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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Apr 08. 2021

와르륵 소나기와 핫초코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다. 그런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 황순원, 「소나기」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에,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모두 한 번쯤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읽는다. 소나기를 맞으며 강을 건너고, 소녀의 죽음을 알게 되는 소년의 이야기이다. 시험문제로 백번은 넘게 풀었던 것 같기도 하다. 1950년대에 발표가 되었는데도 여태까지 학생들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고, 그래서 소나기를 맞는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의 여러 장면에 이용되기도 했다. 


 비를 쫄딱 맞은 사람들은 어쩐지 처연해진다. 옷이 온통 젖어 마른자리에 앉지도,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한 채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더운 여름에도 빗방울만은 어찌 그리 차가운지 시원하다고 느꼈다가도 금방 몸이 으슬으슬 추워진다. 소나기는 그야말로 와르륵 소리를 내듯이 쏟아진다. 소설 속에서처럼 어린아이 둘이 제대로 비를 피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얼른 피해야 하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한두 방울이 아니라 순식간에 쏟아지는 물방울에 인상을 찌푸리며 건물의 차양 아래로 잠시 몸을 피한다.


 온통 젖은 채로 가만히 있다 보면 몸속이 따스해지는 음식이 먹고 싶어 진다. 밥을 먹고 난 이후라도 빗방울에 한차례 휘둘리고 난 후라 정신이 멍하다. 마음도 안정시키고 기분을 조금 더 좋게 하기에는 역시 핫초코만 한 것이 없다.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다면 말이다. 겨울에 선호하는 간식이기는 하지만 생각을 해 보면 겨울에는 붕어빵도, 호떡도, 군고구마와 유자차도 있다. 그러니 핫초코 하나만큼은 여름에 즐겨도 되는 일이지 않은가.


 간편하게 핫초코를 만들기 위해선 뜨거운 물과 개통령님의 광고가 인상적이었던 핫초코 브랜드가 있으면 된다. 하지만 조금 더 '초콜릿'에 집중을 하자면 사람마다 핫초코를 만드는 방법은 무궁무진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역시 초콜릿과 설탕, 그리고 우유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판 초콜릿, 기왕이면 초콜릿 함량이 좀 높은 초콜릿을 준비한다. 상품 설명에 분류가 '초콜릿'이라고 적혀 있는 제품이면 좋다. 구분하기 힘들다면 '다크 초콜릿'이라고 적혀있는 제품을 사자. 그리고 기왕이면 칼로리가 동량 대비 좀 낮은 걸로. 살이 안 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설탕 양이 조금 더 적고 카카오(혹은 코코아매스라고 부르는 그것) 함량이 좀 더 높기 때문이다. 추천하는 제품은 허*의 다크 초콜릿이다. 한국에서, 편의점에서 비교적 구하기 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다크 초콜릿이 없다면 상품 분류에 적어도 '밀크 초콜릿'이라고 적힌 제품을 고르면 된다. '준초콜릿'은 핫초코의 핵심인 코코아매스의 함량이 낮다. 그것만 기억하면 쉽다. 만약 아무것도 없고 준초콜릿만 있다면, 어쩔 수 없으니 그거라도 활용하는 수밖에.


 초콜릿과 우유, 설탕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녹이고 섞을 차례다. 우유는 냄비에 끓여도 되고, 전자레인지에 데워도 된다. 끓인다면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올 때까지 중간 불에서 약한 불을 오가며 데워준다. 전자레인지에 데울 때는 끓어 넘치지 않도록 30초에서 1분을 먼저 데워준 후 한번 섞고 다시 데워주는 식으로 천천히 데운다. 여러 번의 폭탄을 맞고 터득한 방법이다. 


 그 사이 초콜릿을 가능하면 잘게 부순다. 칼로 잘라도 된다. 손으로 손톱만 하게 자르는 것이 좋다. 부순 초콜릿은 컵 안에 넣고 우유가 데워지기를 기다린다. 가장 지루한 시간이지만 제일 설레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유가 데워지면 천천히 컵 안에 우유를 넣으며 초콜릿과 섞이면 되기 때문이다. 이때 달콤하게 먹고 싶다면 설탕을 티스푼으로 한 스푼 정도 넣어준다. 카카오 90% 함량의 초콜릿이 아닌 이상 대부분은 설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넣지 않아도 되긴 한다. 처음에는 초콜릿이 잠길 정도만 넣어서 살살 저어가며 녹이고, 차차 많이 붓는다. 한 번에 다 넣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원하는 농도까지 우유를 붓고 나서 우유가 남았다면 거품기로 거품을 내거나 너무 뜨겁지 않은 상태(손으로 만졌을 때 미지근한 정도)에서 텀블러나 내열 물통에 넣고 흔들어 준다. 가볍게 우유 거품을 내주는 것이다. 그 거품을 장식처럼 초콜릿 위에 올려주고 코코아 가루가 있다면 위에 톡톡 뿌려준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초콜릿을 녹여서 우유랑 섞으면 되는 일이다. 판 초콜릿 반개에 우유는 200ml 정도. 양껏 마시고 싶다면 판 초콜릿 하나를 다 써서 500ml 우유와 섞어주면 좋다. 향신료를 좋아한다면 계핏가루나 넛맥 가루를 아주 조금 타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 계피는 많이 넣으면 카페인을 과다 섭취한 것처럼 가슴이 두근 더리고, 넛맥 또한 독이 될 수 있다. 바닐라 가루가 있다면 바닐라 가루나 오일을 살짝 타 주는 것도 풍미가 좋아진다. 물론 판 초콜릿 안에 합성향료가 들어있기는 하다. 


 개통령님이 광고하셨던 그 제품도 맛있게 먹으려면 데운 우유에 녹여서 계피 가루(시나몬 가루가 있다면 시나몬 가루!)만 조금 더 뿌려도 고급스러운 카페 메뉴가 되기도 한다. 마시멜로가 든 핫초코로 유명한 스위*미* 제품도 마찬가지다. 핫초코로 나온 제품들은 모두 우유에 타서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제품 안에 크리머(우리가 프리마라고 하는 바로 그것)가 들어있긴 해도 진짜 우유의 풍미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소나기가 퍼부어서 비를 잔뜩 맞고 만신창이로 집에 돌아온 날 우유가 데워지는 동안 샤워를 끝내고 비 오는 풍경을 보면서 핫초코를 한잔 마시면 천국이 따로 없다. 무사히 집에 왔다는 안도감도 든다. 나른하게 따스하고 목 안쪽까지 따뜻하게 적셔지는 초콜릿 음료 덕에 우울했던 축축함이 사그라든다. 뽀송뽀송하게 건조기로 말린 극세사 담요를 두르고 방구석에서 비가 오는 창문을 바라보는 여름날. 누구 하나 위로해 줄 사람이 없는 집에서 스스로 내일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충전하고 싶을 때는 달콥 쌉싸래한 핫초코를 추천한다. 






사진출처: pixabay @EddaKle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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