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하사탕을 좋아한다. 그리고 서영은의 먼 그대라는 소설을 기억한다. 두 작품의 주인공들이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왜 그렇게까지 버티기만 하나"는 점이다. 쓰다보니 나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하지만은. 우리는 기댈 곳을 잘 찾지 않고 그저 혼자 버티는 게 능사인 줄 알 때가 있진 않은가. 나는 그럴 때가 있었으나 우연한 사색 중 마음이 열려 이젠 그렇지 않다. 모두 기댈 곳 있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서영은의 먼 그대에서는 주인공이 남편과의 관계, 어려운 상황들을 그저 정신승리하듯 버텨낸다. 타다 산화되어버린 잿더미를 보는 느낌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도 그저 버티고 버틴다.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사업도 친구에게 사기당하고 난 뒤 야유회에서 철로에 올라간다. 그리고 "나 돌아갈래"를 외친다. 그에겐 돌아갈 수 있는 순간들이 없었던 것처럼, 선택지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80년대 군사정권을 살았던 군인들, 경찰들에게는 정말로 선택권이 없었던 걸까. 영화는 그들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의도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나 돌아갈래"라는 말에 담긴 후회의 감정이 핵심이지 않을까 싶었다.
첫사랑 순임과 헤어진 후 재회했을 때 영호는 객기를 부리며 순수성을 포기하고 나쁜 행동을 하는 길을 선택한다. 순임 앞에서 다른 여자를 추행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군인으로서도, 경찰로서도 폭력 앞에 무릎 꿇으며 똑같은 가해자가 되기를 선택했다. 실은 그의 무력하고 나약한 모습 속에 의지적인 선택이라는 부분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죄를 지을 때 부지중에라도 의지가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80년대 폭력적인 군사 정부 하에서 물고문 등을 당하면서까지 학생운동을 선택한 이들의 의지가 이해될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이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관점에서도 더욱 그렇다.
영화 속에서 안타까운 점은 철길 위에서의 후회가 최초이자 마지막 죽음을 앞둔 후회라는 점이다. 후회는 물론 자기중심적인 감정이다. 내가 내 삶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바른 생각과 결정으로 옮겨가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후회는 사람들끼리 정죄가 아니라 서로 들어주고 이해해주어야 하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취약해질 수 있다. 취약성을 인정하는 순간 '인생은 혼자'라며 애를 쓰며 발버둥치던 데서 빠져나와 진정한 교류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데서 취약성에 대한 인정은 필수다. 이것을 거부하고 자기 힘으로 무언갈 해보려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영호에게는 이 취약성에 대한 인정과 함께 진정으로 교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사랑 순임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인숙의 이름도 모를 여인에게 밖에 그리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할 사람이 없다. 그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겸연쩍어하고 아이가 나올 수도 있는 날에도 병원에 부르지 말라고 아내에게 말한다. 화가 나고 성에 안 차면 강아지를 발로 차기도 한다.
이런 영호에게 순임이 상징하는 바는 순수성이자 관계의 회복이다. 영호가 좋아하는 사진 찍기라는 취향을 공유해주는 사람, 착하게 생긴 손을 가졌다며 부족한 영호에게 성품에 대한 믿음을 주는 사람.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영호를 좋은 사람으로 믿어주었기에 다시 보고싶어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믿음을 보여주는 순임이라는 존재를 영호는 생에동안 애써 무시하고 손을 뿌리치며 살아온 것이다.
우리에겐 이런 모습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애써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겸연쩍음이란 이유로, 열등감으로, 자존감의 하락 같은 이유들로 시기 질투로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또 회피하는 방어기제를 쓸 수도 있다. 이것을 행동으로까지 옮겨 사람을 때리거나 윽박지르는 일련의 습관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런 뾰족한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은 후회를 서로 덮어주고 취약성을 드러내는 둥근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을 더 잘 알아가고 온전한 사랑을 막는 요소들과 지속적으로 싸워야 한다. 고되더라도, 때로는. 그게 외부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나은 삶을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