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의 별미! 두릅 크림 파스타
시작하는 계절에 딱 맞게.
몇 년이나 계속되는 부모님의 취미가 있다. 바로 주말농장. 꽤 넓은 평수의 밭에 몇십 가지나 되는 식물들을 심어서 먹기도 하고 나눠주기도 하신다. 밭의 대부분은 매화나무지만 나무 일부를 베어내고 다른 식물들도 잔뜩 심었다. 겨울에는 쓸쓸한 나무 숲인데 봄비가 몇 차례 오고 나면 어느새 쑥부터 슬금슬금 연녹색 풀들이 움트기 시작한다.
그렇게 봄나물의 계절이 시작된다. 봄나물들은 대개 향이 강한 편이다. 달래나 냉이도 그렇고 곰취와 머위에 참나물, 고사리, 취나물도 각각의 향이 있다. 자주 먹어본 사람이라면 대개 그 쌉쓰레한 맛을 상상할 때마다 군침이 돈다. 그중에서도 특이하기로는 두릅이 제일인 것 같다. 두릅은 보통 나무 두릅을 참두릅이라고 한다. 두릅나무라는 나무에서 나는 새순이다. 그래서 봄에 따는 나무 두릅순은 크기도 작고 새싹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개두릅으로 불리는 식물도 있는데, 개두릅은 사실 엄나무라는 나무의 순을 말한다. 얼핏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엄나무 잎은 나중에 손바닥 모양으로 활짝 펼쳐지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줄기가 조금 더 단단하고 굵다. 엄나무 잎은 연할 때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그 특유의 향과 쓴맛이 강하다. 마지막이 땅두릅인데, 땅두릅은 독활이라는 작은 나무처럼 생긴 풀에서 난다. 같은 두릅나무 속이기는 하지만, 보통 땅두릅은 아래쪽이 단단하고 죽순처럼 껍질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보니 두릅 비교글처럼 되긴 했지만, 세 가지 종류의 두릅 모두 제각각 향이 있고 모두 봄에 나는 맛있는 나물들인 데다 약효도 있어 건강에 좋다. 봄나물을 즐겨 먹는 나도 부모님이 맛 보여주시면 사양하지 않는다. 그래서 얻어낸 것이 바로 삶아서 냉동한 두릅이었다. 양이 잔뜩이라 한 번에 먹기 힘들 때 삶아서 삶은 물에 넣은 채 얼려놓는데 그렇게 하면 사시사철 두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초봄에 장만한 두릅을 꺼내서 물에 녹였다. 전날 밤에 물에 담가 두었더니 다음날 아침에는 물에 살살 풀어진 데친 두릅이 가득했다. 초장에 얼른 찍어 하나를 먹어보니 초봄에 먹는 연한 그 맛 그대로다. 어쩜 하나 물러진 것 없이 그대로라서, 일부는 끓는 물에 10초만 데쳐서 초장 양념에 정석대로 먹기로 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집에는 그러고도 한주먹은 되는 두릅이 남았다. 바깥에 봄기운이 가득이라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브런치라도 즐길까 했다가 생각을 바꿨다. 코로나 시국인데 가긴 어딜 가. 집에서 카페 못지않게 커피를 내려 홈카페도 즐기고, 레스토랑도 즐기는 집순이의 날을 기념하기로 했다. 커다란 냄비에 물을 올렸다. 분위기 내기에는 파스타가 최고니까.
파스타는 라면만큼 쉬운 음식이다. 마트에 가면 파스타 소스와 파스타 면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만들고 싶다면 끓는 물에 면을 넣고 때때로 면을 뒤적거려 준 뒤, 8분 후에 끓이던 면의 물을 자작하게 남을 때까지 버린 후 거기에 1인분 분량의 파스타 소스를 넣으면 된다. 그 후는 좋아하는 농도가 될 때까지 소스를 졸이는 일만 남는다. 약간 묽은 듯 졸여야 식었을 때 내가 원하는 농도가 나온다. 물 끓이기-버리기-소스 넣기의 기본 공식 아래에서 고기나 햄, 해산물, 버섯, 각종 야채나 계란 같은 원하는 재료를 넣으면 된다. 매콤함을 즐기고 싶다면 고추장 반 스푼이나 매운 고춧가루 약간을 같이 졸여주면 더 좋다. 정석대로 파스타를 만드는 방법은 아니지만 이게 설거지 거리가 가장 적게 나온다. 일명 원 팬 파스타! 특히 토마토파스타 종류를 만들 때는 이 방법이 제일이다. 올리브유를 상비하고 있는 혼밥러의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을 것도 생각한, 기름도 적게 들어가는 파스타다.
크림 파스타 라면 조금 까다로워진다. 본래 크림 파스타, 흔히 까르보나라라고 불리는 진득한 파스타는 밀가루와 버터, 크림을 사용해서 루(roux)를 만들어 소스로 써야 한다. 베샤멜소스라고 한다.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밀가루와 버터와 크림은 다이어트의 주적이다. 만들기도 까다로워서 결국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고 맛은 더욱 깔끔하게 만들기로 했다. 면도 밀가루인데 소스까지 밀가루일 필요는 없으니까.
앞부분은 똑같다. 물을 올리고, 면을 끓여주다가 물을 자작하게 남을 때까지 버려준다. 토마토파스타보다는 조금 더 적게. 그릇을 하나 준비해서, 국그릇으로 한 그릇 정도만 물을 좀 남겨주면 좋다. 그리고 거의 남지 않은 물이 다 끓어올라 마르기 전에 올리브유를 좀 뿌려준다. 그리고 양파를 볶아야 한다. 양파가 없으면 대파도 좋다. 하지만 쪽파는 추천하지 않는다. 대파 가격이 비싼 요즘은 양파를 채 썰어 잔뜩 볶아 준다. 고기나 베이컨, 익는데 시간이 걸리는 재료는 다 지금 때려 넣는다. 그리고 양파가 노릇노릇 익을 때쯤에 필요한 것이 있다. 크림 파스 타니까 크림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구하기 쉬운 재료! 바로 우유다. 저지방도 무지방도 상관없지만 기왕이면 일반 우유를 써 주는 게 풍미를 확 살려준다. 우유와 양파가 만나서 약간 노릇한 색을 내면서 끓어오르면 둘을 잘 섞어주고, 우유가 적당히 졸아들 때까지 후추와 다른 향신료(바질이나 세이지 같은)를 약간 뿌려준다. 소금도 필요하다. 싱겁다 싶을 정도로 간이 되었을 때 풍미의 화룡점정인 슬라이스 치즈 한 장을 넣는다. 바로 이때가 두릅을 투하할 때다.
두릅과 크림 파스타라니. 누가 생각했는지 정말 환상적인 궁합이다. 하얀 크림 파스타가 눈처럼 쌓여있고 그 속에서 새순처럼 두릅이 보인다. 버섯을 좋아하는 나는 느타리버섯도 찢어서 함께 볶았다. 영양면에서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고 자칫 느끼할 수 있는 우유와 치즈의 조합에 두릅의 향을 얹으면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브로콜리 대신 두릅을 넣는다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은 없지만 맛은 브로콜리와 비교하면 듣는 두릅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
바게트도 한 조각 구워서 상 위에 얹고, 음료는 3년 전 봄에 담갔던 매실청을 탄산수에 타서 에이드로 만들었다. 반찬으로는 봄에 처음 난 쪽파와 집에 남아있던 양상추를 썰어서 오리엔탈 드레싱으로 살짝 간을 한 겉절이 겸 샐러드. 봄향이 한가득 근사한 퓨전 브런치가 되었다.
봄을 느낄 수 있어서, 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두릅을 좋아한다. 다양한 봄나물로 만드는 파스타를 한입 입에 넣을 때면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한식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다른 나라의 음식에 함께 올려도 향긋하게 거실로 봄을 데려다준다. 포근포근한 햇살과 조금 서늘한 공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