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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작 Jun 23. 2022

솥밥에 안개가 오르면, 나는 그게 그렇게 좋더라

    최근에 솥을 샀다. 수십 년을 전기밥솥에 지은 밥만 먹다가 솥밥을 먹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거의 솥밥으로만 밥을 지어 먹는다. 시간도 생각보다 얼마 안 걸린다. 미리 쌀을 불려 놓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밥을 시작하면 너무 늦지 않게 밥을 먹을 수 있다. '이 좋은 걸 왜 이제 시작했지?'라며 놀란다. 제주도에서나 먹을 수 있는 건 줄 알았던 (전복) 솥밥, 한정식 집에 가서 먹는 거라며 아무 의심 없이 내 삶과는 별개의 것이 었던 돌솥 안의 밥들. 내 삶에서 동떨어져 보이던 것들이 하나둘 교집한다.


미역 줄기 명란 솥밥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집에서 먹는 음식들은 어느 곳보다 몇 배는 푸짐하다. 아내와 내가 먹을 2인분의 미역 줄기 명란 솥밥이었다. "양이 많겠네.", "남으면 넣어 뒀다가 먹자."라는 말이 민망하게 한 끼 식사로 끝냈다. 다음은 없다.


콩나물 명란 솥밥

    콩나물 명란 솥밥의 명란은 튜브 형태의 명란을 활용한 음식이다. (아무래도 또는 개인적으로) 통 명란이 맛있다. 전기밥솥으로 소고기 콩나물밥을 아내가 해 준 적 있다. 그러면서 "솥밥으로 이거 해 먹으면 훨씬 맛있어."라는 말을 덧대었다. "차이가 있겠어?"라고 말했다. 말은 했다. 솥밥 구매는 곧 돈이니까, 말만 했다. 돌이켜 보니 진작 살 걸...... 이 좋은 걸 왜 이제 시작한 거지...... 


스테이크 솥밥

    점심은 무겁게 저녁을 가볍게 먹던 아내와 점심은 가볍게 저녁을 무겁게 먹던 내가 만났다. 지금은 둘 다 점심은 가볍게, 저녁을 무겁게 먹는다. 무거움의 기준은 명쾌하지 않다. 다만 점심에 비해서는 많은 칼로리를 섭취한다. 한 끼는 필수로 매운 것을 먹는데, 주로 저녁이다. 거의 청양고추를 끼얹는다. 깻잎, 청양고추 토핑의 스테이크 덮밥은 환상이다. 느끼할 법하면 스테이크 소스도 살짝 찍어 먹으면 아주 좋다. 고추냉이도 거들면 좋다. 아주 좋다.


래디시 솥밥

    심심한 맛을 좋아한다면 상당히 맛있다. 식감과 색감이 좋고, 무 맛이다. 가정마다 각자의 역할이 어느 정도 있지 않겠나. 이건 네 일, 이건 내 일이 아닌, 익숙하듯 자발적인 어떤 역할들. 개중 솥밥은 항상 아내의 몫이다. 솥밥을 우리 집에 처음 들인 사람도, 맛의 차이를 알려 준 사람도...... 그리고 우리는 주로 현미를 사용한다. 현미를 먹은 지는 십여 년은 된 거 같다. 하루 들여 현미를 불리고 밥을 지으면, 그냥 맛있다. 그냥 맛있는 솥밥을 그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냥 지금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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