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 끌고 떠나는 2박 3일간의 섬 여행.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내 나이 26살 때 일이다.
한동안 국내여행을 미친 듯이 다녔던 그때. 웬만한 국내는 다 다녀본 터라
뭔가 흔치 않은, 남들은 잘 모르는 그런 곳을 여행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낸 것이 섬 여행...
혼자 사색하기 좋은 청산도를 갈까, 하늘에 운명이 달린 울릉도, 독도를 갈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만만치 않은 경비 때문에 깔끔하게 포기.
지역 50% 할인이 가능한 인천에 있는 섬을 찾아보기로 한다.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백령도를 갈 생각을 하고 있던 터,
그때 당시 일하고 있던 잡지 기사에서 '굴업도'라는 작은 섬을 알게 되었다.
굴업도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한동안 관광개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넓은 섬 안에 단 5가구만 살고 있으며, 그 흔한 슈퍼 하나 없는 것이 특징.
맑은 공기와 천혜의 경관을 자랑해 백 패킹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몇 년 전 KBS 1박 2일에 나와 어느 정도 유명세는 탔지만, 아직까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곳인 것 같다.
아무튼 내가 굴업도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 '슈퍼 하나 없기 때문'이었다.
굴업도에서의 숙박은 오로지 민박집뿐... 숙박료에 밥값까지 다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술이라든지, 기타 먹거리는 내륙에서 사가야 하는 곳.
볼거리도 많지 않아 천천히 2박 3일 동안 섬을 오롯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당첨.
미친 듯이 관광을 하는 것이 아닌, 진짜 깊은 섬에 들어가
휴대폰도 터지지 않아 연락이 안 되고, 여유롭게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며
가끔 지루하다 싶을 때면 바닷가 산책 정도 하는 그런 여행을 하기 딱이었다.
그렇게 홀로 섬 여행을 계획하던 중 대학 동기가 함께 합류하게 되었고,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함께 하는 2박 3일 섬 여행은 시작되었다.
평상시 이동이 간편한 배낭을 메고 여행을 많이 다닌 우리.
이번 여행은 이동이 많이 않으니 노트북, 읽은 책들 마음껏 넣고 가자!라는 마음으로
캐리어를 가지고 갔었다.(섬에 각각 캐리어 하나씩 들고 온 우리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 날은 2012년 4월 6일... 당시 인천에서 떠나던 내륙 날씨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금세 비가 올 것 같은 아주 흐린 날씨... 우리 엄마가 싸준 주먹밥을 먹으며
우린 덕적도로 향하는 배에 탑승했다. 굴업도를 가기 위해선 인천 연아 부두에서 덕적도로 간 후
덕적도에서 굴업도를 연결하는 작은 배를 탑승해야 한다.
날씨는 점점 흐려지고, 파도도 점점 높아졌다. 덕분에 멀미를 하지 않기 위해 깊은 잠을 청했고,
선원이 큰 소리로 내리라고 해서야 겨우 우리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렇게 배에서 내리려던 순간,
그분이 말을 하자마자 나왔어야 하는데, 우린 추우니 안에 좀 더 있다가 배가 멈추면 내리자... 하고
이제 멈췄겠지 하고 나갔더니 이미 배는 굴업도에서 멀어져 가고 있던 상황...
이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에서 우린 그저 멍 때리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 우리 이제 어쩌지..."
젊은 여자 둘이, 그것도 캐리어 끌고 와서는 내려야 한다며 징징거리는 모습이 꽤 웃겼는지
선원분께서는 친히 점심으로 사발면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배는 덕적도로 향해 갔고, 우리는 그때 큰 결단을 내려야 했다.
"우리는 굴업도를 여행하려고 했지, 덕적도를 오려고 한 게 아니잖아. 그냥 다시 인천으로 갈까? 아니면, 그냥 덕적도에 오늘 있다가 내일 굴업도 들어갈래?"
이렇게 사발면을 먹으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중,
(그와중에 물조절 기가막히게 하셔 찰진 왕뚜껑을 맛볼 수 있었다.)
우리의 고민을 한방에 해결한 선원의 한마디
푸하하하하
정말 말이 씨가 되는 순간이었다.
"여행하다 날씨가 안 좋아서 인천 못 오면 못 오는 대로 있지 뭐..."
라고 무심하게 내뱉은 말이 현실로 돌아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