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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과 한여름밤 잘 건너 새벽에 도착하기

꿈꾸는 말들의 향연

by THE AZURE POET

유년의 기억과

한여름밤 잘 건너 새벽에 도착하기


김 민 휴


더위를 피할까 이겨버릴까

붓글씨를 쓰기로 한다

시간은

무료하고 심심하고 한심하다


한여름 밤

엄마는 누나들에게 노상

어두워지기 전에 밥 묵고

경치기를 해버릴 것을 지시했다


어둑어둑해지면

늘 덕석 두 잎이 펴지는 우리집 마당

흥응흥응흥응

즐거움인지 근심인지

콧타령을 하며 놀러오시는 명자네 할머니

이띠금

장언이 형네 엄마도 놀러오신다


엄마들과 누이들이 함께 앉아

귀한 부채로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기를 쫓아주며

더위를 쫓아내면


새로 지은 우리집

우리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기와집 서까래, 기둥, 마루에서는

솔향기기 퍼지고

세상은 온전히 고요하고 평회롭다


아부지는

반쯤 말린 쑥대를 안고와 모기불을 놓는다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좋다

초롱초롱한 별들,

동네입구 북쪽에서 만호바다 남쪽으로

마치 수백대의 비행기가

한꺼번에 날아가 생긴 비행운처럼

은하수가 하얗다

어른들은 여름밤마다

은하수가 작은모래미 잔둥에서

서쪽 오루골 쪽으로 틀어지면

가실을 한다고 하신다


모래미 잔둥 너머 만호바다에서는

논에서 나락을 베고

밭에서 콩 걷이를 하고

콩밭에 수수 목아지를 자르고

말 자지만한 이삭이 주렁주렁 열린

서숙을 뽑아 밭에 누일 때

풍성하게 잡혀줄

전어와 낙지들이 여름 내내

열심히 무럭무럭 크고 있다


불빛이란 것이 고작

엄마들이 오일장에 나가

대두병으로 한 병씩 사온 석우지름을

석우등잔에 붓고 심지에 붙여 밝힌 것이

전부이니 몇 걸음 밖에는 컴컴하다

별은, 자세히 들려다보면

별 뒤에 별이 있고, 그 뒤에 또 아득히 있고

뺀할 틈이 없이 하늘에 가득하고

은하수는 새하얗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학교서 배운 반달 동요노래를

막내누나가 부르니 그 위 셋째누나도

함께 부른다.


나는 별을 헤아린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엄마 셋 아부지 셋

...

별 하나, 나 하나, 엄마 하나, 아부지 하나.

큰형 하나, 작은형 하나, 큰누나 하나

셋째형 하나, 작은누나 하나, 셋째누나 하나.

막내누나 하나

(지금은 숭숭 구멍이 났지만,

그 땐 완전채였다)


오뉴월 뙤약볕 아래서

콩밭을 멘 엄마, 논을 멘 아부지는

곤하신지 조금 일찍

큰 방장을 쳐놓은 방에 들어가신다


낮에 동네 앞 큰방죽에 모여

비찌락대를 들고

손가락 틈마다 잡은 잠자리를 끼고


조쨍아 조오 ~ 암놈이나 조

조쨍아 조오 ~ 암놈이나 조

~~

~~

조쨍아~ 조쨍이~ 조쨍아 ~


(* 좆쟁아 줘 ~ 암놈이나 줘!

좆쟁아~ 좆쟁아~ 좆쟁아~)


불광잠자리 잠기를 실컷 한

동무들 중에는

이미 골아떨어진 동무도 있으리라


동네에는 증조할아부지나 할머니 몇

할아버지 할머니 여럿

아제 아짐인 엄마들 아부지들

형들 누나들

동무들 동생들 꽉 찼다

새신랑도 있고 새각시 새댁도 있고

아이들 울음소리도 사방간데서 들린다


음력 유월 보름달이 빼쭈쯔름

얼굴을 내밀고 중산 위로 오른다


동네 한 가운데 둥근 공터에서

이제 동네 처녀들, 새댁들이

강강술래를 시작하는 소리가 들린디


가아앙 가아앙 수우울래

달아 달아 빍은 달아 - 가앙 가앙 수울래

이태백이 놀던 달아 - 가앙 가앙 수울래

저기저시 저 달 속에 - 강강술래

계수니무 박혔으니 - 강강술래

금도끼로 찍어다가 - 강강술래

은도끼로 다듬어서 - 강강술래 ....


가동아짐은

이웃 우수영에서 시집와서인지

선소리를 잘하시는데

처음엔 고전틱하게

달에서 계수나무로 공예품도 만들고

방아를 찧어

부모께 효도하고 이웃에 나누어 주기도 하다가 ...

목포 가면 번쩍번쩍 한다는 전깃불 등

신문명, 신문물을 이용해

선소리 가사를 자유자재로 만든다


전기부야(불아), 전기부야(불아) - 강강술래

목포에 전기부야 - 강강술래

~~ ~ ~~


한여름 밤은 깊어갔고,

달은 중천을 향해 꼬박꼬박 오르고

우리는

깊은 한여름 밤을 그렇게

조각배, 쪽배, 종이배를 타고

강강술래를 타고

쑥대 연기기 모닥불로 모기를 쫓으며

옛 이야기를 들으며 건넌다


강강술래 소리가 집으로 돌아가면

밤은 태고적 잠잠함으로 깊어진다

혼자 남은 것처럼

더 희고 밝은 달은 마을을 순시할 채비를 하고

우리들은 한여름밤을 종이배에 태우고

쌕쌕 꿈꾸며

저 건너 또 한 개의 여름 아침까지

깐닥깐닥 간다

돛대도 삿대도 없이 ...


*****

그 땐 그런 생이 영원할 줄 알았다


어린시절 종이배를 타고

오늘도 어른들이 들려주었던 옛 이야기와

이 더운 한여름 밤을 건너야 겠다

가다가 예쁜 목소리로 함께 동요도 부르리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살살 떠다니겠지 ~


.

.

* 불광잠자리 잡기 : 어떻게 이런 섹시한 동요를

동네 한 가운데서 떼창을 하며

놀았는지...


암놈 불광잠자를 먼저 잡아

바느질 실 한 쪽을 발에 묶고

다른 한 쪽은 대막대기에 묶어

빙빙 돌리며

조쨍아 조오~ 구전 동요를 부른다

좆쟁이가 찾아와 맴돌다

둘이 흘래를 붙으며 물풀에 앉으면

비찌락대로 가만히 덮쳐 숫놈을 잡는다

잡은 잠자리는 날개를 손가락 사이에

차례로 끼워 뽐낸다

만약 먼저 암놈을 못잡으면

숫놈을 잡아 옆구리에

호박꽃 노란 가루를 칠해 암놈 흉내를 낸다


구전동요는 나의 시집

“구리종이 있는 학교”, 천년의 시작 간행에

채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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