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래옥> 방문기
"나 예전에 살 때는 냉장고에 냉면이 항상 가득 찼었어. 당신 만나고 나서는 아니지만. 슬슬 냉장고에 냉면을 채울 거야."
아내는 여름이 되면 냉면을 유난히 찾는다. 사실 계절의 영향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언제든 찾았다. 냉면의 식감이 썩 취향에 맞지 않던 나는 썩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넘겨 왔었다. 생각해 보면 연애 때부터 줄곧, 아마 분기별로 한 번씩은 우래옥을 언급했었던 것 같다. "우래옥 한번 가 보자."
"평양냉면 먹고 싶다. 우래옥은 진짜 달라. 다른 냉면도 좋은데, 슴슴한 맛이 좋아. 진짜 맛있어."
"누가 행주 빤 물이라고 하던데?"
"누가 그래!"
"몰라, 들었어."
"다음 날 생각나는 맛이야. 먹을 때도 맛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나는 맛이라고."
"시간 되면 가 보자. 웨이팅도 많을 거 아니야."
가 보자고 말한 지 어언 4년 만에 가 봤다. 일산에서 서울 중구까지 긴 여정을 시작했다. 거의 다 왔다. 저 앞 골목에서 좌회전만 하면 되는데, 우래옥이라는 건물은 보이지 않지만 이곳 골목에서부터 우래옥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아내는 먼저 차에서 내려 대기 등록을 했다. 최초의 번호는 180번 대였다.(사진은 119번째부터 캡쳐했다.) '오후 3시쯤 대기 번호가 519번이면 4시간도 안 돼서 500명이 넘는 사람이 왔단 말이겠지?' 우래옥의 영업시간은 오전 11시 20분부터라고 되어 있다.
시간을 갖고 여유를 즐기려 했지만, 우래옥에 입성하기까지 2시간이나 걸렸다. 기다린 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했다. "기다림이 억울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중앙 계단이 인상적이었다. 본 적 없는 영화지만 <장군의 아들>에 나올 법한 느낌이었다. 계단을 따라 2층에 도착했다.
메뉴판을 오래 볼 필요가 없었다. 다른 메뉴 차치하고 지체 없이 전통평양냉면을 시켰다. 면수가 먼저 나왔다. 메밀을 우려 메밀 맛이 나는 것일 텐데, 메밀 맛이 뭔지 잘 모르는 나에게는 누룽지 맛에 가까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평양냉면을 마주했다. 맛 칼럼니스트는 아니지만, 나는 적어도 식은 음식이 싫어 배달 대신 자차로 음식을 픽업해서 온다. 내가 먹었던 순서와 느낌들을 최대한 복기해 본다.
하나, 그릇째 국물을 마셨다. '뭐지? 별론데?'
둘, 면을 풀었다. 잘 뭉쳐져 있었다. 쉽게 풀리진 않았다.
셋, 면만 먹었다. '크게 잘 모르겠네? 왜 맛있다고 하는지?'
넷, 면이랑 고명(배, 김치, 고기)을 같이 먹었다. '먹을 만하네.'
다섯, 면과 고명을 절반 가까이 먹고, 식초와 겨자를 넣어 먹었다. '간이 좀 맞는 거 같은데, 적게 넣어서인지 큰 차이는 없네?'
여섯, 김치를 먹었다. '완전 맛있네? 파절임 소스인가? 겉절이네. 좀 다르네?'
일곱, 면에 김치를 얹어 먹었다. '맛있다. 맛있네.'
여덟, 김치만 먹었다. '김치 진짜 맛있네?'(아내와 나는 김치를 잘 안 먹는다. 그 흔한 김치가 우리 집 냉장고 안에는 없다. 가끔 팩으로 된 김치를 사 먹는다.)
아홉, 면과 김치와 고명과 국물을 동시에 먹었다. '좋네.'
기다린 시간에 비해서 먹는 시간은 초라하게 짧았다. 잠깐 앉아서 아내와 함께 맛에 대해 토론을 하고, 다음 동선을 이야기하다가 다시 맛에 대해 심층 토론을 하고, 가볍게 소화를 시키면서 일어났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서 종로 카페 데이트는 넘기고 바로 일산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돌려 청계5가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 나는 "평양냉면 맛있네. 또 먹고 싶다."라고 내뱉었다. 아내는 냉면 생각에 흥분한 내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 말 맞지? 다음 날 생각나는 맛이라고?" 나는 말했다. "다음 날은 무슨, 먹고 나서 고개 돌리니까 바로 생각나는구만."
이제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우래옥 평양냉면 먹어 봤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다. 그냥 "우래옥 먹어 봤어?"라고 해도, 평양냉면임을 꽤나 당연하게 알 테니까, 그냥 "너 우래옥 먹어 봤어?"라고 물어볼 거다.
※ 우래옥 방문 팁
대기 등록을 해 놓고, 새로고침을 눌러 현재 내 순서를 꾸준히 확인한다.
실내 대기가 제한적이라 건물 앞에서 주로 기다리는 데, 너무 덥고 지칠 것 같다. 우리는 차에서 에어컨을 틀고 기다려서 그나마 괜찮았지, 땀을 흘리며 적어도 1시간 이상을 기다린 사람들이 많았다. 근처 카페에서 음료 한 잔 마시며 기다리다가 입장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산책 또는 전시 관람, 살 것들이 있다면 잠깐 다녀와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