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로맨틱 헤븐' 2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독일 작곡가 브람스의 실내악 대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서른 초반의 젊은 작곡가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와 압도적인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브람스 낭만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곡은 초안부터 무대에 오르기까지 총 3년의 시간이 걸렸는데요, 이 곡의 우여곡절만큼이나 브람스자신도 참 복잡한 시기를 지나던 때였습니다.
1. <브람스 피아노 오중주> 작품 탄생 일화
1862년 빈에 정착하며 이 곡을 쓰기 시작한 브람스는 낯선 곳에서 의외의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곳의 동료들과 자신이 존경하던 바흐, 베토벤의 실내악 음악을 연주하며 종종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나름의 여유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잘 맞는 동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았던 브람스는 현악 오중주를 썼는데요, 가장 친한 바이올리니스트 친구 요아힘은 첫 시연 후 이 작품에 회의적이었습니다. 브람스는 바로 현악 오중주를 파기하고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고쳐 쓰는데요, 이 버전도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브람스의 오랜 친구이자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은 재차 그를 격려했고 더 다양한 편성의 악기가 필요하다는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이며 드디어 그의 실내악 대작 <피아노 오중주 Op. 34>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긴 인고의 시간을 거친 이 작품은 1865년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되며 엄청난 호평을 받게 되는데요, 당대 최고의 지휘자 중 하나였던 헤르만 레비는 이 작품을 두고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오중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슈베르트 서거 이후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은 없었습니다.
2. 작품과 함께 성장한 브람스의 내면
브람스는 원래 고집이 아주 센 사람이었습니다. 동시대의 리스트, 바그너와 같은 작곡가들이 낭만주의의 극단에 가까운 작품을 내놓으며 유명세를 이어갈 때 브람스는 바흐, 베토벤의 작곡기법과 형식을 고수하며 홀로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지요. 고전음악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뚝심 있게 자신만의 길을 가던 브람스는 그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도 꽤나 고집스러웠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동료들의 의견은 작곡가에게 무척 예민한 문제이기도 한데요, 그런 브람스가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였다는 것은 외부의 세계에 마음을 열고 내면의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독일을 떠나 오스트리아 빈에 정착한 것 역시 변화를 싫어하는 브람스 스스로에게는 큰 사건 중 하나이기도 했고 마침 그곳에서 비엔나 성악 아카데미의 합창 단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서로의 소리를 귀 기울이며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합창단 경험을 통해 브람스 자신 역시도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다고도 생각됩니다. 동료들의 조언에 힘입어 대작 <피아노 오중주>를 탄생시킨 브람스는 비엔나 사람들에게 '베토벤의 후계자'라는 칭송까지 받게 되는데요, 베토벤 작품에 대한 존경과 부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브람스는 정작 그 수식어를 거추장스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3. 브람스 <피아노 오중주>
브람스 음악의 주요 특징이 모두 나타나있으며 베토벤의 격정적인 성격과 슈베르트의 서정적인 선율이 공존하는, 거대한 서사를 펼쳐놓은 듯한 음악입니다. 피아노 오중주인만큼 피아니스트의 역할이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현악기 연주자들의 뛰어난 기량을 필요로 합니다. 성숙한 현악기 주자가 아니라면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음색과 활 테크닉을 요구하지요. 또한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적으로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 작품은 프로이센 공주로 태어나 헤센 영주와 결혼한 안나 폰 헤센 왕녀에게 헌정되었는데요, 열렬한 음악애호가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그녀는 피아노 두대를 위한 버전을 더 좋아했다고도 전해집니다.
1악장 Allegro non troppo - F단조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닝부터 가슴을 휘저어놓는 낭만이 느껴집니다. 소나타 형식으로 거대한 파도를 타고 움직이듯 장중하면서도 깊은 선율과 리듬이 번갈아 교차됩니다. 혈기가 넘치지만 끝까지 자제하려는 젊은 브람스의 표상 같은 악장이기도 합니다.
2악장 Andante, un poco adagio - 슈베르트의 가곡 선율을 연상하게 하는 느린 악장의 멜로디는 1악장에 고조되었던 분위기를 단번에 녹여줍니다. 4분의 3박자의 느린 왈츠 선율은 한순간에 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사랑의 환희로 이어지는 2악장은 브람스 낭만 음악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3악장 Scherzo - 변화무쌍한 캐릭터가 교차하는 흥미로운 악장입니다. 불안이 엄습하는 듯한 당김음으로 시작하는 도입부에 이어 콜로세움 같은 화성의 기둥이 출연하고 이어지는 트리오 부분에서는 전통민요의 선율이 등장합니다. 숨쉴틈 없이 몰아치는 스케르초의 마지막 부분은 연주자들에게도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4악장 Finale -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삼키는 듯한 비극적 서사로 시작합니다. 첼로의 선율로 분위기가 바뀌고 다채로운 리듬과 멜로디 모티브가 반복되며 마치 굴릴수록 거대해지는 공처럼 사운드가 확장됩니다. 한참 고조되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블랙 아웃되며 긴 서사가 막을 내립니다. 보통 마지막 악장이라고 하면 빠른 속주를 기대하게 되는데 브람스 오중주의 4악장은 밀도가 높은 음형과 치밀한 구조로 거대한 건축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4. 그리고 앙상블 뷰티풀 랑데부
브람스 피아노 오중주를 연주하는 것은 앙상블 뷰티풀 랑데부의 오랜 꿈이기도 했습니다. 2017년에 창단된 어린 단체인만큼 서로의 호흡이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서른 초반의 연주자들이 이 작품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덧 연주자들의 평균 연령이 서른 중반이 되었고 이제 브람스 피아노 오중주의 첫 발걸음을 내디뎌볼 만한 때가 되어 무대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추가 리허설을 잡을 정도로 열심을 낸 브람스 팀은 연습 내내 성숙한 매너와 열띤 토론으로 리허설을 이어가며 열정을 불태웠는데요, 오시는 관객 분들께도 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이번 공연에는 알테무지크 서울의 악장이자 앙상블 뷰티풀 랑데부의 리더 바이올리니스트 안세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거쳐 현재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으로 재직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예원, 파리 음악원에서 수학하고 볼체 콰르텟의 리더로 활동 중인 비올리스트 조재현, 바흐 첼로 무반주 모음곡 전곡 연주를 비롯해 실내악계의 다크호스로 불리는 첼리스트 임재성 그리고 앙상블 뷰티풀 랑데부의 예술감독이자 피아니스트 김가람이 함께합니다.
<공연 & 예매 안내>
앙상블 뷰티풀 랑데부 6회 정기연주회 〈로맨틱 헤븐〉 - 인터파크 (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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