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말의 세상, 꿈꾸는 말의 향연 - 김민휴의 시
초록 도토리
김. 민. 휴
신갈나무 도토리가 무럭무럭 크고 있습니다
이 도토리가 익어 떨어지면 또 가을이 오겠습니다
햇님도, 바람도, 새소리도, 고추잠자리 나는 소리도
다 멈춘, 맑고 높고 아련한 가을날
깊은 산속 오솔길에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는
뚝, 하고 부러지는 나뭇가지 소리만 못하지 않습니다
목련꽃이 지고나면 목련나무를 보지않는 사람
마음같이, 지금은 아무도
신갈나무 가지 사이에서 이렇게 도토리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줄 모르는 모양이지만
가을날 산길에 도토리들이 떨어지면
도토리 묵을 좋아하는 신랑을 둔 늙은 신부도 줍고
아빠, 엄마 산책을 따라나온 도토리 한 알보다
쬐끔 더 큰 조막손도 두 손에 가득 쥐고
처녀와 함께 운동 나온 강아지도 주워 입에 물고
다람쥐도 부지런히 주워 모아 곳간을 채울 겁니다
세상엔 들여다보면 아직 누구의 눈길도 이르지 않은
깨알같은 존재들이 부지런히들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