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이면

당신의 그래픽 카드는 안녕하신가요

by B Sider

"하나의 문장에도 저마다의 세상이 있기에, 사람은 읽는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당신에게, 상상의 우주를."

내가 좋아하는 카피 중 하나로, 예스24의 24주년 브랜드 캠페인 영상을 소개하는 문장이다. 하나의 텍스트가 읽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지, 그리고 독서라는 행위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보여준다. 특히 '독서=상상'이라는 수식은 소설에서 더욱 극대화되는 것 같다. 요즘 들어 소설책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작가가 구체적으로 묘사한 텍스트들의 조합을 음미하며 내가 마치 그 장면의 감독이 되어 영화를 찍는 듯한 상상을 하곤 한다. 주인공 배우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그를 둘러싼 배경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지, 카메라 구도는 풀샷인지 크롭샷인지 등등.


한편으로, 책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듯한 위의 카피가 똑같이 적용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이미지 생성형 AI. 똑같은 텍스트의 조합(프롬프트)으로도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생성해 낼 수 있는 요즘이다. 그리고 그 속도는 인간의 머릿속에서 텍스트를 이미지로 치환하는 속도보다 월등히 빠르다.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다 못해 이제는 독서의 영역마저 일부 침범당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다.


생성형 AI의 구동 방식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컴퓨터의 그래픽 카드 수준이 AI 연산 능력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인공지능 시대에서 종잇장에 인쇄된 프롬프트들을 꾸역꾸역 눈으로 밀어 넣는다. 우리의 그래픽 카드는 아직 안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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