불안과 조급함이 가장 지긋지긋하게 싫은 이유 중에 하나는 시야가 아주 좁아진다는 것이다.
뭔가 증명해내는 것이 마치 생존처럼 느껴져서, 그 이외에는 주변의 많은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들이켜본다. 일순간 주변이 멈추는 것 같으면, 다시 눈을 떠서 애써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다.
그때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시야의 끝에 걸렸다. 재작년이었나, 친구 4명과 연말 기념으로 다 같이 뷰티 숍에서 속눈썹 파마를 하고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사진이었다.
모두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그 사진 속에 정서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옷보다 더 하얀 얼굴로 웃는 정서. 정서는 나의 가족 같은 친구였다. 삶을 절반 넘게 함께 한 친구.
사진을 멍하게 보던 나는 뜬금없지만 정서가 분명 나에게 해줄 말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서 얼굴을 더 유심히, 더 가까이 들여다봤다.
정서는 평소에 그 어떤 걱정도 고민도 잘 없던 밝은 빛을 머금은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정서가 2년 전부터 많이 아팠다. 모든 일상을 중단하고 치료에 전념해야 할 만큼 병마는 정서의 삶에 불쑥, 그리고 깊숙하게 들어왔다.
"수연아 내가 장점이 뭐야?"
어느 아침에 뜬금없이 정서에게 온 메시지였다. 아무 맥락도 없이 불쑥 온 메시지가 정서다워서 킥킥거리면서도 아주 길게 정서의 장점을 보냈었다. 햇살 같은 사람에게 걸맞은, 할 수 있는 모든 묘사를 가져다 붙이면서 말이다.
"아, 고마워. 민망하네. 나 지금 취업 교육 듣고 있는데 질문이 나와서 너한테 물어봤어."
당시 정서는 한창 치료를 받을 때였는데, 취업 교육을 듣고 있다는 게 의아했었다.
그 이후로도 정서는 종종 '아 나는 치료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말을 했고 다른 친구들에게 취업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정서는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조금은 어두워졌고, 나는 그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치료를 하면서도 그 조급함은 정서에게도 찾아와 버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불안과 조급함이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라서 그런지, 그 감정들이 기어이 정서에게까지 찾아왔다는 게 정말 속상했었다. 정서만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었다. 이것이 나의 너무 큰 욕심이었을 수 있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정서를 보면서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었다.
괜히 정서의 그 감정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지나고 보니 나는 그때의 정서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를 너로 살았으면 좋겠어. 조급해하지 말고, 미래 말고, 너를 믿고 현재를 살았으면 해."
그리고 정서가 웃는 얼굴로 똑같이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