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저어가는 삶을 위한 향연 - 김민휴의 시
흐리멍텅도 나쁠 건 없어
점점 구별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아
밤에는 깊은 잠이 없어지고
낮엔 또렷한 생각이 없어지고 있어
하루 스물 네 시간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깨어 있는 채로 잠들어 있는 것 같고
잠들어 있는 채로 깨어 있는 것 같아
누가 와서 휘저었을까
나누어져 있던 것들이 자꾸 섞여
경계가 점점 사라져
또렷한 의식과 흐릿한 의식이 섞여
의식과 무의식이
꿈과 현실이 섞이는 줄 모르게 섞여
점점 좀좀 수록수록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 있고
본 지 좀 지났을 뿐인 친구가 죽어 있는거야
부모님은 분명히 돌아가셨고
친구는 분명히 잘 살고 있는데
단단했던 경계들이
드디어 사그라들고 무디어지고 있어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
이승과 저승에 대한 경계까지
점점 좀좀 수록수록
칼날 같던 경계들, 바늘 끝 같던 분별들
맥 못 추고 있어
나 태어나기 전 모두 돌아가셨는데
조부님이, 아니면 외할머니가
어딘가에서 잘 살고 계신 것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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