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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작 Feb 13. 2017

예상치 못한 순간의 즐거움_ 1

캐리어 끌고 떠나는 2박 3일간의 섬 여행.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내 나이 26살 때 일이다.

한동안 국내여행을 미친 듯이 다녔던 그때. 웬만한 국내는 다 다녀본 터라

뭔가 흔치 않은, 남들은 잘 모르는 그런 곳을 여행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낸 것이 섬 여행...


혼자 사색하기 좋은 청산도를 갈까, 하늘에 운명이 달린 울릉도, 독도를 갈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만만치 않은 경비 때문에 깔끔하게 포기. 

지역 50% 할인이 가능한 인천에 있는 섬을 찾아보기로 한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백령도를 갈 생각을 하고 있던 터,

그때 당시 일하고 있던 잡지 기사에서 '굴업도'라는 작은 섬을 알게 되었다.


보기만 해도 참 아름답고 여유로웠던 굴업도. 이곳이 우리의 여행 종착이였다.


굴업도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한동안 관광개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넓은 섬 안에 단 5가구만 살고 있으며, 그 흔한 슈퍼 하나 없는 것이 특징.

맑은 공기와 천혜의 경관을 자랑해 백 패킹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몇 년 전 KBS 1박 2일에 나와 어느 정도 유명세는 탔지만, 아직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곳인 것 같다.

아무튼 내가 굴업도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 '슈퍼 하나 없기 때문'이었다.


굴업도에서의 숙박은 오로지 민박집뿐... 숙박료에 밥값까지 다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술이라든지, 기타 먹거리는 내륙에서 사가야 하는 곳.


볼거리도 많지 않아 천천히 2박 3일 동안 섬을 오롯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당첨.

미친 듯이 관광을 하는 것이 아닌, 진짜 깊은 섬에 들어가

휴대폰도 터지지 않아 연락이 안 되고, 여유롭게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며

가끔 지루하다 싶을 때면 바닷가 산책 정도 하는 그런 여행을 하기 딱이었다.


그렇게 홀로 섬 여행을 계획하던 중 대학 동기가 함께 합류하게 되었고,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함께 하는 2박 3일 섬 여행은 시작되었다.


캐리어 두개에, 과자까지 바리바리 굶어죽을까봐... 저리도 많이...


평상시 이동이 간편한 배낭을 메고 여행을 많이 다닌 우리.

이번 여행은 이동이 많이 않으니 노트북, 읽은 책들 마음껏 넣고 가자!라는 마음으로

캐리어를 가지고 갔었다.(섬에 각각 캐리어 하나씩 들고 온 우리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날은 2012년 4월 6일... 당시 인천에서 떠나던 내륙 날씨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금세 비가 올 것 같은 아주 흐린 날씨... 우리 엄마가 싸준 주먹밥을 먹으며 

우린 덕적도로 향하는 배에 탑승했다. 굴업도를 가기 위해선 인천 연아 부두에서 덕적도로 간 후

덕적도에서 굴업도를 연결하는 작은 배를 탑승해야 한다.


날씨는 점점 흐려지고, 파도도 점점 높아졌다. 덕분에 멀미를 하지 않기 위해 깊은 잠을 청했고,

선원이 큰 소리로 내리라고 해서야 겨우 우리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렇게 배에서 내리려던 순간, 

배는 다시 덕적도를 향해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분이 말을 하자마자 나왔어야 하는데, 우린 추우니 안에 좀 더 있다가 배가 멈추면 내리자... 하고

이제 멈췄겠지 하고 나갔더니 이미 배는 굴업도에서 멀어져 가고 있던 상황...

이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에서 우린 그저 멍 때리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 우리 이제 어쩌지..."


각종 김치와 장아찌와 함께 내어주셨던 왕뚜껑 사발면. 잊을 수 없는 싱겁지도 짜지도 않았던 알맞았던 그 맛.

젊은 여자 둘이, 그것도 캐리어 끌고 와서는 내려야 한다며 징징거리는 모습이 꽤 웃겼는지

선원분께서는 친히 점심으로 사발면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배는 덕적도로 향해 갔고, 우리는 그때 큰 결단을 내려야 했다.


"우리는 굴업도를 여행하려고 했지, 덕적도를 오려고 한 게 아니잖아. 그냥 다시 인천으로 갈까? 아니면, 그냥 덕적도에 오늘 있다가 내일 굴업도 들어갈래?"


이렇게 사발면을 먹으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중,

(그와중에 물조절 기가막히게 하셔 찰진 왕뚜껑을 맛볼 수 있었다.)

우리의 고민을 한방에 해결한 선원의 한마디


"지금 날씨가 안 좋아서 덕적도에서 인천 나가는 배도 끊겼어."


덕적도 여객터미널엔 저렇게 당당하게 여객선 통제라는 푯말만 덩그러니...

푸하하하하

정말 말이 씨가 되는 순간이었다.

"여행하다 날씨가 안 좋아서 인천 못 오면 못 오는 대로 있지 뭐..." 


라고 무심하게 내뱉은 말이 현실로 돌아오다니....


그렇게 우린 덕적도에 갇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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