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말들의 세상, 꿈꾸는 말들의 향연 - 김민휴의 시
안개 농사짓는 사람
김 민 휴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한 번 만난 적도, 멀찍이서 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있다고 믿지요
그는 부지런하고 밤잠이 없고 수줍음이 많은
안개 농사짓는 일, 한 가지만 하는 농부입니다
그가 안개 농사를 짓는 밭은 주암호수입니다
혹시 그는 배짱이일까요
여름내 호숫가 나무 그늘 밑에 풀집을 짓고
찌르르 찌르르 노래나 했던 것일까요
혹시 그는 삿갓 쓴 태공일까요
여름밤 호숫가에서 도둑낚시질이나 했던 것일까요
호숫물에 어리어 깜빡이는 별들을 낚았던 걸까요
주암호 지나가는 길에 억새꽃이 피면
그는 안개 농사일을 시작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안개 농사는 하루 농사이지요
아마 그는 매일 밤에 삐걱삐걱 노를 저어가며
물 밭에 촘촘히 안개 씨를 뿌리나 봅니다
하여간 그는 있습니다
정 궁금하면 새벽 일찍 나서서
대원사 - 고인돌 공원 - 주암호 갓길 둘러보세요
그가 지어놓은 멋진 안개밭에 가득한 안개 새싹이나
안개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운 좋으면
안개 나라에 갇혀 안개가 되어버릴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