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의 역할에 대하여
문득 완전히 낀 세대는 우리 '90년대생, 30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저는 90년생 만 34세로 청년기본법에서 정의하는 청년의 끝자락에 자리한 나이입니다. 청년과 중년의 경계에 있는 셈이죠. (*청년기본법상의 청년은 만 19세부터 34세 이하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MZ세대로 분류하더라도 M도 아니고, Z도 아닌 그 경계에 위치합니다. 여기서도 정체성이 모호하죠. 밀레니얼 세대의 막내인지라 완전히 섞이지 못하고, Z세대로 끼기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균적으로 만 34세면 대리 또는 과장 정도(4년 차 이상)의 직급을 갖고 있죠. '주니어(Junior)' 때처럼 실수를 용인해 주거나 한참 배울 때라고 봐주는 시기는 지났고요. 그렇다고 '시니어(Senior)'의 역할과 책임이 오롯이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옛날 군대 용어로 '일말상초(일병 말 상병 초)'의 시기와 비슷하달까요.
사회적으로도 초고령화 시대에 경제 성장은 정체된 상황에서 안정적인 삶을 위해 집을 사기도 어렵고, 아이를 키우기도 버거운데 어르신들까지 부양해야 하는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청년과 중년, M과 Z, 주니어와 시니어 사이에 낀 30대는 당연히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사각지대 신세를 한탄하면서 우울감 마저 들죠. 그러다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깨달았다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혼자만의 착각을 바로잡았다고 해야겠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 모든 세대가 중간에 끼어 있다는 사실인데요.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도 저마다의 위 세대와 아래 세대가 있습니다. 모두가 낀 세대인 것이죠. 서울대학교 인구학 연구실 자료를 보면 베이비부머, X세대, 밀레니얼 세대, Z세대, 골드베이비로 이어지는 '낀 세대' 라인업을 볼 수 있고요. 구글에 '낀 세대'라고 검색해 봐도 끼어 있어 힘든 사례를 여럿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낀 세대라면 나만 힘든 게 아니다. 그러니까 우울하게 풀 죽어 있을 필요 없다." "끼었다는 말은 오히려 양쪽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낀 세대야말로 중간에서 소통을 도모하고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죠.
예를 들어, 회사에서 당돌하게 칼퇴하는 우리 팀 막내와 전형적인 '옛날 스타일'의 팀장님의 사이에서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완충재 역할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할 일이 끝나면 당연히 퇴근하는 팀 분위기를 만들고 팀장님을 지혜롭게 설득하는 건 중간에서 할 일이라고 봐야죠. 어쩌면 이런 역할을 잘 해내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서 우리 세대가 처한 상황과 우리를 위한 정책만 볼 것이 아니라 아래 세대인 후배 청년들과 윗 세대인 X세대, 베이비부머 세대의 삶을 잘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정책까지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양쪽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모든 세대가 양쪽에 공감하면서 중간 역할을 기꺼이 맡을 때 관계가 더 끈끈하게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현실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세대 갈등도 완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물론 너무 이상적인 말이긴 합니다만 작게나마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행동은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