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말들의 세상, 꿈꾸는 말들의 향연 - 김민휴의 시
아침 안개밭을 지나며
김 민 휴
누가 저 주암호수에 안개 씨를 뿌렸나
기름같이 잔잔한 수면을 밀고 돋아나는
뽀얀 우윳빛 물안개 새순들
누가 저 단풍 물든 산자락 두른
주암호수 안개밭을 일구나
파릇파릇한 해남 배추밭이나 진도 대파밭 같은
하릇하릇한 저 주암호 안개밭
사용중지 된 내 다리와 목발을 싣고
사평들, 문덕, 고인돌 공원을 지나
아내는 불편한 나를 데리고
시간 반 거리를 달려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억새꽃 좀 봐, 물안개 좀 봐봐!
분홍빛 아내의 목소리는 안개에 섞이고
풍경은 나른한 내 감각을 벼린다
어느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위인이
돈 한 푼 안 되는 농사짓는 밭인가
뽀릇뽀릇 물안개 새싹 마구 피어나는
주암호 물 위 새벽 안개밭, 아침 안개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