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온뒤 Mar 17. 2021

봄비 오는 날 먹는 라자냐

 넓적하고 구불구불한 모양의 판처럼 생긴 라자냐 면을 산다. 갈아놓은 고기와 다양한 야채, 그리고 모차렐라 치즈도. 가지가 있다면 더 좋다. 토마토소스는 필수품이다. 면을 삶고 재료를 각각 향신료를 더해 볶는다. 커민과 오레가노, 파프리카 가루가 혼합된 타코 시즈닝이 있다면 고기를 볶을 때 함께 뿌려준다. 제대로 된 레시피라면 루를 만들어 베샤멜소스도 추가해야 하지만 귀찮으니 생략한다. 켜켜이 속 재료와 치즈, 토마토소스와 면을 순서대로 얹어 무지개떡 같은 모양을 만들어 준다. 위를 치즈로 덮고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준다.      


 봄이 오는 것은 빗방울의 온도로 가장 먼저 알 수 있다. 빗방울이 더 이상 시리게 차갑지 않다고 느껴지면 하늘 위를 덮고 있던 한기도 한걸음 뒤로 물러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출근하면 일기도에 기록된 온도 경계가 훌쩍 따스해져 있다. 흙은 곧 발자국을 낼 수 있을 정도로 푹신해지고 매화부터 벚꽃까지 다양하게 꽃을 피우는 봄이 시작될 것이다. 아직은 날이 차갑지만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은 봄비가 오는 날에는 습관처럼 구석에 있던 라자냐 면을 꺼낸다.      


 라자냐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본 것은 어학연수를 떠났던 캐나다에서였다. 필리핀계 이민자였던 홈스테이 호스트 부부는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음식들을 만들어 주었는데 한국인 유학생들은 대개 그들의 음식을 싫어하곤 했다. 라자냐는 그중 모든 유학생들의 호평을 받았던 메뉴였다. 부부는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라자냐나 국물요리를 만들었다. 국물요리는 샐러리와 병아리 콩, 돼지고기를 잔뜩 넣고 고수로 향을 내어 호불호가 심했지만 라자냐는 그렇지 않았다. 


 우산이 없어 3월의 차가운 봄비를 잔뜩 맞고 들어왔던 어느 오후. 요리를 주로 담당하던 셀리아는 말없이 내게 뜨거운 차 한 잔과 맛있는 재료들이 잔뜩 들어간 라자냐 한 접시를 건넸다. 치즈가 가득 들어가 그라탱 그릇 위에서 치즈가 바삭바삭 익어가는 소리가 채 잦아들지도 않아 손을 델 것 같은 갓 만든 라자냐였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즈음의 나는 향수병에 꽤 고생하고 있었더랬다. 


 “집에 가고 싶어요. 아직 한국에 가려면 한참이 남았는데. 비는 왜 또 이렇게 오는 건지 모르겠어요. 캐나다의 비는 너무 차가워요. 한국은 벌써 봄이 온다고 하는데, 여긴 계속 겨울인 것 같아요.”     


 스스로 선택했으면서도, 괜한 투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셀리아는 가만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많은 유학생들을 겪으면서 그들도 이런 이야기를 수 없이 들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고 나니 조금 창피해서 그 이후로는 말없이 진하고 풍미가 가득한 라자냐만 입 안 가득 먹었더랬다. 그 순간만은 캐나다가 너무 싫어졌는데도 그의 라자냐는 정말 맛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해 먹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깥 나무 테라스에 굵은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도 잔뜩 들렸다. 그렇게 조금 이른 저녁을 먹다가 접시를 치우면서 셀리아에게 물었다. 혹시 라자냐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그다음 주쯤에 셀리아와 고기를 볶고, 야채를 다지고 치즈를 잔뜩 넣어 라자냐를 만들었다. 한국에 와서는 오븐이 없는 집이 대부분이라 팬에 직접 익히거나 전자레인지에 치즈만 녹이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라자냐를 만들었다.      


 캐나다와 한국의 봄비는 그 온도도, 오는 시기도 다르지만 시리지 않고 차가운 빗방울이 주는 감각은 비슷하다. 캐나다의 봄이 그립기도 하다. 이번 봄에도 늘 만들던 그 방식으로 라자냐를 만든다. 한국에서는 조금 낯선 음식이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 먹을 때면 늘 기분이 좋아지는 그 맛 그대로의 라자냐를.





사진: pixabay @angelorosa 

 P.S. 사진의 라자냐는 정말 깔끔하게 완성된 편이다. 오븐용(혹은 전자렌지용) 유리그릇에 라자냐를 만들어 떠먹으면 파스타도 아니고 빵도 아니고 피자도 아닌 희한한 모양이 된다. 떡 같기도 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