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 디즈니랜드
"여보, Bar 붙었어!"
10월 말, 남편의 떨리는 목소리. 워싱턴 DC 변호사 시험 합격.
737일간의 미국 생활이 드디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남들은 미국 와서 여행 다니기 바쁜데, 우리는 남편 시험 준비와 예산 부족으로 데이비스에만 갇혀 있었다. 이제는 진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돌아가기 전에 디즈니랜드 가자."
"엘리는 기억도 못할 것 같은데... 1번 국도 여행도 기억 못 하잖아."
"나를 위해서 가는 거야. 미국까지 와서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난 디즈니 팬이잖아.."
12월 초,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2주 남짓 남았을 시기. 귀국이사를 코앞에 둔 채 LA에 있는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데이비스에서 LA까지 400마일, 9시간을 달려 도착. 비행기로 갈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이것저것 가져갈 것도 많고, 경비도 아낄 겸 자동차로 이동했다.
디즈니랜드는 두 개의 테마파크로 이루어져 있다. 클래식한 '디즈니랜드 파크'와 좀 더 스릴 있는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우리는 2박 3일 동안 양쪽을 모두 정복하기로 했다.
Day 1. 디즈니랜드 파크.
"Welcome to the Happiest Place on Earth!"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나는 서른 후반 아줌마가 아니라 일곱 살 꼬마가 됐다. 어린시절 엄마와 함께 보았던 라이온킹은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디즈니의 팬이 되었고 나의 학창시절을 가득 채웠다. 그런 나에게 디즈니랜드란.. 꿈과 희망과 감동과.. 그 이상의 무엇이였다.
첫 번째 감동은 Mickey & Minnie's Runaway Railway. 영화를 보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스크린이 열리면서 우리가 미키마우스 만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차를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모험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와아아!" 소리를 질렀다.
남편이 민망한 듯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여기서는 누구나 아이가 될 수 있으니까.
어트랙션 끝나고 나오는 길, 기프트샵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Mickey & Minnie's Runaway Railway 한정판 피크닉 매트(picnic blanket).
"59.99달러요."
"세금까지 생각하면 거의 10만 원인데..."
"안 돼! 여기서만 판다고 쓰여있잖아! 거기다 한정판이란 말이야!"
결국 샀다. 비싼 거 안다. 하지만 내가 또 언제 여기에 오겠나!
그리고 그 59.99달러가 빛을 발한 순간이 왔다. 저녁 5시 반, 퍼레이드 시간. 사람들이 바닥에 앉기 시작했다.
"picnic blanket 사기 잘했지?"
주변의 부러운 시선. 그래, 이 맛에 산 거지. 미키와 미니, 디즈니 공주들이 춤추며 지나갔다. 엘리가 열심히 손을 흔들자 엘사가 손을 흔들어줬다.
하지만 진짜 기대했던 건 오후 8시 불꽃놀이였다.
"바람으로 인해 불꽃놀이는 취소되었습니다."
내 버킷리스트 1순위가... 대신 시작된 레이저쇼를 보며 속으로 울었다. 완벽한 순간은 없구나. 디즈니에서도.
Day 2: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파크.
여기는 좀 더 '어른스러운' 놀이기구가 많다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물론, 디즈니 캐릭터들도 좋아하지만... 역시 어트랙션은 좀 과격해야 제 맛이다.
Silly Symphony Swings. 체인에 매달린 그네가 하늘 높이 올라가며 빙글빙글 도는 어트랙션을 보고 엘리가 방방 뛰었다. 원래도 그네를 좋아하던 아이였으니까.
"엄마, 저거 탈래! 아빠랑!"
4년 키운 엄마는 안 되고 아빠라니. 배신감이 들었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남편의 고소공포증.
"괜찮겠지? 그냥 그네잖아."
5분 후.
"아아아악!"
땅에서도 들리는 남편의 비명. 내려온 엘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무서워해서 내가 손 꼭 잡아줬어!"
네 살이 서른 넘은 성인 남자를 위로하다니, 그 괴리감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진짜 대참사는 Guardians of the Galaxy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영화를 테마로 한 어트랙션. 남편은 건물 외관만 보고 "별거 아니겠지" 했다. 아마도 탐험류의 어트랙션을 상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탄 가오갤은 엘리베이터 같은 어트랙션이었다. 문제는... 13층 높이를 급상승했다가 자유낙하하는, 번지점프 같은 엘리베이터였다는 점.
"으아아악!"
이번엔 엘리까지 울었다. 15분 후, 좀비가 되어 나온 우리 가족. 남편은 벤치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뇌까지 흔들린다고 했다..
"물... 물 좀..."
하염없이 걷다가 도착한 곳은 Disney's Grand Californian Hotel. 호텔 로비에 푹신한 의자들이 있어 휴식을 취하기 딱 좋았다. 그런데 거기서 뜻밖의 행운이!
산타클로스 무료 사진 이벤트.
작년 데이비스에서는 산타 사진 찍으려고 1인당 30달러씩, 나랑 엘리 둘이서 60달러를 냈었다. 그런데 여기서 공짜라니? 역시 디즈니다!!!!
"Ho ho ho! Merry Christmas!" 작년에는 산타할아버지를 그렇게 싫어했는데 이번에는 산타와의 사진이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조금 쉬고 나와서 찾아간 마지막 어트랙션은 Radiator Springs Racers. 픽사 영화 Cars의 레이싱을 모티브로 삼았나 보다.
"이번엔 진짜 안 무서워. 자동차잖아."
남편의 확신. 처음엔 정말 느릿느릿 동굴 속을 지나갔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자마자...
"Ready, Set, GO!"
시속 40마일 급발진! 급커브!
"엄마아아!"
엘리가 또 울었다. 우리의 디즈니 여행은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은가.
그때 World of Color 쇼가 시작됐다. 거대한 분수에 영상이 투영되는 장관. 알라딘 OST 'A Whole New World'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듣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옆에서 남편이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737일의 미국 생활.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힘들었던 적응기, 외로웠던 시간들, 그래도 가족이 함께여서 버틸 수 있었던 순간들. 이제 정말 끝이구나. 한국으로 돌아가는구나.
디즈니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었다.
'2년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 Day 1. Disneyland Park >
< Day 2. California Adventure 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