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이상 우리를 괴롭혔던 그리고 생명을 위협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제 종식기에 접어들었다. 하루 확진자도 서울시가 1만 명 대로 줄어들었고 거리두기가 폐지되는 등 정책의 변화도 있었다. 코로나 종식을 앞두고 눈에 띄는 변화는 또 사람들이 거리에 많아졌다는 것이다. 지하철역도 붐비고, 교회도 붐비고, 식당도 안 하던 웨이팅을 해야 하게 되었다. 사람들과 떨어져 살던 우리가 다시 모이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간 코로나 시국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견뎌온 걸까? 건강 문제로 지인과의 만남을 최소화하고 살거나 여행도 못 가는 등 조심하며 산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나마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과 떨어져 살았다는 데서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불편한 관계들을 만날 기회가 재택 등으로 줄어들고 이제 사람들은 재택이 없는 회사를 옮기고 싶어할 만큼 접촉을 최소화하길 좋아하게 된 부분도 있다.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다시 모임은 분명 하나의 도전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마주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불편해하고 여유 없이 대하기도 하는 점인 것 같다. 지하철에서는 유독 목소리를 높이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사람이 없었을 때에는 느끼지 못하던 여유공간에 대한 권리의식이 자리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공유해야 했던 공간이 코로나 시국으로 개인들의 자리가 되고 이제 그것이 계속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되어 다른 사람과 불화가 생길 수 있게 됐다. 골목에서는 건설 현장 차량과 바빠진 물류 운송 차량, 일반 차량들이 서로 공간을 차지하려 바쁘게 클락슨을 울려 댄다. 이렇게 어딘가 달뜬 분위기가 2022년 4월 말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이 시기의 최고의 배려는 양보같다. 멈춰 있던 일상에서 새로운 일상으로 전환될 때 내가 누리지 못하던 시간과 공간을 남과 나눠 쓰는 일은 사실 웬만한 인내심과 배려심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목소리 높아지는 상황을 더 많이 요즘 보게 되는 것 같다. 코로나 종식기에 맞춰 레고랜드니 새 롯데월드니 개장을 하며 우리의 발걸음을 기다리지만,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우리의 의식은 문화지체에 걸린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코로나 종식을 앞두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을 스스로 알아주고 다른 사람들도 똑같았을테니 서로 더 잘 양보하자는 마음이다. 개개인들이 더 이런 의식을 갖는 데 노력하지 않으면 서로에 대한 불편함과 적개심이 행동으로까지 이어져 한 번 더 사회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반대로 양보를 받았을 때 양보해준 사람의 마음의 여유가 느껴져 세상이 더 살 만한 곳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우리의 경합장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마음의 여유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평화를 퍼뜨리는 자들이 되어 보자. 날씨도 좋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