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서 크는 신앙과 마음
브런치 작가가 될 때 신앙 얘기 쓴단 계획서는 안 냈다. 그러고 작가 시켜주니까 내 맘대로 쓰고 싶은 신앙 얘기 쓴다. 다소 양아치같은 접근일 수도 있지만 유익이 있는 글을 쓰겠다는 목표로 퉁쳐보려 한다.
올해 초 교회 상담소에서 나는 '마음이 컸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게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거다. 내가 마음이 작은 게 보였나? 그러면 어떻게 키울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잠을 설쳤다. 나는 나에게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얼른 채우고 싶어하는데, 하나님은 마음이 급한 상태의 나에게는 이상하게 바로바로 필요를 채우지 않으시고 좀 기다리시는 것 같다. 마음이 작은 상태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자존심 있는 나에게 사람을 붙여주시고 그들이 나를 받아주게 하시며 그들로부터 배우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쓰신 방법이다.
나의 어머니는 팔이 안으로 굽는, 나를 사랑하는 엄마다. 아빠는 워낙 바쁘셨고 내가 주기적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양육자는 주로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가 사람에 대해서 오해하거나 할 때 그것을 넓은 마음을 기초로 바로잡아주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내 기분을 나쁘게 한 사람 탓을 같이 해주는 식으로 위로해주었다.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는 나는 뭔가 찝찝하다는 것을 느끼기엔 너무 어려서, 그리고 위로를 받고 마음이 일시적으로 평안해지니 그것에 익숙해져서 무언갈 더 하려 하지 않았다. 사고의 기준이 엄마의 가치관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가치관도 건강한 사고방식도 잘 배우지 못하고 큰 나에게 공동체(교회)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스트레스풀하고 도전이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어딘가 연약하고 빈약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았고 친구들이 모두 나보다 한참 어른으로 보이기도 할 때도 있었다. 지기 싫어서 열심히 공부했다. 신앙서적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열심히 읽었고, 그렇게 몇 문장들은 머릿속에 남았다. 그런데 그러던 나에게 신앙생활 5년차나 되어서 짬이 이제 좀 찼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마음이 크기가 작다는 말을 하신 상담 선생님. 적잖이 당황했던 거였다.
엄마에게 내가 마음이 작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는데, 엄마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살아가는 데는 단순히 공부 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사는 게 다가 아니라 가치관과 세계관, 건강한 사고방식의 끝없는 습득을 위한 노력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신앙 생활에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를 절실히 깨달은 오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직장에서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하냐는 나눔이 있었다. 친구 중 하나는 "더 잘해주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미웠던 마음이 이내 사라지고 불쌍하거나 귀엽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마음의 넓이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나는 업무에 적응하느라 여유가 없고 업무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여유있게 받아주는 데에 소홀했었다. 그래서 지나친 개인주의로 흐르기도 했었는데, 친구는 사람들과의 자리와 대화를 소중히 여기고 또 잘 대해주려고 노력하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 말을 듣고 나의 마음의 크기가 작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단번에 알아차려지며 너무 속상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칠전팔기 내 인생 끝까지 가볼래(feat.윤미래)의 필그림이 아닌가. 그동안 얼마나 능력치를 인정받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던 생각을 내려놓고 미뤄왔던 자아성찰을 했다. 사랑하면서 살라는 예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새겼다.
예수를 만나고도 가치관의 변화가 없었던 일전의 나는 과연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난 것이 맞았을까, 그렇게 무지랭이같고 냄새나는 나를 하나님은 참 놓지도 않고 신실하게 사랑하셨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예수님이 온몸으로 표현했을 때 그 사랑은 다함이 없는 사랑이겠구나라는 묵상도 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복음의 깊이를 한 층 더 경험하고, 성숙하고 싶은 내 욕구를 무시하지 않고 기도 응답의 때는 알 수 없지만 기도를 잊지 않고 그의 때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부끄럽지만(브런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런 얘기까지 하나?) 책을 하루에 몇 페이지 읽었나로 오늘 하루 잘 살았다, 못 살았다를 평가매기기도 했다. 자존감에 하등 도움 안 된다. 크리스찬에게는 이미 받은 사랑이 있어 그렇다. 오늘 하루 한 사람이라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데 성공했는가. 그게 내 자신에게 애썼다, 잘했다 말해줄 수 있는 더 확실하고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있기를. 세상적인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더 단단하게 그러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