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시간이 남긴 것

5년을 싸우며

by 필그림

금쪽같은 내새끼, 금쪽상담소같은 프로그램을 올해 엄마와 나는 참 많이 봤다. 우리의 시간은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서로를 헐뜯고 상처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을 돌보며 서로를 지켜봐주는 것, 모녀의 지난하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오며 배운 것이다.


엄마와 나는 서로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싸웠다. 나는 엄마로 인해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방황하는 시절을 지나왔고, 그 시기를 지나며 병도 얻었다. 어쩌면 병은 내 죄 때문이라고 검증된 바는 아니지만 생각한다. 엄마와 싸우는 동안 나는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전혀 몰랐다.


지나간 시간을 뒤로 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야 하는지, 아니면 못다 받은 엄마의 사랑을 누려야 내 마음이 낫는 것인지. 나는 악몽을 꾸며 침대에서 몸을 비틀어대듯 몸과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엄마와의 관계로 인한 상처를 곱씹기도 하고(그러면 안되는데 말이다) 자기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기도 하며, 또 심지어는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괴롭게 하며 지낼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시간이 지나고 엄마의 사과가 진정 마음 속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엄마를 위로하려고도 했었다.


5년을 싸우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각자의 마음 속에서 각자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깨달은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할 수 없고, 심지어 나 자신이 나를 위로할 수조차도 없다는 것 말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위를 얻지 못하면 넌 불행할 거라며 통제하려고 했던 엄마. 엄마를 사랑하니까 엄마 말을 듣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또 다른 대안이 없어 굴복했던 나. 그 어린 시절의 상처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가장 사랑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주며 지나온 5년의 세월까지... 아이러니한 것은 그 속에서 우리는 최선의 힘을 다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 무엇을 해보려 할 수록 더 안됐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중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이라는 노래가 있다. 딱 그 가사같은 상황이었다. 그 가사를 들으며 처음으로 인생에서 하나님을 내 입에서 불러봤었는데.. 나는 내 아픔을 경시하면서 하나님을 더디 바라보았었던 것 같다.


결국 그 일에는 하나님이 필요했다.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나조차도 위로할 수 없는 나의 지친 마음과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했다는 것.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같이 바라보며 이겨나가야 했다는 것 말이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립보서‬ ‭2:4‬ ‭KRV‬‬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인적으로 수립하고 그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 방향으로 자기 일을 돌아보라는 말씀이 적용되게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회복된 심령을 가지고 상대방의 기쁨을 위해 무언가를 하면서 비로소 서로를 돌아보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실하게 바라보는 자들이 되게 이끌고 연단하신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지난 20대가 그리 삭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지금 엄마와 나는 참 좋다.


엄마가 지난 날 나에게 심하게 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엄마가 그때 넘어졌었지, 하고 나와 상관 없는 일인 듯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 내가 수없이 내 엄마를 마음 속에서 무시하고 깎아내리며 그것으로 나를 유지하며 살아왔던 것에 대한 짐을 매일 내려놓으며 엄마와 이젠 조금 더 밝은 가볍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지낼 수 있기를. 나의 나이에 맞는 그런 얘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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