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혼자보단 둘이 낫다
동성도 아닌, 이성과 특히 연애하면서 긴 여행을 해보지 않았던 전 연인, 현 남편과
장기간 여행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길어봐야 1박 2일 여행이 전부였던 우리.
함께 방을 쓰는 것부터 씻는 것, 옷 갈아입는 모든 순간순간이 불편의 연속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사실 초반에는
'아... 이래서 여행은 혼자 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
친구와는 다른 든든함과 편안함,
혼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즐거움.
스위스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밀라노는 단지 베네치아를 넘어가기 위해 거쳐가는 도시였기 때문에
하루 숙박을 위한 기차역에서 가까운 가장 저렴한 호스텔을 이용하기로 했다.
물가 비싸기로 한 밀라노에서 정말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고 즐거움도 잠시,
그 숙소를 찾아가는 동안 정말 구석진 곳에 위치한 것은 물론,
관광객 한 명 보이지 않았던 곳. 우리가 도착한 날은 대부분 상점들이 문을 닫는 일요일.
한산하고 으슥한 골목에서 서로 말은 안 했지만, 두려움에 떨었던 그곳.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남편도 그때는 정말 무서웠다며...
그나마 나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며 얘기하는데,
평소 남자들은 여자보다 위험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홀로 여행하기 정말 좋을 거라 생각했던 나.
정말 크나큰 오산이었다.
남자도 사람이고, 두려움을 느끼고, 위험한 행동에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
남자, 여자를 떠나 그냥 감정을 느끼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별 도움되지 않지만 그도 나에게 작게나마 의지를 하고 있었고,
나도 그에게 의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대부분 영어로 소통을 해야 하는데,
해외여행이라곤 처음인 남편, 영어는 1도 할 줄 모르는 나...
지금까지의 여행들은 진짜 눈치로 소통하며 다녔었다.
그나마 남편은 나보다 영어와 더 친밀한 덕에 상대방이 말하는 뜻을 나에게 친절히 통역해주었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말을 전달하는 것은 나의 몫.
절대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대답할 문장을 만드는 남편과 달리
원하는 단어만 툭, 던지는 나의 급한 성격 때문이었다.
(급해 죽겠는데 언제 문장을 만들고 있나...)
그렇게 우리는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하며 한 달이라는 긴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둘이기때문에 가능했던 순간의 다툼들,
떠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상대방의 새로운 발견,
함께여서 2배로 행복했던 시간들,
익숙한 사람과 낯선 곳에서 느끼는 기분 좋은 설렘...
혼자가 아닌 함께여서 가능했던 여행의 모든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