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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작 Feb 10. 2017

따뜻한 말 한마디의 소중함.

즐기기 위해 떠난 여행, 죽자고 매달리지 말자.

한 달이라는 긴 여행 기간 동안 싸우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의 모토는 '어차피 떠나온 여행, 그냥 순간을 즐기자' 다.

모든 순간순간이 다 추억이 되는 이 이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그러나, 남편은 달랐나 보다...

가장 속상했던 한 사건이 바로 '카메라' 사건이다.


다른 욕심은 없는데 유독 사진과 카메라 욕심이 많은 나(그런 것 치고 웨딩촬영 안 한 것이 신기할 따름)

그래서 결혼 전에 무거운 DSLR 대신 화질 좋은 미러리스 카메라가 갖고 싶었다.

남자 친구 시절 생일선물로 받은 Lumix 미러리스 카메라...

(10개월 할부라... 결혼 후 반 이상을 함께 갚았다는 건 함정...;;;)


어쨌든, 그 미러리스 카메라와 캐논 똑딱이. 이 두 개를 가지고 우린 여행을 떠났다.

서로를 자연스럽게 찍어주자는 게 내 계획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여행을 한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스위스 바젤에서 인터라켄으로 넘어가는 기차에서였다.

2층으로 된 기차에서 우린 설레는 마음으로 앉아 기차역에서 구입한 먹거리로 허기진 배를 달랬고,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생각도 못한 채, 맛있게 먹었던 저녁


그 후 카메라의 각종 기능을 만져보던 중... 핸드폰과 연결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을 발견했다.

사실 카메라를 구입하고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때라 카메라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둘이 신나서 기차 테이블에 카메라를 놓고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침 역무원이 기차표 검사를 하러 온 것이다. 그렇게 난 테이블 위에 카메라를 두고

가방에서 기차표를 꺼내는 순간!!!! 기차가 흔들리는 바람에


카메라가 툭! 있는 힘껏 앞으로 나와있던 렌즈도 함께...


Lumix의 특징이 카메라 렌즈는 수동이라는 점;;; 줌, 아웃할 때는 손으로 돌려야 한다...

덕분에 렌즈 한쪽은 찌그러졌고... 남편의 표정도 정색...


난 그저 "어떡해... 어떡해.."만을 외치며 렌즈를 집어넣어보려 했지만,

그게 어디 들어가겠는가.... 근데 그 와중에 사진은 찍히더이다;;;;

찌그러진 렌즈 옆으로 블러 현상과 함께...


찌그러진 렌즈는 블러 현상과 함께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고, 결국 한국와서 재탄생.

순간 당황함도 잊은 채 사진이라도 찍히니 이게 어디냐며... 난 웃고 있는데

남편 왈

"그러게 그걸 왜 거기 위에다 올려놨어..."


아놔... 좋다고 같이 사진 찍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내 탓이란다...

내가 떨어질 줄 알고 올려놨나... 그리고 이미 떨어진 거 어쩌라는 건지...


그마나 남편에게 있던 캐논 카메라가 하나 더 있었고,

이 카메라도 아예 찍히지 않는 건 아니니 다행이다 싶었던 나와는 달리 

앞으로 여행기간도 많이 남았는데... 이제 어쩌냐... 하는 걱정부터 앞서던 남편.


이렇게 서로가 너무 다른 두 사람.


사실 난 카메라가 망가져서 우리의 사진을 찍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이 사태에 대해 니탓이니 내 탓이니 하는 그의 말 한마디가 서운했다.


그 이후로 둘 다 침묵... 둘의 침묵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본인도 미안했는지 다음날 먼저 사과를 하며 우리의 여행 일정은 그렇게 이어졌다.

(다음날 일정이 인터라켄 융프라우를 올라가는 일정이었는데 아침까지 냉전 중이라 나 혼자만 모자와 장갑을 챙겼고, 남편은 깜빡 잊은채 맨몸으로 칼바람을 맞아야 했다. 그러게... 싸워서 득볼게 하나도 없다니까...)


싸운 후 융프라우를 장갑과 모자없이 올라간 남편과 완전무장한 나..


먼 타지에서 떠나오면 누구나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정해진 경비 안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기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행의 절반 정도 되는 나라인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피렌체에서 로마로 넘어가는 날, 그 악명 높은 테르미니역에서 지하철을 타야 했다.

남편과 나는 각각 캐리어와 짐들을 들고 퇴근시간에 지하철을 타는데...

남편이 가지고 있던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것이다.


완전 멘붕이 온 남편. 얼굴이 사색이 돼서는 "지갑 없어졌어"라고 지하철에서 외친 말 한마디.

순간 나도 놀랐지만, 다행히 현금이 많지 않았고, 카드 분실신고만 하면 된다 생각했다.

물론... 아직 멀쩡한 지갑이 아깝긴 했지만...;;;


아무튼 숙소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남편은 한참을 정신을 못 차리고... 멘붕에 빠져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지 뭐... 피렌체에서 산 지갑 쓰라고 소매치기당했나 봐~ "

이러면서 허허 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무 생각 없이 웃었나 싶다.


결국, 우린 스페인에서 루믹스 단렌즈를 구입. 단렌즈의 신세계를 발견함.


그래도 그러게 지갑을 왜 거기에 뒀냐... 내가 가방 옷에 잘 숨기라고 하지 않았냐...

라는 타박을 줄 필요도 없었고, 그 말들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린 또 추억 하나를 만들어간 셈이니...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한다. 


"그때... 피렌체 쇼핑백 다 뜯겨있고, 그 사이에 사과 두 개 달랑 거리던 거 되게 웃겼는데..."


인생을 살면서도 그렇지만, 특히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여행지에서는 

서로의 말 한마디가 앞으로의 여행 일정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유를 찾고 싶어 떠났는데... 오히려 송곳처럼 날카로운 마음을 가지고 여행을 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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