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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ZURE POET Oct 02. 2021

영혼의 가지를 내어주는

영혼의 가지를 내어주는


 

어젯밤에는 동쪽 하늘에 크고 둥근 한가위 달이 떠올라서 희망 많고 절망 많은 사람들,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들 저마다 소원을 빌었습니다

 

저 새벽 흰 달은 지난 밤의 소원을 힘겹게 짊어지고 밀밭도 없고 술 익는 마을도 없는 서쪽하늘의 도보 여행길을 꿈에 난 사람처럼 말없이 가고 있습니다 희고 창백합니다

 

나는 잠이 깨어 정신이 맑고 또록해서 날이 더 밝기 전에 몇 가지 소원을 빕니다

 

성실한 분이시여, 내가 이런 소원을 지향하면서 살도록 해주소서

 

행복이라는 언어를 탐내다 뒷면에 불행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동전을 끝임없이 모으는 어른이 되지 않도록

 

행복도 없고 불행도 없는 사유에 도달하여 참 행복 화엄세계의 향기를 맡도록

 

저 젊은이는 나의 지혜와 경륜이 필요하겠구나 하고 염려하며 참견하여

무엇이고 가르치려드는 어른이 되지 않도록

 

특히 내가 들어야 할 말, 내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을 남에게 하고

내 귀에 대고 해야 할 말을

젊은이의 귀에 대고 하는 어른이 되지 않도록

 

내 생각을 소유하여 집착하고 고집하는 일 없이, 생각의 무소유를 다하여 생각에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도록

 

행여 나를 지나는 지친 영혼이 있거든

겨울 나뭇가지가 새 한 마리에게 잠시 앉아 있다 날아가게 하듯

내 영혼의 가지를 내어주는 노인이 되도록

 

어른이 손가락질할 때 화를 내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어린이가 돌팔매를 할 때 껄껄껄 재미나게  웃고 사라지는 바보 노인이 되도록


믿음 받는 분이시여, 내가 이런 소원을 지향하며 살아가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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