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에 담긴 새로운 가족의 형태

by 필그림

영화 <브로커>는 묻는다. 당신은 가족이 무엇이며, 어떤 공동체여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는 수면 아래지만 계속해서 있어 왔다. 미혼모, 이혼 가정, 재혼 가정 및 동거 가족 등 새로운 가족의 형태들이 소위 말하는 '정상 가족'의 범위 안에 들지 못한다면 많은 구성원들이 소외될 수 있어서다. 영화 <브로커>도 입양에 관해 이야기하며 가족은 어떤 공동체냐고 묻는다.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가족을 가족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가족은 가장 가깝기에 서로에게 할 말을 다 못 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걱정을 끼칠까봐, 때론 너무 내밀한 속마음이 말하지 않아도 가족 구성원에게는 느껴지고 닿아질까 꺼려하는 마음에서 우리는 말을 아낀다. <브로커>는 이러한 심리를 조명을 통해 보여주었다. 아이를 팔러 가는 기차 안에서 중요한 속마음을 이야기할 지점에 기차는 터널을 지난다. 시끄럽고 어두운 터널 구간에서 그 때밖에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서로를 향한 진짜 질문들이 가려지고 묻힌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보지만, 서로의 삶과 생각에 대해서는 다가가는 데 한계가 있다. 그저 먼 발치에서 추측을 할 뿐이다. 이 사람은 이런 상처가 있나봐, 라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것은 이런 어둡고 가려진 내면들을 한꺼풀 벗겨 서로를 향해 정직하고 용기있게 드러내는 우리들의 의지다. 극중 아이유(소영 역)는 모텔 방에서 피도 섞이지 않은 송강호,강동원과 어린 보육원 출신 아이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속내를 어렵게 드러낸다. 차마 이런 말을 하긴 너무 어려운 가족이라서일까, 불을 끄고서야 말할 수 있었다. 서로의 삶의 불안했던 부분들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우리들의 의지가 없이는 가족은 빛 좋은 껍데기일 뿐이다. 가족을 가족답게 하는 것, 서로를 보듬는 의지가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는 것은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피섞임만은 아니다. 서로를 책임지려는 마음과 사랑이 있어야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마음들로 구성된 가족 구성원들이라면 사회가 가족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극중에서 이 가족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하지만 완전이란 기준은 다른 어떤 가정에도 부합될 수 없을 것이다. 극중 서로를 지키기 위해 범죄도 서슴지 않는 모습들이 나온다. 얼마든지 현실에서 가능한 스토리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어줄 마음은 있지만 사회적 상황에서 한계가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이들을 품고 돕는 것이 필요하다.


피가 섞인 가족도 가족답지 않은 가족들이 많다. 상처가 있고 깨어진 자국이 있는 점에서 영화 <브로커>의 가족과 우리들의 가족의 모습은 어딘가 많이 닮았다. 누가 누구를 정상, 비정상 가족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 아닐까? 극중 아이유가 입양보낼 자기 아이를 두고 막말하는 "정상가족"에게 남의 자식 눈썹이 어쩌니 얼굴이 어쩌니 무례하다"고 말하며 싸우는 장면이 떠오른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 맺어진 결합이 아름답고 귀한 것이다. 그들을 "정상가족"이 아닌 그저 "가족"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로나 종식기를 앞둔 우리의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