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사이 1) 자매사이 변천사

by 필그림

"자매가 있는 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어요." 또는 "자매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부러워요."


자매가 있다고 하면 듣는 반응 중 대부분의 상황은 위와 같다. 자매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부럽다는 사람들에겐 정말 자매가 있어 다행인 것 같다는 대답을 여러 편의 글로 재밌게 해보고 싶었다.


우리 자매는 사이가 좋다. 거의 매일 연락을 하고, 가까이 살 때는 집에도 자주 방문해 같이 밥도 먹곤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원래부터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서로에게 여유가 생긴 후, 우리의 30대에 들어와서야 이런 관계가 성립이 됐다. 서로에게 여유가 있어야 서로를 찾고 잘 대해줄 수 있다는 점은 친구관계와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자매라 다른 점은 서로의 싫은 부분 때문에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0대 서로 미숙했을 때(물론 지금도 미숙하지만)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가족이라 가능한 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울퉁불퉁한 면을 보며 볼멘 소리를 하지만 그것 때문에 손절하지는 않는 기간을 지나오고 보니 그 일들이 정말 깊은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인내였던 것 같다.


나는 20대 중반정도부터 엄마와 많이 다퉜다. 평행선을 달리면서 매일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로 싸우기만 할 때, 언니는 중재를 하려 많이 노력을 했었다. 본인의 가장 힘들었을 시기였음에도 감내하면서 그에게도 서툰 중재를 그렇게 열심히 해주었다. 나는 엄마 편을 주로 드는 언니에게 그때 야속함을 많이 느꼈었고 언니와도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많이 건강해진 후에야 언니도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되돌아보게 됐던 것 같다.


그 시절 언니는 자매 띵언(?) 을 하나 남겼는데, 여전히 생각하면 웃기다. "네가 친구였으면 절대 안사귀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나도 "나도 마찬가지"라며 받아쳤었다. 그런데 워딩만 들으면 되게 상처받을 말 같은데 그 말을 듣고 응수할 때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말 속에 "너를 떠날 순 없어"란 메시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해결하는 긴긴 과정 속에서 언니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나의 지지대가 되어주고 있었다.


언니의 20대 중반도 대학원에서의 고생으로 힘든 시기였을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힘든 와중에 언니의 그런 힘듦을 알고 와중에 위로를 했었다. 언니의 실험실에 갔을 때 편지를 써주고 온 것이 기억이 난다. 언니는 똑똑해서 뭘 하든 잘 살거라며 자기도 잘 못 해내던 주제에 응원을 해주었었다. 그렇게, 돌아보니 불완전하고 흔들리는 삶 가운데 서로에게 우리는 지지대였던 것 같다.


언니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간 후 여전히 인생의 방향을 못 찾고 욕심껏 취준하고 있던 나에게 비싼 코트를 사주었다. 사준다고 홀랑 받은 나도 어렸지만 자기 돈을 아껴가며 사준 언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언니는 나에게 칭찬해줄 것이 있을 때에도 구구절절 감동을 주며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언니의 작은 행동과 말에 담긴 의미를 다 파악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인생에서 돈과 지위가 가장 중요한 줄 알았던 나에게 그래서 쉬지도 못했던 나에게 언니의 사랑은 가끔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마저 없었다면 내 20대는 참 공허했을 것 같다.


나도 20대 후반을 흔들리며 커나가고 30대가 되었을 때 여전히 삶의 크고작은 고난은 있어도 여유를 갖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엔 시간도 체력도 부족한 때를 그렇게 서로 잘 마주치지 못한 채로 지나왔다. 나는 이제 내가 함께 있어주지 못했던 시절의 언니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음에 감사한다. 내가 겪은 것과 동일한, 어쩌면 더 힘들었을 일을 겪고도 사람을 사랑하며 살기를 선택한 언니, 나와 다른데 자세히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은 언니. 다행히 여기까지 나와 잘 걸어온 언니. 앞으로의 삶도 열심히 살고 좋은 모습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한 언니. 서투르지 않게 사랑하며 매일의 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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