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라이언 Jan 19. 2024

이제 정말 '트렌드'는 없는 걸까

마이크로 트렌드 시대. '트라이브(Tribe)'가 더 중요해진 이유

'2023년은 트렌드가 없었던 것이 트렌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정말 트렌드가 없다는 말은 아니고 "요즘 트렌드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몇 가지로 요약해서 대답하기 어렵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관심사와 취향이 모두 다르고, 쪼개진 상태에서 "이게 트렌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메가 트렌드'가 사라지고, 여러 개의 '마이크로 트렌드'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며 각각 공존하는 사회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2년 전,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이미 짚었던 '나노사회'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기도 하죠.


과거 <무한도전>과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30%에 육박하는 레전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존재 자체로 '메가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토요일 저녁에는 모두가 '무도'를 봤고, 일요일의 마무리는 항상 개그콘서트였죠. 그러나 요즘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요즘 넷플 뭐봄?" "유튜브 추천 좀?"이라고 물어보면 관심사가 제 각각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나노사회와 마이크로 트렌드는 '트라이브(Tribe, 부족)'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도 합니다. 세스 고딘은 본인의 책 <트라이브즈(Triebes, 2008)>에서 트라이브라는 단어로 공통의 관심사와 취향, 문화로 묶인 집단을 정의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같은 관심사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모여 트렌드가 탄생하고, 그 트렌드를 좇는 사람들의 페르소나를 엮으면 트라이브가 되는 것이죠. 트라이브는 16년 전 처음 소개된 오래된 개념이지만 뉴 미디어가 알고리즘 기술을 만나 모든 개인의 취향이 더욱 파편화되고 있는 요즘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Tribe(부족): 부족은 민족이나 씨족과 같이 동일한 태생과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공통의 문화나 언어, 가치관 위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집단을 뜻한다. 인간 사회 집단 분류를 가리키기 위해 여러 문맥에서 사용된다. by 위키피디아


작년에 침착맨 유튜브 채널에 나영석 PD가 게스트로 출연한 영상을 인상 깊게 봤는데요. 레거시 미디어에서 큰 성공을 거둔 나PD가 유튜브를 제대로 해보겠다며, 뉴미디어 대표 주자 침착맨에게 배우려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었습니다. 저 나이에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배우는 모습이 멋지다. 이게 이 사람의 성공 비결이구나라고 말이죠.


그런데 며칠 전, 나PD가 침착맨 채널에 재출연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소품종 대량 생산의 시대는 끝났다.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다". "최대한 자기 스타일대로 보여주는 것이 트렌드다" "트렌드라는 단어가 올드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이죠. 내 채널을 찾는 사람들에 맞춰 그들이 원할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트렌드라고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대중의 눈치를 그렇게 많이 본다는 나PD 마저 그렇게 얘기할 정도면 '요즘 트렌드는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게 정말 인사이트 풍기는 답변이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B2B SaaS 업계도 마이크로 트렌드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데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기업이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호리젠탈(Horizontal) SaaS의 인기가 줄어들고, 특정 분야와 기능에 완전히 집중하는 버티컬(Vertical) SaaS가 계속 출시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서비스에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여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여기던 시대에서 내가 원하는 분야에 특화된 서비스를 각각 구독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즉, 다양한 기능을 평범한 수준으로 제공하는 80점짜리 SaaS 하나를 도입하는 방법 대신, 특정 분야와 기능에 완전히 특화된 100점짜리 SaaS를 여러 개 도입하여 평균 100점의 도입 효과를 내는 것이죠.


어떤 회사는 협업툴은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사용하면서, 메신저는 '잔디'를 쓰고, 고객 대응은 '채널톡', 인사 솔루션은 '플렉스', 비용관리는 '스펜딧'으로 하고, 화상회의는 줌, 미팅 일정 조율은 '되는시간'을 통해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죠. 방금 언급한 서비스들은 특정 트라이브를 정의하여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한 사례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해외 아티클을 읽다 보면 특정 유형의 사용자에 완전히 집중한 제품을 'Opinionated Product'라고 부르는데요. 직역하면 자기 주관이 뚜렷한 제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러한 제품은 "모든 사람들이 우리 제품을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아. 우리는 우리가 정한 '트라이브'에 속한 사용자 그룹을 위해서 제품을 만들어"라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프로젝트 관리, 이슈 트래킹 솔루션 'Linear'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현대적인 SW 개발 방법론을 제품에 적용하는 데 진심인 것이 절로 느껴지니 시간이 되신다면 한번 체험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처럼 앞으로 신규 비즈니스 기회는 '트라이브'를 어떻게 정의하고 공략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고객과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비즈니스는 당연히 없고요. 우리가 타겟으로 보는 사용자 그룹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들이 200% 만족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죠. Airbnb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는 "100만 명의 일반 사용자를 확보하는 것보다 우리 서비스를 정말 사랑하는 100명의 극성 팬을 만드는 것이 낫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트라이브 사이에 입소문이 번지게 되고 서비스는 자연스럽게 흥한다는 거죠. 제품 개발이 아니라 콘텐츠를 만들거나 마케팅을 할 때도 동일한 관점을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제 저는 누군가 정리해 주는 트렌드 리포트를 조금 덜 찾을 것 같습니다.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인 세상에서 남이 정리한 트렌드가 정답일리 없으니까요. 차라리 실제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용자 트라이브를 정의하고 그들을 위해 확실한 색깔을 가진 제품을 만드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더욱 뾰족하고 깊이 있는 기능을 추구하면서도 사용자 친화적인 제품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