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주의보와 당근 파운드
올레길 걷다 날아가는 줄알았다
한창 제주에 빠져 계절마다 여행했던 것이 6년 전인가 7년 전쯤. 20대 여성이 올레길을 걷다 사고를 당했다는 흉흉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나는 자주 혼자 올레길을 걷곤 했다. 하루에 10km 이상 걸은 적도 있다. 올레길이 아니더라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에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도 하고, 지금만큼 택시 서비스가 좋지 않기도 했다.
대체로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분다. 길을 걸으면 긴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기 일쑤다. 백팩에는 최대한 짐을 조금만 담고 신발은 편한 것으로 신었다. 그렇게 송악산에서 바람을 맞으며 사계해안을 지나 용머리 해안으로 향했다. 한낮에도 바람 때문에 덮지 않았고 목이 마르면 물로 목을 좀 축인다. 아무 생각 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걷다가 다른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에게 (네이버 지도가 있음에도) 다음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묻곤 했다. 휴대폰에선 강풍주의보가 발령되었으니 조심하라는 알림이 자꾸 떴다.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가도 메시지가 뜨는 바람에 마음에 드는 장면을 자꾸 놓쳤다. 알림을 해제해 버렸다. 전국에 내리는 특보 알람이 다 울리게 해 두었던 시절이어서 휴대폰 배터리도 절약할 겸 해서였다.
셀카를 잔뜩 찍으려고 머리도 참하게 내리고 있었는데 햇빛을 등지고 걷는 데다가 바람 때문에 자꾸 안경 쓴 처녀귀신 한 명만 카메라에 담겼다. 좋은 장면이 있으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맞바람을 맞기 위해 뒤를 돌았다. 직업병은 이럴 때 쓰는 법. 바람이 일정하게 불 것 같은 지형을 한 곳마다 멈추고 사진을 찍으니 훨씬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철저한 3보 1컷의 마음가짐으로 여행에 임하는 나는 날아가는 이파리들이나 멀리 보이는 한라산, 점점 가까워지는 삼방산과 멀어지는 송악산을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얼마나 찍어대었으면 한때 삼방산의 사진은 사진만 보아도 위치를 대충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각도, 그 크기가 나오는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파지면 잠시 벤치에 쉬다가 걷기를 몇 시간. 삼방산 바로 아래 용머리 해안까지 한 바퀴 돌고 버스를 타기 위해 삼방 굴사 앞으로 향했다. 삼방 굴사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카페와 간단한 간식을 파는 곳들이 몇 개 있다. 등 뒤로 밀어주는 바람을 맞으면서 떠밀려 카페로 향했다. 누운 직사각형의 창문에 용머리해안이 넉넉하게 비치는 풍경이 일품인 카페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 카페를 갔을 때 이후로 당근으로 만든 디저트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게 되었다. 당근 주스, 당근 머핀, 당근 쿠키, 당근 파운드케이크에 화룡점정인 당근 케이크까지. 제주가 당근으로 유명하다 보니 당근을 활용한 디저트를 선보이는 가게도 많았다. 계좌 상회나 하우스 레시피 같은 유명한 가게들도 많았는데 이곳도 그런 곳들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만. 제주도를 테마로 한 소품도 함께 파는 그 카페는 조용했다. 방문하는 사람들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뿐이고 배경음악도 멜론 100위 음악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늘은 파랫고 그 하늘빛을 반사한 바다는 더 진한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기에 바람이 만들어낸 파도로 물비늘이 잔뜩 반짝거린다. 종종 들리는 버스 소리까지 완벽한 한 세트였다.
목이 타기도 했고 배도 고팠지만 저녁으로 전복뚝배기를 먹을 결심을 한 터였다. 하지만 제주도까지 왔는데 당근 디저트를 안 먹을 수 있나. 당근 케이크와 당근 파운드 중에 고민을 하다가, 어쩐지 조금 더 특별해 보이는 당근 파운드를 골랐다. 파운드케이크는 차와 함께 마시는 것이 나만의 국 룰이지만 그날은 뜨끈한 아메리카노가 고팠다. 조각으로 잘려 나오는 당근 파운드는 당근 케이크보다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해서 가난한 여행자의 지갑 사정도 생각해 주는 것 같았다. 겉이 초콜릿 빛이 나도록 잘 익은 당근 파운드는 그냥 빵 한 조각 같은 인상을 주었다. 사실 원조 파운드케이크는 그리 특별한 레시피를 요하지는 않는다. 밀가루와 설탕, 달걀, 버터를 모두 동량 계량한다. 그러니까 1파운드 빠져 계절마다 여행했던 것이 6년 전인가 7년 전쯤. 20대 여성이 올레길을 걷다 사고를 당했다는 흉흉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나는 자주 혼자 올레길을 걷곤 했다. 하루에 10km 이상 걸은 적도 있다. 올레길이 아니더라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에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도 하고, 지금만큼 택시 서비스가 좋지 않기도 했다.
대체로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분다. 길을 걸으면 긴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기 일쑤다. 백팩에는 최대한 짐을 조금만 담고 신발은 편한 것으로 신었다. 그렇게 송악산에서 바람을 맞으며 사계해안을 지나 용머리 해안으로 향했다. 한낮에도 바람 때문에 덮지 않았고 목이 마르면 물로 목을 좀 축인다. 아무 생각 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걷다가 다른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에게 (네이버 지도가 있음에도) 다음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묻곤 했다. 휴대폰에선 강풍주의보가 발령되었으니 조심하라는 알림이 자꾸 떴다.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가도 메시지가 뜨는 바람에 마음에 드는 장면을 자꾸 놓쳤다. 알림을 해제해 버렸다. 전국에 내리는 특보 알람이 다 울리게 해 두었던 시절이어서 휴대폰 배터리도 절약할 겸 해서였다.
셀카를 잔뜩 찍으려고 머리도 참하게 내리고 있었는데 햇빛을 등지고 걷는 데다가 바람 때문에 자꾸 안경 쓴 처녀귀신 한 명만 카메라에 담겼다. 좋은 장면이 있으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맞바람을 맞기 위해 뒤를 돌았다. 직업병은 이럴 때 쓰는 법. 바람이 일정하게 불 것 같은 지형을 한 곳마다 멈추고 사진을 찍으니 훨씬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철저한 3보 1컷의 마음가짐으로 여행에 임하는 나는 날아가는 이파리들이나 멀리 보이는 한라산, 점점 가까워지는 삼방산과 멀어지는 송악산을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얼마나 찍어대었으면 한때 삼방산의 사진은 사진만 보아도 위치를 대충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각도, 그 크기가 나오는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파지면 잠시 벤치에 쉬다가 걷기를 몇 시간. 삼방산 바로 아래 용머리 해안까지 한 바퀴 돌고 버스를 타기 위해 삼방 굴사 앞으로 향했다. 삼방 굴사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카페와 간단한 간식을 파는 곳들이 몇 개 있다. 등 뒤로 밀어주는 바람을 맞으면서 떠밀려 카페로 향했다. 바람 방향도 내가 카페에 가는 것을 추천하고 있잖아! 하는 자기 합리화도 함께 했다. 저기 앉으면 조명이 좋을 것이라는 직감도 들었다. 도로보다 높이 위치하고 있어서 차들이 조망을 가릴 일이 없고, 길 건너편은 내려가는 경사로였다. 문을 열자마자 들이치는 바람에 장식물들이 들썩였다. 초인종 소리도 났던 것 같은데, 기계음이었는지 문에 거는 종이 었는지 아니면 내 착각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애매한 오후 시간이라 손님은 두 팀 정도밖에 없었고 나는 가장 명당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누운 직사각형의 창문에 용머리해안이 넉넉하게 비치는 풍경이 일품인 카페였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 카페를 갔을 때 이후로 당근으로 만든 디저트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게 되었다. 당근 주스, 당근 머핀, 당근 쿠키, 당근 파운드케이크에 화룡점정인 당근 케이크까지. 제주가 당근으로 유명하다 보니 당근을 활용한 디저트를 선보이는 가게도 많았다. 계좌 상회나 하우스 레시피 같은 유명한 가게들도 많았는데 이곳도 그런 곳들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만. 제주도를 테마로 한 소품도 함께 파는 그 카페는 조용했다. 방문하는 사람들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뿐이고 배경음악도 멜론 100위 음악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늘은 파랫고 그 하늘빛을 반사한 바다는 더 진한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기에 바람이 만들어낸 파도로 물비늘이 잔뜩 반짝거린다. 종종 들리는 버스 소리까지 완벽한 한 세트였다.
목이 타기도 했고 배도 고팠지만 저녁으로 전복뚝배기를 먹을 결심을 한 터였다. 하지만 제주도까지 왔는데 당근 디저트를 안 먹을 수 있나. 당근 케이크와 당근 파운드 중에 고민을 하다가, 어쩐지 조금 더 특별해 보이는 당근 파운드를 골랐다. 파운드케이크는 차와 함께 마시는 것이 나만의 국 룰이지만 그날은 뜨끈한 아메리카노가 고팠다. 조각으로 잘려 나오는 당근 파운드는 당근 케이크보다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해서 가난한 여행자의 지갑 사정도 생각해 주는 것 같았다. 겉이 초콜릿 빛이 나도록 잘 익은 당근 파운드는 그냥 빵 한 조각 같은 인상을 주었다. 사실 원조 파운드케이크는 그리 특별한 레시피를 요하지는 않는다. 밀가루와 설탕, 달걀, 버터를 모두 동량 계량한다. 그러니까 1파운드가 450g이 조금 넘으니까 '파운드케이크'라는 이름대로 만들면 거의 2kg의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는 수분이 날아가고 해서 좀 적은 양이되어도 1kg이 넘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거기에 각종 부재료까지 함께 넣는데 당근 파운드케이크는 보통 당근 슬라이스와 견과류를 조금 넣는다. 당근을 갈아서 그 즙을 넣는 레시피도 있다. 시나몬 가루나 넛맥을 조금 넣어 향을 더하는 사람들도 많다. 원조인 영국에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파운드케이크(혹은 버터케이크, 플레인 케이크)가 있다.
이 카페의 당근 파운드는 당근케이크에서 위에 올려진 크림만 제외한 것 같은 맛이었다. 물론 두 개의 디저트에 들어가는 재료가 그리 다른 것은 아니지만 꾸덕하면서도 폭신한 파운드케이크의 식감이 정말 좋았다. 배가 고파서 더 맛있었고 아름다운 풍경의 제주와 함께해서 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후 대략 2년 정도를 꾸준히 방문하다가 몇 년 정도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내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당근을 넣은 파운드케이크는 여전히 구하기가 힘들다. 물론 당근케이크는 대부분의 디저트 가게에서 판매하는 메뉴라서, 아쉬워하면서도 그냥 당근케이크를 먹는 것에 만족할 때가 많다. 그때 느꼈던 그 맛은 이제 희미해졌지만 적당히 꾸덕하고 적당히 포실포실한 파운드케이크의 느낌과 견과류가 실하게 들어있어 뿌듯했던 감각만은 선명하다. 결국 나는 그날 당근파운드를 하나 더 포장해서 다음 날까지 간식으로 먹었더랬다. 비를 피하거나 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피하기도 해야 하는 제주의 여행을 당근 파운드가 있어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사진출처: pixabay @virtualrob
p.s. 사진에 나온 케이크보다 훨씬 안쪽까지 색이 진하고, 견과류도 들어가고, 크기는 작은 케이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