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737일의 마지막 페이지

꿈에서 깨어날 시간, 그리고 다시, 새로운 꿈을 꿀 시간

by 유지니안

새벽 7시.

레지던스 인의 알람이 울렸다. 2년 전 이곳에서 처음 눈을 뜨던 날과 똑같은 시간, 그때와 같은 12월의 겨울, 같은 숙소에 똑같은 방 구조까지.

내 옆에 함께 누워있는 엘리와 쇼파베드에서 자고 있는 남편도 그대로다.

모든게 다 익숙했다. 다른 건 이제 떠난다는 것.

"엘리야, 일어나야지."

아이는 꿈결에 중얼거렸다.

"집에 가는거야?"

"응. 비행기 타고 진짜 우리집으로 가야지."

이제 더이상 데이비스에 우리가 머물 곳은 남아있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데이비스에서 10,000km 떨어진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 그 동안 우리가 함께 만났던 모든 인연들도, 추억들도 뒤로 한 채.

"이제 그러면 루시아도 못봐?"

"지금은 떨어지지만, 나중에 또 놀러오면 볼 수 있지."

엘리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 4살 아이에게 '이별'이란 개념은 너무 어려웠던 것 같다.


알람소리를 듣고 부스스 일어난 남편이 어느새 1층에서 아침식사를 가져왔다. 메리어트 레지던스 인의 아침식사 메뉴도 2년 전과 그대로다. 토스트와 스크럼블 에그, 와플, 그리고 과일까지. 우리가 떠나고 나서도 계속 그대로일 것 같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어쩌면 2년 간 달라진 건 우리 뿐인 걸지도 몰라.'

그 사이 샤워까지 마친 남편이 침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엘리를 깨우며 말했다.

"다들 빨리 준비하자. 비행기가 오전 11시 반쯤 출발하니까, 최소한 8시에는 체크아웃해야 해. 데이비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최소한 2시간은 잡아야 하고, 공항에서 렌트카도 반납해야 하고..."

ISTJ인 남편은 내가 감상에 빠질 잠깐의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덕분에 항상 늦지않게 just in time할 수 있어서 고맙지만...


허둥지둥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나왔다. 이제 진짜로 데이비스를 나가야 할 시간.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I-80에 진입하면서 데이비스의 전경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았다. 여기서의 2년이 머리 속에서 마치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가족과 함께하는 미국 생활은 17년 전 교환학생으로 혼자 왔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환전에 이사에 비자, 게다가 코로나 검사까지. 그 어떤 것도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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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20개월 딸아이는 낯선 환경에 겁을 먹고 땅에 발조차 디디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업은 채 이민 가방 6개와 캐리어 2개를 끌고 막막한 첫발을 내디뎠다. 설상가상 코로나19로 이삿짐이 오지 않아, 무려 107개의 박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석 달을 텅 빈 집에서 캠핑하듯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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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데이비스 생활. 남편은 낯선 법학 수업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했고, 나는 F-2, 일명 ‘시체 비자’의 무력감 속에서 육아와 살림과 씨름했다. 마치 부레옥잠처럼 이 낯선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표표히 떠다니는 것만 같던 우리에게 DPNS는 구원과도 같았다. 부모 협동조합이라는 낯선 시스템 속에서 비로소 이웃과 소통하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가며 데이비스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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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것이 장밋빛은 아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져 물가와 환율이 폭등했을 때는, 너겟 마켓의 유기농 식료품 대신 코스트코의 대용량 제품을 카트에 담으며 생존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페이지 가족과의 아픈 이별을 통해 관계의 경계를 배웠고, 릭 할아버지와 케이티 할머니 같은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며 낯선 땅의 온기를 느꼈다. 여행이냐 Bar 시험이냐는 기로 앞에서, 우리는 당장의 즐거움 대신 가족의 미래에 과감히 투자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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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을 다해 부딪히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니, 거짓말처럼 기적 같은 결실들이 찾아왔다. 남편은 그토록 원하던 Bar 시험에 합격했고, 영어 한마디 못하던 엘리는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아이로 성장했으며, 나 역시 소중한 인연들 속에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2년 전 모든 것을 시작했던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우리의 진짜 터전으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샌프란시스코에 진입하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옆에 앉아있는 엘리도 조용했다. 저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문에 차를 세운 남편이 말했다.

"먼저 내려서 기다리고 있어. 짐들도 같이 내릴테니까 잘 봐주고."

아직도 다시 한국에 돌아가는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인천공항이 어떻게 생겼는지, 표지판은 뭐가 달랐는지, 지하주차장에서 바로 연결된 아파트가 얼마나 편했는지, 집에 카페트 없는 마루바닥이 어떤 촉감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편은 한참이 지나서야 렌트카를 반납하고 돌아왔다.

"자 체크인하러 가자!"

머리 속에 저장된 시간과 경로대로 딱딱 움직이는 남편을 따라가다 보니 벌써 게이트 앞.

"Ladies and gentlemen, we will now begin boarding for KE024..."


...우리가 탑승한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었다.

이륙하는 순간, 눈물이 났다.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그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작아지는 샌프란시스코. 어디쯤이 데이비스일까. 우리가 살던 Portage Bay Apartment는 볼 수 없겠지.

"엄마, 왜 울어?"

엘리가 또 물었다.

"엄마는... 행복해서 울어."

"행복한데 왜 울어?"

"가끔은 너무 행복한 기억도 눈물이 나게 해."

아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젠가 크면 알게 될까. 떠나는 순간의 이 복잡한 감정을.




13시간을 비행한 끝에 도착한 인천공항. 입국심사를 순조롭게 마치고 나니 저녁 시간이었다.

입국장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드디어 한국이다!

공항버스를 타러 밖으로 나오니 한국의 찬 공기가 폐를 채웠다. 특히 캘리포니아 키드가 되어버린 엘리에게는 한국의 겨울은 더더욱 혹독할 거였다. 오랜만에 남이 차려준 한식을 배부르게 먹었다. 정확히는 엄마가 차려주신 김치찌개였다. 그렇게 기내식 비빕밥이 다 떨어져서 먹을 수 없었던 설움이 씻겨나갔다.


우리는 완벽한 이방인으로 미국에 갔다가, 여전히 이방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가 적응하고 정착하려 노력했던 흔적이, 그리고 추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방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두 세계를 경험했다. 두 문화를 품었다. 양쪽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더 넓은 세상의 꿈을 꾸려고 한다.

아듀, 데이비스.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737일간의 미국 생활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