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저어가는 삶을 위한 향연] - 김민휴의 시
아침에 비틀거리는 사람
김 민 휴
기도로 간청한 깨어날 시간보다 일찍 잠이 깨는 일은 정신을 힘들게 한다. 마법의 양탄자를 펼쳐 파고 들어가 겨울잠으로 자게 해달라고 소원한 밤, 잠결에 이미 깨어 있는 머리를 느끼는 한 밤중 마음은 고역스럽다. 한참 자고 있어야 할 영혼이 저도 모르게 깨어나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땐 몸의 무게가 천 근 만 근이 되지만 새털처럼 풍선처럼 용수철처럼 자리를 박차고 튀어올라야 한다. 뒷산 오솔길에 깔린 남은 어둠을 발로 차며 걷다보면 아주 조금 씩씩해지는 새벽, 오르막길 계단을 두 칸씩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걸어 얕은 산정에 오르면 소심한 가슴이 덜컹거린다.
새벽 산자락을 벗어나 비탈길을 내려오며 본다. 저 앞 아래 큰 길 쪽에서 어떤 사내가 비틀비틀 걸어 올라온다. 술에 취한 사람이다. 무슨 일일까, 이 훤한 아침에! 가까워지며 슬쩍 보니 작업복 점퍼에 김치 국물이 묻어 있다. 지퍼를 올리려 해도 곤란할 만큼 배가 부풀어 있다. 무얼 저렇게 먹었을까 다들 식전인 이른 아침에!
내가 아는 여동생 둘은 서로 언니 동생 단짝하며 컴퓨터부품제조회사에 다닌다. 이들은 새벽 7시 출근 저녁 7시 퇴근, 저녁 7시 출근 새벽 7시 퇴근을 반복한다. 가끔 이들에게서 듣는다. 이들은 직장 동료들과 새벽에 퇴근 하면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신다. 밤새 눈꺼풀을 들어올리려 애를 쓰고, 한 밤 중에 점심을 먹고,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부품 조립 반복을 마친 아침 퇴근 길, 삼겹살에 소주 몇 잔씩 돌려 마시는 것이다.
저 사내는 분명 밤의 노동자이다. 퇴근길이다. 벌써 환해진 이 새벽, 어쩌다 저렇게 과음한 것일까. 모처럼 작업반의 새벽회식이 있었던 것일까. 너무 피곤해 한 잔 하고 툭 떨어져 자려고 홀로 마시다가 아예 술에 몸을 적신 것일까. 각자 한 병씩만 하자고 시작한 술자리, 부질없이 과열된 논쟁이 과음을 부른 것일까. 철야근무 없는 노동을 꿈꾸며 희망의 침을 튀기다 풀이 꺾인 것일까. 비틀비틀, 저 사내는 별세탁소를 지나 비탈배기 마을 골목으로 힘겹게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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