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번째 생일 다음 날, 내 인생이 바뀌었다

나는 그렇게 암 환자가 되었다

by 지혜로운 기록


43번째 생일을 행복하게 보낸 바로 다음 날.

행복을 시기라도 한 듯, 내 인생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이름은 유방암이었다.


나는 늘 건강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잔병치레 한 번 없었고, 남편은 지인들 앞에서 자랑처럼 말했다.

“우리 와이프는 정말 건강해요.”

그 말이 내 정체성의 일부라도 된 듯, 나 역시 그렇게 믿어왔다.


4월 초의 어느 날.

오른쪽 가슴에 전기처럼 번쩍이는 통증이 스쳤다.

손끝에 닿은 건, 단단히 굳은 낯선 무언가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어제 무리한 거 아니니?”

그러고 보니 무거운 짐을 옮기기도 했다.

안 쓰던 근육이 놀랐을 거라, 하루 이틀만 더 지켜보자고 했다.

며칠은 괜찮았다. 그리고 나는 금세 잊었다.


하지만 4월 14일 아침, 다시 같은 자리에서 신호가 왔다.

이번엔 달랐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라 병원을 검색했다.

작년 겨울에 받았던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알림톡이 떠올랐다.

“유방암, 위암,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자입니다.”

우연히, 혹은 운명처럼, 나는 검진 대상자 연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병원 예약을 잡았다.


유방촬영, 초음파.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혹의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조직검사를 권합니다.”


얼떨결에 총 조직검사를 진행했고,

검사가 끝나자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이 없으면 예약일에 오셔도 됩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기류는 차갑고 묵직했다.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날 이후, 나는 휴대폰만 쳐다보았다.

진동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제발… 전화가 오지 않기를.”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화면에 병원 번호가 떴다.


“안타깝게도, 두 군데 모두 암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현실을 더 단단하게 각인시켰다.


나는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건강을 자랑하며 살아온 내가, 마흔셋의 어느 봄날 갑자기.


남편에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꾹 눌렀다.

내 울음이 더 큰 상처가 될까 두려워서,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남편은 출장을 중단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3시간 넘는 길을 달려오는 동안, 이미 몇몇 병원의 예약을 끝내고 있었다.

서울, 대구, 그리고 다음날은 아산.


아산병원의 진료는 가장 늦은 4월 29일로 잡혔다.

그러나 우리는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 늦더라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길을 가기로 했다.


남은 건 기다림뿐이었다.

첫 진료까지 2주.

그 2주 동안 나는 수없이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수술을 받고, 어떤 치료를 받게 될까.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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