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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 Mar 19. 2021

황사 가득한 날에도, 김밥

새벽부터 가득하던 엄마의 사랑

 나는 참 사랑받고 자란 아이다. 내가 태어나고 조금 후부터 지금까지 부모님 두 분은 일을 쉰 적이 그리 없다. 맞벌이를 하시다 보니 오후 시간을 내게 쏟으시기는 현실적으로 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부터 굽고 볶고 조려서 근사한 색의 김밥을 만들어 주셨다. 가리는 음식이 별로 없던 내게 김밥은 언제나 고운 색을 한 맛있는 음식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도시락을 나눠먹기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은 요즘 소풍을 가지 않는다. 평일 오전 큰 공원에 가면 때때로 아이들이 잔뜩 모여있는 것을 보곤 했는데 요즘은 사람 자체가 없다. 봄이 오는 시기에 공원은 북적였다. 3월부터 5월까지 더워지기 직전의 그 시기에 캡 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고 백팩을 메고 소풍을 가곤 했다. 가방 안에는 깜찍이 소다와 어머니가 싸 주신 김밥에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초콜릿 과자도 잔뜩 들어있었다.


 그리고 딱 그 계절의 맑고 건조한 날 공원에 가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미세먼지 소식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세먼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원에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움직이면 옅게 날리는 흙먼지가 가득하다. 봄에는 황사 소식도 잦아서 공기가 부연 날도 꽤 많다. 최근에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들에 대한 경보도 내고 그 공기가 기관지에 좋지 않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지만 내게 황사는 그저 황사일 뿐이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소풍의 성사는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에 의지하는 정도여서 소풍 가기 일주일 전부터 비가 오지 않기만을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황사 예보가 나도 다른 지역으로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마스크 하나 없이 나와 친구들은 먼지 가득한 운동장이나 공원 한가운데를 뛰어다니고, 그 자리에서 점심을 먹곤 했더랬다. 은박 돗자리를 깔고 나무 그늘에 앉아 재잘대는 초등학생들을 보던 어른들도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아이들의 웃음을 즐겁게 보아주었을 것이다. 도시락은 대부분이 김밥이었고, 좀 사는 집이라면 유부초밥을 싸오기도 했다. 선생님들을 위한 찬합을 가져온 반장이나 부 반장 네 도시락에서도 여지없이 김밥이 나왔다.


 그래서 내게 김밥은 늘 행사음식이다. 많은 이들에게 그렇겠지만. 집집마다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와 양념은 모두 다르다. 밥을 양념하는 법부터 그렇다. 우리 집의 김밥은 참기름과 깨소금, 그리고 맛소금이나 굵은소금을 조금 넣은 밥이었다. 어떤 밥에는 설탕을 약간 섞은 식초가 들어가기도 하고 아예 양념을 하지 않은 밥을 사용하는 집도 있었다. 현미를 밥에 섞은 이후부터 우리 집 김밥의 밥은 하얀색이 아니라 약간 노르스름한 색깔이 맴돌곤 했다. 재료는 계란지단에 당근, 단무지와 오이, 햄과 우엉조림, 어묵볶음이 기본에다 가끔 맛살이나 소고기가 들어가기도 한다. 당근은 길게 썰다가 어느샌가 채 써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가스레인지를 편하게 사용하게 된 나이부터 계란지단은 종종 내 몫의 임무로 떨어졌다. 동그랗고 균일하게, 노릇해지지 않고 밝은 노란색을 가진 지단을 만들고 싶어서 몇 번이나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햄은 동생이 소풍을 가기 시작한 후로 점점 재료에서 빠지기 시작했어서 나는 꽤 아쉬웠었다.


 그렇게 재료를 잔뜩 준비해서 아침에도 김밥, 점심에도 김밥을 먹는 날은 파티나 마찬가지다. 김을 깔고 밥을 한 주걱 올리고 재료를 너무 많아 터지지 않게 잘 쌓고 돌돌 말아준다. 어머니의 김밥은 신기했다. 김발이 없어도 딴딴하게 완성되는 김밥은 내가 하면 아직까지도 귀퉁이가 터지거나 물렁한 김밥이 되어버린다. 참기름을 칼에 살짝 묻히고 하나하나 썰어내면 꽁지는 항상 나나 동생의 입안으로 들어간다. 접시에 쌓일 새가 없을 정도로. 지금도 종종 어머니는 김밥을 싸 드신다. 이제는 아침 일찍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퇴근 후에 다 같이 준비해서 재료를 잔뜩 만들어 놓고 이틀이나 삼일 동안 심심할 때마다 김밥을 제조하면 나와 동생은 김밥이 썰리는 대로 입으로 가져간다. 어릴 적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다.


 아직은 공기청정기라는 것이 등장하지도 않았던 어느 해. 어머니의 사랑이 담뿍 담긴 황사가 있는 날에도 흙먼지가 조금 묻어도 늘 익숙하게 털어내고 먹을 수 있었다. 여러 번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아버지를 제외하면 어머니와 나, 동생은 여전히 김밥을 좋아한다. 이제는 바깥에서 김밥을 먹을 일이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내게 '소풍' 하면 떠오르는 것은 도시락 가득 들어있는 김밥과 잔뜩 뛰어논 광장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흙먼지가 먼저다. 하늘이 부연 오늘은 어쩐지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도, 미세먼지라는 단어도 몰랐던 날들도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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