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서 있는 그 자리부터
이 영화는 '혐오스런, (콤마가 붙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마츠코의 일생'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마츠코같이 불운에 시달리며 자기 자신과 주변을 사랑하지 못하는 인물이 우리 주변에 있을 때 그가 친구나 지인이라면 우리는 마음을 썩이게 된다. 조금만 더 지혜롭다면, 조금만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문제는 조금씩 해결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 참 안타까우면서도 나는 내가 비슷하게 조금씩 건강함을 습득해갔던 과정을 기억하면서 건강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조금의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하나님이 도우셨을 때의 이야기이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고 의지하지 않는 이들이 어떤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비관적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면서 건강함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여기에 써 보고 싶었다. 내가 아는 선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영화, 책과 접목하여 재밌게 써 보는 것이 브런치를 개설하며 피할 수 없는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츠코의 일생은 왜 '혐오스럽'게 되었을까? 물론 그녀를 바라보며 혐오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녀를 응원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라도 피해나와야 할 그녀의 삶의 모습들을 돌아보며 건강함을 한 스푼 선사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1. 정체성을 어디에 두는가
마츠코의 잘못된 선택 중 하나는 건강하지 않은 이성관계에서 들은 칭찬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그것에 자기 기반을 두는 일이었다. 그녀는 몸매가 좋다는 이성의 칭찬을 들었지만 그것은 건강한 정서적인 교류와 사람으로서 귀하게 여김이 전제가 된 칭찬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마츠코는 자기의 정체성을 외모에 두고 그것으로 돈을 벌기를 선택하며 화류계로 가게 된다. 이처럼 아무리 칭찬이라도 정체성을 변해버리는 것에 둔다면 우리의 상황에 따라 바람 잘 날 없이 흔들리게 된다. 그렇기에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정체성에 공고히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선하시고 불변하시며 무엇보다 우리에게 인격적인 아버지이므로 그 변치 않는 사랑 안에서 우리는 변하는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된다. 그것이 주는 즐거움이라는 유익이 크다.
2. 건강함도 하나님으로부터 난다
나는 사실 누구에게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정신적인 건강함이라는 것이 추구해가는 지향의 문제라고 여기고 노력을 하기 때문에 건강함을 습득하는 것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없으면 나는 이만큼 건강해지지 못했을 것 같다. 아무것도 사회에서 할 수 없을 것 같고 내 자리가 없는 것 같던 때에 나의 교만함이 그때까지 깎여왔던 것 같다. 하나님은 알바천국이라도 뒤져보려는 절박한 나에게, "작은 것부터"하라는 생각을 주셨다. 알바천국에서라도 조금 더 "남 눈에 있어보이는" 잡을 고르려던 나는 아주 작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골랐다. 어렸을 적 언니가 다니며 합창부를 했던 구민회관. 수영을 배우러 다녔던 기억이 있는 문화센터가 같이 있는 구민회관에서 샤워실 사물함 키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나는 항상 잘 해야한다며 압박을 받아오다보니 대인관계 스킬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졌었는데, 몇 개월간 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오히려 "저 키 나눠주는 아르바이트 해요"라고 말하는 데서 오는 오묘한 자유를 느꼈다. "저 대기업 다녀요"라고 말해야만 내가 가치 있고 속박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땐 돈도 엄청나게 아껴야 했는데, 잘 아끼다가도 김밥이 먹고싶다는 기도 한 마디에 바로 김밥이 같이 일하시는 분께로부터 주어지기도 했다. (그 분도 크리스천이셨다)
3. 건강함을 위한 지혜를 구하자
내가 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마음에 안 드는 이유는, 자기 직업을 우연이지만 찾았고 또 처음엔 아이들을 훈육할 줄 모르던 마츠코가 주변 아이들을 잘 타이르게 되었을 때 감독이 그냥 주인공을 죽여버렸다는 점이다. 어차피 인생은 불행한 자에겐 계속 불행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 것 같아서 영 찜찜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건강함을 위해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런 편이다. 최근에 얻은 지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적 감정을 분별하라"라는 책에서였다. 가끔 이해할 수 없이 괴로운 고난을 겪고 하나님이 왜 그런 일을 허락하실까 의아할 때가 있었는데,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가르치시려고,라는 말씀을 봤다. 비슷하게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집에서는 우리가 넌크리스찬들에게 비난을 받게 하시는 이유는 그로 인해 우리 안의 죄를 알고 이기게 하시려고라는 말이 나와 있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이 더 투명하게 들여다봐지고 더 거룩해지는 여정을 위하여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비슷한 때에 내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것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을 주변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 대처 능력이 항상 고민이었던 때에 일상도, 직장 생활도 더 건강히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부터 멘탈이 건강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건강함을 습득해가야 하는 사람들도 참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너무나 자기 자신과 겹쳐 보여서 찾다가 이 글을 읽은 사람이든, 마츠코는 '그럼에도 혐오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든 이미 자기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영화는 많은 댄스씬에도 불구하고 무거웠지만 건강이라는 주제에 대해 쓸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