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학교는 물가가 싸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대학 주변이 물가가 싸다는 것도 다 옛말이라는데 10년 전 즈음 그 동네는 2천 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동네였다. 한 끼에 만원을 기꺼이 내는 지금의 나는 그때는 뭐가 그리 아까워서 그 동네에서도 싼 가게만 찾아다녔을까. 딱히 돈이 궁한 것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새 학기 초에는 설날이니 뭐니 해서 용돈을 조금이라도 받아 챙겨 부수입이 있었다. 지갑 사정도 넉넉했다 밥 먹는 데에 쓰는 돈이 아까웠던 것은 주로 2학기였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기말 시험은 점점 다가오고 작고 소중한 내 인간관계는 2학기가 되면 각자 자기 사정으로 모이기 힘든 날이 연속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한번 만나는 날이면 우리는 종종 뒷고기 집으로 향했다. 싸늘하게 바람이 불면 외투가 단번에 두꺼워진다. 부산의 초겨울은 춥진 않아도 바람이 매서웠다. 좁은 인도를 지나 벽이 학생들의 낙서로 가득한 드럼통과 은색 쟁반 같은 테이블 인테리어로 무장한 뒷고기 가게 안에 들어서면 그제야 옷 걱정을 하곤 했다.
대학 주변에는 유독 '뒷고기'라는 고기를 파는 집이 많았다. 1인분에 2천 원에서 3천 원 정도 하는 고기였다. 가지 않은지 몇 년이나 지난 지금 부산 시내의 어느 식당을 가도 그렇게 고기를 파는 집은 없다. 그 당시 물가와 비교해도 싼 가격이었다. 연탄 불이나 가스불에 올려 굽는 고기는 가격이 주는 맛이 상당했다. 직원들은 쉴새없이 연탄불을 갈거나 환기구를 조정했다. 주머니 사정 팍팍한 대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소주 안주에, 식사 메뉴였을 것이다. 양도 꽤 푸짐했고 가게만 잘 고르면 누린내도 거의 나지 않았다. 나지 않는다고는 해도 가게를 나서기 전에 섬유탈취제를 겉옷이 축축해지도록 뿌려야 했지만.
'뒷고기'를 칭하는 단어는 꽤 다양한데, 보통 여러 고기 부위를 썰고 남은 부위를 칭한다. 주로 앞다리나 뒷다리살 쪽이 많고 그날 운이 좋다면 삼겹살에 가까운 부위나 갈비 부위도 있는 듯했다. 그 동네를 주름잡던 뒷고기 브랜드 중에 역시 가장 유명한 것은 '김해 뒷고기'였다. 당시에는 사장님의 고향이 김해 겠거니 했는데 몇 년 뒤 알고 보니 김해 인근의 돼지 도축장에서 업자들이 몰래 부위별 고기 처리를 하고 남은 고기를 저렴하게 판 데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산 아귀찜이나 부산 밀면 같은 의외로 지역의 역사가 있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런 깊은 사정까지 알 일 없던 대학생들은 어느 집 뒷고기가 맛있다더라, 하는 소문이 나면 그 집으로 몰리곤 했다. 우리가 가는 집도 그런 집이었다.
뒷고기는 가게별로 고기의 질이 천차만별이고, 같은 가게라도 그날그날의 고기의 질이 다르곤 했다. 일반적인 고기 가게라면 같은 품질의 부위를 내는 것이 기본이었겠지만 이곳은 이름도 '뒷고기'인 데다가 가격까지 저렴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고기 맛을 그다지 따지지 않고 한 끼를 해결하거나 안주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면 되었던 우리도 그랬다. 우리가 가는 뒷고기 집은 직원이 직접 고기의 먹기 좋은 정도를 알려주곤 했다. 뒷고기는 보통 누린내가 많이 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밑간을 좀 세게 해서 나오는 편이다. 거기에 다양한 양념장을 찍어서 먹거나 쌈장에 깻잎 정도만 있어도 충분했다.
고기를 쌈에 싸서 넣는 순간 추운 날씨라거나 학점 걱정은 저 멀리 사라졌다. 친구들은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나 예능을 보았던 이야기, 오늘 나온 과제에 대한 것들, 남자 친구 걱정이나 길에서 본 고양이 이야기 같은 것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즈음의 우리는 언제나 수다에 목말라 있었나 보다. 카카오톡이 나오기 직전인 시기였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데에 돈이 들던 시기였다. 네이트온과 싸이월드가 남아있던 날들이니 이만하면 화석들의 추억이라 할 법하다.
찬바람이 불고 오래된 고깃집 근처를 지나갈 때, 그 안에서 무릎을 치면서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여지없이 그즈음의 기억이 선명해진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뒷고기도 한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문제는 이제 전국 각지에 흩어진 그맘때의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할 수도, 얼굴을 볼 수도 없다는 것. 그래서 뒷고기 집을 몇 번 쳐다보기만 했을 뿐 아직 가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일은 꼭, 애들한테 연락을 해 보아야겠다.
사진출처: unsplash @Frank Zh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