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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작 Jul 08. 2022

나의 여름일지

    나는 여름에도 긴팔을 입었다. 긴바지에 운동화. 슬리퍼나 샌들이 어색했고,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내 종아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내의 생일은 8월 여름이고, 내 생일은 4월이다. 그리고 우리는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있다. 1년 동안 많은 것들은 바뀌었고 많은 것들은 그대로다. 주위에서 "결혼하면 좋아?"라고들 많이 묻는다. 그리고 결혼 후에 바뀐 게 있냐고도 묻는다. "응, 나는 더위를 많이 타게 되었고, 아내는 추위를 많이 타게 되었어. 체질이 바뀌나 봐." 이어서 말한다. "그리고 내 입맛이 아내 입맛이 되어 버렸어. 면을 안 좋아했는데, 찾게 되네. 날이 더워서 그런가?"




초계국수


    다이어트를 위해서 사 둔 닭 가슴살은 냉동고에 방치되어 있었다. "살 빼야지."라는 다짐은 다짐으로만 그치고, 어김없이 분주하게 부엌에서 도마와 칼을 꺼내 요리를 시작한다. "냉장고 좀 비우자." 목적이 상실된 닭 가슴살은 초계국수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한 끼의 필수템인 청양고추 토핑으로 깔끔한 자극을 선물한다. 여름에 나의 할머니는 왜 오이냉국을 해 드셨는지 이제는 알겠다. 여름의 오이는 달다.




여름파스타


    연애 시절, 아내의 작은 성토 중 하나는 "파스타 먹으러 가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데이트를 할 때마다 삼겹살을 줄곧 찾았기 때문이다. "파스타는 뭔가 돈 주고 사 먹기 아까워."라고 말한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는 요즘, 아내는 여름파스타라는 처음 접하는 음식을 선보였다. 부라타치즈, 바질페스토, 레몬 등의 조화는 이름 그대로 '여름'에 참 좋을 파스타였다. "건강한 맛이야."




냉라면


    김밥을 만들어 먹으려고 사 둔 단무지가 되려 '면'과 많은 어울림을 가졌다. 냉라면의 토핑은 '냉장고 털기'로 나온 재료들이다. 단무지가 기본적으로 간이 강한 편이기에 국물의 간은 조금 덜하게 먹는다. 매번 느끼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에 비해서 먹는 시간은 초라하게 짧다. '천천히 먹어야지'를 실천하기에 '면 요리' 항상 최대의 적이다.




돔베 비빔국수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냉면이든 메밀이든 종류 상관없이 주로 비빔류를 먹었다. 물냉면, 메밀, 물막국수는 뭔가 심심했다. 자극적인 게 좋았는데, 이제는 입맛이 바뀌었다. 어딜 가면 '물' 자가 앞에 붙은 음식을 시킨다. 아내와 함께 식당을 가면 물과 비빔을 하나씩 시켜 나눠 먹는다. 여름, 아내와 함께 제주 섭지코지를 갔다가 근처에서 돔베고기 국수를 먹은 적 있었다. 어릴 적, 명절 때면 돔배기 산적이 상 위에 항상 있었다. 상어고기라고 한다. 그 기억을 가지고 제주도에서 돔베 비빔국수를 시켰을 때, 종업원께 여쭈었다. "이거 상어고기라는 거죠? 돔배기, 돔배고기?" 종업원께서는 "맞다."라고 해 주셨는데, 먹다 보니 어릴 적 그 맛이 아니었다. 검색을 해 보니 이 돔베는 그 돔배가 아니더라. 생각해 보면, 기억에 남는 장소에는 줄곧 기억에 남는 음식이 함께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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