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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Dec 23. 2022

제주 여행 n번차의 11월 제주 여행, 엄마와 함께

제주 여행에 벌써 10번 정도는 와봤을 것 같다. 어릴 적 엄마아빠 따라 다니던 때부터 어른이 되어 혼자서도 와봤던 제주 여행. 이젠 조금은 나이 든 엄마를 모시고 11월에 다녀왔다. 아직도 운전은 엄마가 하신다. 나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아직 운전을 못 한다. 언제쯤 나는 더욱 어른이 되어 온전히 부모님을 케어하고 돌아다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이번 여행은 내가 공무원으로서 퇴사 전 마지막으로 연중휴양소 제도를 이용해 숙소를 제공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그래서 이번 제주 여행은 부모님과의 여행을 돌아볼 때 분기점 같은 여행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좋은 숙소를 제공한 여행. 그럼에도 맛있는 밥은 거의 엄마가 사셨다. 아직은 부모님이 해주는 걸 이렇게 더 받아도 될까, 생각하게 되었던 30살 초반의 제주 여행.


2년 전 가족이 다 함께 날씨 좋은 9월 제주에 왔었다. 그 때는 한라산에 올랐는데, 체력이 약한 엄마도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사라오름까지 올라가셨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가 해발 400미터 정도의 오름에 오르시는데도 땀을 비같이 흘리며 여행 후 심한 여독까지 왔다. 2년이 지나 더욱 약해진 엄마의 체력을 내가 캐치업하지 못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한편으론 다음 여행의 모습까지도 그려볼 수 있었다. 약간의 쇼핑과 온천, 휴양을 할 수 있는 가까운 동남아나 일본 같은 곳이 60대의 여행에는 제격이겠다 하는 그런.


먼저는 엄마는 못 오른 금오름에 나 혼자 올랐다. 10여 분을 빠르게 가파른 경사로를 올라 해 지기 전 도착할 수 있었던 금오름. 경치가 좋고 이효리의 '서울'이란 노래 뮤직비디오에서 나왔던 장소라 궁금해서 가 보았다. 2018년도에 갔었던 하와이의 쿠알로아 랜치가 겹쳐 보였다. 물론 규모 면에서는 쿠알로아 랜치에 비교할 수가 없다. 쿠알로아 랜치는 너무나 광활하고 산 옆에 바다까지 보이는데, 바다를 보면 내 자신이 자연 앞에 송구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금오름은 반면 꽤나 작았다. 사람이 많아서 조금 시끄럽기도 했는데, 오히려 새벽녘에 가서 짝궁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며 올라갔다 오면 운동도 되고 아주 좋을 것 같았다. 현지인 이효리가 왜 금오름을 골랐을까 생각해보면 제주에 사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현지의 동네 오름 같은 느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또 한 번 숨을 턱끝까지 차게 하는 오름이 새별오름이다. 역시 15분 정도 오르고 경사가 가파르다. 새별오름은 11월 억새가 좋다고 해서 가보았는데, 많이 억새를 잘라놓아서 오름 초입부 억새가 풍성하게 많았던 곳을 제외하면 억새 자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땀흘리며 올라간 정상에서 푸릇한 밭의 풍경은 참 볼만 했다. 11월에도 푸른 작물들의 그 시원한 청록색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새별오름의 초입에는 플리마켓이 열려 있다. 나는 그곳에서 어딜 놀러가기만 하면 자꾸 사들이는 양말을 또 샀다. 서울에서는 양말이 디자인이 들어가 있으면 백화점이나 마켓에서 만 원 정도는 하는데, 지방에 내려가면 예쁜 디자인 양말들이 2000원, 2500원이면 살 수 있으니 얼마나 마음을 풍족하게 하는지. 플리마켓에는 털로 뜬 모자, 제주도에서 요즘 핫하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나왔던 감귤 모자 등을 팔고 있으니 잘 구경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느낌 있는 구제 원피스들도 팔고 있었다.


숙소인 신화월드 랜딩관은 그냥 예약하려면 1박에 40만원이 넘는 숙박비를 자랑한다고 들었다. 연중휴양소 제도를 이용해서 조금 할인을 받고, 숙박비 지원 제도를 통해 1박에 10만원 지원을 받고 싸게 다녀왔다. 신화월드 랜딩관은 옆에 다른 관들과 연결이 되어 있고, 지하에는 꽤 큰 규모의 쇼핑 센터가 운영되고 있었다. 대부분 백화점 입점할 비싼 브랜드들이라 자주(JAJU) 정도에서 운동복을 샀다. 11월의 제주는 꽤 더웠어서, 반팔티와 함께 호텔 운영 요가 프로그램인 '풀사이드 요가'에 참여할 레깅스 바지를 산 것이다. 기타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하겐다즈 등이 입점해 있다. 옆에 신화월드 테마파크(거의 유아용)가 있다. 8세 이하 아이들에게는 넓게 느껴질 수 있는 규모로, 몇 가지 놀이기구들이 있고 주로 사진 찍을 수 있는 캐릭터 장식물들이 많이 있다. 테마파크를 위해서 숙박하는 것은 비추천이지만, 투숙할 때 입장권을 주므로 아이들과 가볍게 가볼 만은 한 것 같다. 신화월드 내 음식점들은 맛은 나쁘지 않은 정도이지만 가격은 참 비쌌다. 쇼핑을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곳은 협재바다였다. 협재바다는 어려서도 갔어서 이번엔 특별할 게 있겠나 싶었는데, 나이가 조금 더 먹고 가는 자연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을 선사하는 것 같다. '협재 고기부엌'이라는, 정말 너무 맛있는 돼지고기 식당에서 본 바다 풍경은 에메랄드 빛과 청색 빛이 레이어드 된 협재바다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거기 암초에서 뭐가 나는지 멀리서 본 사람들은 무언가를 채취하기에 바빴다. 고기가 정말 신선하고 맛있었던 협재고기부엌에서 나와서 주차장 쪽으로 걷다 보면 커다란 카페가 우측에 나오는데, 초콜렛 라떼에 초코크림을 얹어 주는 매력 있는 카페는 처음 봤다. 비록 지금은 다이어트 중이라 초코라떼를 먹을 수 없지만, 정성스러운 음료를 맛본 경험이 참 즐거웠다.


잠시 제주도 여행 n번차의 경험을 꺼내 보면, 내가 가장 좋았던 제주도의 여행지는 비자림이었던 기억이 난다. 고생고생해서 오른 한라산에 중간중간 나오는 나무 숲의 풍경도 멋지지만, 비자림은 더 우거진 나무들이 아마존 같은 느낌을 낸다. 게다가 풀잎의 향은 또 왜 그렇게 좋은지, 아찔해질 정도로 강렬한 풀잎 향을 맡다 보면 자연 속에 들어와있구나란 실감을 하게 된다. 2위가 협재 해수욕장이다. 특히 이번에 갔던 위에 언급한 식당은 제주도에 갈 때마다 방문하고 싶은 정말 귀한 곳이었다. 한국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그렇게 잔잔하고 예쁜 곳은 협재 해수욕장이 으뜸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3위는 우도이다. 섬 중의 섬만이 줄 수 있는 고립되었지만 고유한 분위기가 우도에 있다. 차를 많이 타는 여행 말고, 조금 힘들더라도 서빈 백사와 돌칸이, 우도봉까지 걸어다니고 중간중간 해산물을 먹는 그런 우도여행 다운 우도 여행을 추천한다. 10년 전에 갔는데도 아직도 지명이 기억날 만큼 인상적이다. 하루 정도 잡고 가도 한 나절이면 다닐 수 있는 우도. 예전에 숙박까지 하고 아침에 아무도 없는 서빈 백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우도를 언젠가 다시 가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60대 엄마와의 여행, 결론적으로 오름은 비추천이다. 여행 후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고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힘들여서 올라서 좋은 풍경을 볼 때의 아름다움을 엄마가 앞으로는 많이 못 누릴 거라고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안 좋았다. 하지만 나이들어가고, 만들어가는 여행의 모습은 또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주로 따뜻한 바닷가에서 누리는 맛있는 음식들과 해변을 따라 걷는 약간의 산책, 적당한 호텔에서의 따뜻한 사우나가 60대에게는 좋은 여행인 것 같다. 또 제주도에는 본태 박물관이나 오설록 카페같이 평지에서 누릴 수 있는 것도 많이 있다. 방주 교회도 참 아름답고 말이다. 제주는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계속 가볼만한 곳이 발견되는 신기한 곳이다. 산지에서 평지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엄마와의 여행, 앞으로는 제주도의 바다, 숲과 풀을 더 많이 즐기게 되지 않을까란 기대감도 생겼다. 어쩌면 아직은, 70대가 되지 않은 엄마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우도를 돌아볼 수 있을 지도 몰라. 아직도 엄마의 컨디션을 다 파악하지 못한 철 없는 딸의 생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철 없을진 몰라도 이런 기대감이 여전히 있기에 엄마와의 여행은 계속 기대가 되고 나를 또 계획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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