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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ZURE POET Oct 15. 2015

안개 수확하기

상한 말들의 세상, 꿈꾸는 말들의 향연 - 김민휴의 시

안개 수확하기


                       김 민 휴

그는 매일 매일 안개 걷이를 하네요
조약도나 생일도 어부가 아침마다 목선을 타고
미역밭이나 다시마밭이나 굴밭에 나가듯이
아침이면 어김없이 주암호수 안개밭으로
햇살로 만든 배를 타고, 햇살 노를 저어 오네요

아침 햇살이 주룩주룩 쏟아지네요
산봉우리 사이로, 계곡 사이로, 숲 사이로
나뭇잎 사이로, 풀잎 사이로, 쑥부쟁이 꽃잎 사이로
강아지풀꽃 털잎 사이로 햇살이 들어가네요

햇살이 점점 불어나 풍경이 잠기고 있네요
무지개 같은 햇살 폭포가 생겨났나 봐요
바위틈이나 돌멩이 밑이나 낙엽 사이로
풀잎 사이로 흘러 들어간 햇살은 땅 밑으로 흘러
땅 밑에 햇빛 웅덩이를 만들지도 몰라요

호숫가 언덕 위 까만 산머루나 노란 개국화꽃,
쥐똥나무 위에 대롱대롱 매달린
하늘수박이 햇살 속에 둥둥 떠내려가고
안개밭 인근 마을과 이차선 지방도가
고대 수중도시처럼 햇살 속에 가라앉아요

그러는 사이 그는
아침 햇살로 만든 빗자루로 헉헉, 안개밭을 쓸어
햇살로 만든 배에 안개를 가득 싣고
삐그덕삐그덕 삐그덕삐그덕
피아노 음표 같은 은물결 사이로 사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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