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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ZURE POET Mar 19. 2023

바지들

상한 말들의 세상, 꿈꾸는 말들의 향연

바지들

        

               김 민 휴

 

1. 바지사장

친구 명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금 전에 용한테서 전화 온 것 같아, 받자마자 끊겨 다시 했더니 안 받아

눈, 귀뿐 아니라 온몸 피부의 세포까지 번쩍 쫑긋하는  것 같다

30여 년 전부터 고향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있는 그 친구

그 당시 그는 성인오락실 바지사장을 하다

빵에 들어갔다는 소문을 남기고 점점 멀어져 갔다

소래포구에서 모임 할 때, 개인택시를 끌고 왔었는데

 

윤은 초등학교 동창이지만 나와 용의 고모뻘 된다

근래 용은 유일하게 가끔 뜬금없이 윤에게 전화를 해 서로 안부를 묻는다고 한다

명이 윤에게 급히 전화해 보니 며칠 전 용이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윤에게 전화번호 몇 개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곧 죽겠더라 몸무게가 40 몇 킬로 나간다네

염병할 놈, 나한테도 안 오고 지 말만 몇 마디 하고 끊어버리고... 혼자서 처박혀 산대

 

2. 김남주 시인

김남주 시인을 생전에 2,30분 보았다

연설을 들었다

80년대 중반, 금남로 도청 앞 YMCA 1층 강당, 한 낮

밖에서는 시위대가 경찰과 투석전을 하고 있다

연단에 오른 시인이  묻는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적이 누구입니까?“

“전경이요!“  강당에 가득 찬 시민이 외친다

“전경 뒤에 누가 있습니까?“   ”전두환이요!“

“전두환 뒤에 누가 있습니까?“    “레이건이요!“

 

시인은 점점 올라가던 목소리를 낮춰 묻는다

”여러분!  레이건 뒤에는 누가 았습니까?“

”............................. .“

그는 더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여러분!  

레이건 뒤에는 월가의 ’자본가‘가 있습니다.“


...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

 

3. 바지를 입은 꿈

용은 그때 왜 남들이 갖고 싶어하는 개인택시를 처분해 버렸을까

왜 성인오락실의 바지사장을 택했을까

돌이켜보면

성공해서 고향에 금의환향하겠다며

남쪽 가난한 섬마을에서 혼자된 모친에게 큰 절을 하고

서울과 접한 대도시 공고까지 유학을 떠난

그 소년의 잘못만은 아니다

 

영업 잘해주고 걸리면 감옥에 가서 대신 별을 붙이고 쉴드를 쳐줄

바지가 필요한 돈붕알의 낚싯바늘에 걸려든 것이 그의 죄인데

이때까지도 그는 잘하면 돈가방을 싣고 비까 번쩍

고향 동네를 갈 수 있을 거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4. 바지대통령

돈은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하다

가장 욕심이 많다.

돈의 목표는 오직 더 큰 돈이다

큰 돈은 큰 돈끼리 모여 큰돈이 된다

 

큰돈은 돈의 사람을 찍어낸다

큰돈은 사용할 힘을 만든다

큰돈의 더러운 입술이 된 자는 언어를 오염시킨다

큰돈은 사실을 다시 만들어 낸다

실체적 진실을 실체적 거짓으로 만든다

큰돈은 군림한다: 신이 된다.


큰돈이 만든 회심의 역작은 바지이다

바지는 세상 곳곳에서 활개 친다

바지는 스스로 큰돈이 되기도 한다

바지는 작은 바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 바지가 또 새끼 바지를 만든다

그러니까,

바지 중에서 대장바지 자리 등극도 있는 것이다

큰돈은 대장바지에게 망치를 쥐어 준다

우쭐해진 대장바지는 말한다

“나는 군림하지 않으나 통치한다.” *

땅 땅 땅, 불편부당한 망치의 시대가 도래하도다


풀잎들이 바람타기 놀이를 하네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네 *

바람타기 놀이하는 풀잎들의 노렛소리 울려퍼지네

권력에 취한 돈에 취한 술에 취한

바지들 귀에는 속살거리는 찬가로 들릴 뿐이네

“화무삽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

차차차




* 1991, 민음사, 조정권 [산정묘지] 시편 부분 인용

* 1689, 영국 명예혁명 후 <권리장전> 참조

* 1974,  민음사, 김수영 『거대한 뿌리』. <풀잎> 인용

* 1962, 우리 가요, 황정자, <노래가락 차차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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