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일의 시간을 120개의 이사박스에 담다
12월, 출국 하루 전.
아침 일찍 엘리를 데리고 데이비스 내 Residence Inn by Marriott로 향했다. 우리가 2년 전 처음 데이비스에 도착했을 때 머물렀던 바로 그곳이다. 한국에서 당장 써야 할 것만 캐리어 두 개와 이민가방에 담고, 나머지는 모두 현대해운에 맡기기로 했다. 오늘이 바로 그 짐을 보내는 날이었다.
"현대해운 아저씨들 몇 시에 온대?"
"아홉 시. 넌 여기서 엘리랑 있어. 애 데리고 가면 정신없을 거야."
남편이 집으로 향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한국에서 미국 올 때도 진짜 힘들었는데, 다시 한국 돌아가는 것도 만만치가 않네.'
사실 오늘을 위해 지난 한 달간 꽤나 부지런히 움직였다. 전자제품부터 시작해서 가구, 장난감, 심지어 양념통까지, 하나하나 '한국 갈 것'과 '여기 남길 것'으로 분류했다.
전압 때문에 못 쓰는 전자제품들은 UC데이비스한인학생회(UCD-KGSA) 중고거래 게시판의 단골 메뉴였다. 350달러 주고 산 55인치 TV는 120달러에 겨우 팔렸고, 요긴하게 사용했던 밥솥과 전자렌지는 헐값에 팔려나갔다. 120달러 넘는 인스턴트팟은 "거의 새 거예요"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팔리지가 않다가 30달러에 팔렸다. 그 와중에 팔리지 않은 프린터는 결국 내 친구 Sara에게 그리고 핸드믹서는 일본 친구 Miyo에게 줬다.
한국까지 배송비가 물건값보다 비싼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플라스틱 3단 서랍장 세 개를 30달러에 샀는데, 다 합쳐서 15달러에 팔았다. 남편의 발이 되어주었던 자전거도 반값에 팔렸다. 가장 아까웠던 건 코스트코에서 산 웨건이었다. 짐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중고로 팔아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한국에서도 요긴하게 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사업체로는 이번에도 현대해운을 선택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현대해운은 현대그룹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냥 '현대'라는 흔한 이름을 쓸 뿐인데, 덕분에 왠지 더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효과는 있었다.
"팬데믹 이후로 운송비가 계속 오르고 있어요"
처음 미국으로 올 때보다 가격이 30% 정도 더 올랐다고.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2년 사이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새삼 실감했다.
그러는 사이, 남편한테 첫 번째 전화가 왔다.
"도착했어. 한국인 매니저 한 명에 라티노 인부 두 명. 저번에 짐 뺄 때는 네 명 왔었는데."
"세 명이면 충분하지 않아?"
"글쎄, 짐 싸는 게 빼는 것보다 쉬우니까 그런가 봐."
한 시간쯤 지나서 남편이 다시 전화했다. 목소리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이거 진짜 웃기다. 접시 하나를 신문지로 몇 겹씩 감싸는지 알아? 세 겹이야, 세 겹."
"안전하게 하려는 거겠지."
"아니, 그것까진 이해하는데, 접시 여섯 개 들어갈 박스에 두 개밖에 안 넣어. 나머지 공간은 다 뽁뽁이랑 신문지로 채우고 있어."
순간 우리가 한국에서 짐 보낼 때가 떠올랐다. 한국 아주머니들이 와서 그야말로 테트리스 하듯이 빈틈없이 포장했었다. 접시는 열 장씩 묶어서 한 번에 싸고, 남은 공간에는 수건이며 옷이며 뭐든 욱여넣었다. 덕분에 박스 수를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
"그냥 놔둬. 괜히 뭐라고 했다가 상하면 우리만 손해야."
"그래도 이건 좀 심한데? 지금 벌써 박스가 40개 넘어갔어."
"No break, safe 이런 거 아니야?"
"딱 그래. 엄지 척 하면서 'No break! Very safe!' 이러고 있어."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견적보다 박스가 많아진다는 건 곧 추가 요금을 의미했으니까.
오후 3시, 마침내 모든 작업이 끝났다.
"끝났어. 총 149개."
"149개? 우리 올 때는 107개였잖아."
"그러니까. 40개나 늘었네."
남편이 박스 리스트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1번부터 30번까지가 거실인것 같아. 근데 Bedding도 들어있다야, 31번부터 60번까지가 Hallway Closet이라고 써있는데, 그냥 잡동사니(Misc)라고만 적혀있어. 61번부터 90번까지가 Kitchen items. 30개 박스. 우리 주방이 그렇게 크지도 않은데..."
"Books는?"
"중간중간 섞여있어. 78번, 84번... 체계가 없어. 아, 91번부터 110번까지가 Clothes랑 Toys 섞여있고, 111번에 Desk Top, 112번 Bookcase... 정말 뒤죽박죽이야."
"체계적으로 포장한 게 아니라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넣은 거네?"
"맞아. 방별로 정리한 게 아니라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포장한 것 같아."
한국에서 이사짐을 쌀 때는 다른 방에 있어도 비슷한 것끼리 같이 담아줬는데, 미국은 그냥 보이는대로 방별로 담아주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듣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팁은 얼마 줬어?"
"60달러. 한 명당 20달러씩. 6시간 일했으니까 적당하지?"
이제는 팁 계산도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엔 매번 검색하고 계산기 두드렸는데, 이제는 대충 감이 온다. 15-20%가 기본이고, 육체노동은 조금 더. 한국 가면 이런 것도 다시 잊어버리겠지.
저녁 무렵, 남편이 레지던스로 돌아왔다. 피곤해 보였지만 왠지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다.
"집 상태 어때?"
"완전 비었어. 처음 들어갔을 때보다 더 비어 보여."
"엘리 데리고 가서 인사시킬 걸 그랬나?"
"아니야, 안 데려가길 잘했어. 빈 집 보면 슬퍼할 것 같은데. 먼지도 많고."
남편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줬다. 텅 빈 거실, 텅 빈 주방, 텅 빈 엘리 방. 2년간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그냥 집. 아니, 이제는 그냥 렌트 유닛 하나.
"메아리 엄청 났겠다."
"맞아. 발소리도 다 울려."
"뭔가... 빈 집을 보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아. 여기서 진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매니저 몰래 세탁기 넣으려다 물바다 만든 것도 있잖아."
남편의 농담섞인 말에 눈물이 나오려다가 쏙 들어가고 말았다.
"아 진짜, 감정 추스리는데 웃긴 이야기 좀 하지 마."
레지던스 인, 그곳은 우리에게 특별한 곳이었다. 시작과 끝을 함께한 곳. 737일 전 기대와 불안으로 가득했던 첫날 밤을 보낸 곳이자, 이제 아쉬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마지막 밤을 보내는 곳.
"벌써 2년이야."
남편이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빨리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엄청 긴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잘 살았나?"
"글쎄... 대단한 건 없었지만, 나쁘지 않았잖아."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의 737일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장 보고, 요리하고, 엘리 유치원 보내고, 도서관 가고, 공원에서 놀고.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이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라는 낯선 땅에서 이뤄졌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충분히 특별했다.
"한국 가면 뭐가 제일 그리울 것 같아?"
"글쎄... 날씨? 여기 햇살?"
"난 DPNS. Katy 할머니도 Becky 선생님도 모두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우리는 한참을 데이비스에서의 소소한 일상들을 떠올렸다. 다시는 못 할 것들, 하지만 영원히 기억할 것들.
창밖으로 데이비스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120개의 박스에 담긴 우리의 737일이 지금쯤 LA 롱비치 항구에 도착했을까.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을까.
"엘리야, 이제 자야지."
"엄마, 한국 가면 여기 다시 올 거야?"
순간 대답이 막혔다. 아이의 순수한 질문이 가장 대답하기 어렵다.
"글쎄... 언젠가는 올 수도 있겠지."
"언젠가가 언제야?"
"엄마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행복했던 건 영원히 기억할 거야."
엘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 안겼다. 아이는 곧 잠들었고, 나는 창밖의 데이비스를 바라봤다.
내일이면 공항으로 향한다. 737일간의 미국 생활이 정말로 끝난다.
누군가 묻는다면, 우리의 737일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정직했고, 완벽하진 않았지만 충분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