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여전히 갈급한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이 곧 현실을 이룬다.
마음PT 참여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보편적인 고민은 생존이다. 살다 보면 이런 질문이 튀어나온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일이 안 풀릴까?’
‘성실히 살아온 것 같은데, 왜 돈이 없을까?’
‘하고자 하는 일은 왜 늘 흩어지고, 결과는 따라주지 않을까?‘
‘어느 정도는 마음 다스리는 법을 알고 있고, 힐링과 명상도 해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왜 여전히 삶은 이토록 빡빡한가?’
불교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은 바’라는 뜻이다. 단순히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철학적 개념을 넘어, 이것은 실질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마음이라는 에너지의 파동이 곧 현실의 물질적 구조와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래서 아무리 외형적인 노력을 해도, 마음이 막혀 있으면 현실 또한 막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궁금함이 생긴다. 도대체 마음의 어디가 막혀 있다는 걸까? 뭐가 문제인 걸까? 불안함을 멈추려 애쓰지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시 불안으로 회귀한다.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쓰는 상태가 곧 문제다. 어떤 지점에 매여있어 에너지가 순환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본래의 자연스러운 에너지는 순환하는 특성을 지닌다. 여기에 좋고 나쁨은 없다. 다만 마음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흘러갈 뿐이다. 내가 바라는 바에 ‘집착’하면 에너지는 바라는 바가 아닌 집착으로 흘러간다. 이내 막다른 골목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바로 뭔가 풀리지 않는 듯한 느낌, 허우적거리는 느낌, 옴짝달싹 못하는 느낌 등으로 경험된다.
반대로 바라는 바를 붙잡지 않고 가만히 지켜볼 때, 에너지는 오히려 그곳을 향해 흐른다. 역시나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아주 섬세하고 균형 잡힌 힘. 이때는 뭔지 모르지만 수월한 느낌, 예상치 못했지만 최선의 흐름으로 인도된 느낌, 활력이 돋고 흥미로운 느낌 등을 경험한다. 만약 이 궤도에 올랐다면 적어도 방향성은 올바르게 설정된 것이다. 다음은 순풍에 돛을 달 차례다.
특히 돈이나 생존 관련된 주제는 무척 예민하다. 생계, 직업, 재산… 이 모든 건 단순한 이상향의 그림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삶의 구조이기에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나쁜가? 그렇지 않다. 돈을 추구하는 일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도 않다. 생존은 단지 생존일 뿐이고, 돈은 단지 돈일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어떤 에너지든 좋고 나쁨은 없다.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풍요다. 어쩌면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풍요를 원할 것이다. 다만 풍요를 추구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되면, 누군가가 먼저 손에 쥔 결과만을 바라보게 되고,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입맛만 다시는 모순에 빠진다. 갈급함이 클수록 마음은 조급해지고, 점점 거칠어진다. 어느 순간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다시 비교, 불안, 욕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다.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채워지지 않는 불만족을 일으킨다면 에너지는 또다시 거짓 오아시스를 향하게 된다.
자신이 상태을 직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계속 연습하고, 바라보는 태도를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풍요는 어딘가 특별한 바깥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미세하고 깊은 내면의 파동에서 비롯된다. 진짜 오아시스는 마음이다. 방향을 설정하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한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왜 나는 여전히 풍요롭지 못한가?” -> “나는 지금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