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마음 조각들을 데이비스에 남긴채

'Goodbye'라는 말 이후에도

by 유지니안

"엄마, 이거 뭐야?"

엘리가 거실 바닥에 펼쳐진 선물들을 만지작거렸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주문한 선물들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부채,전통 문양 북마크, 필통,작은 보석함... 한국에 계신 엄마를 통해 미국까지 배달된 선물 보따리였다.

"친구들 줄 선물이야. 우리 곧 한국 가잖아."

순간 엘리의 말문이 막혔다. '한국'에 대한 기억이 없는 엘리였기에,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아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선물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루시아 가족, 릭과 찰리, 새라, 그리고 케이티 할머니. 737일 동안 데이비스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끝까지 마음을 나눈 진짜 친구들이었다.




첫 번째로 Farewall 인사를 나눈 친구는 앨리슨과 루시아. 아마 기억하지 못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다.

엘리가 미국에서 첫 번째로 사귀었던 페이지, 그리고 그 가족과 안 좋게 끝난 이후, 동네를 배회하다가 만나게 된 친구들이다.

루시아는 1살 많은 엘리를 친언니처럼 따라다녔고, 그걸 지켜보는 나와 엘리슨도 빠르게 가까워졌었다. 무엇보다 육아로 인한 경단녀 그리고 이중언어를 쓰는 아이들이라는 공통점이 우리를 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59. 뜻밖의 겨울" 참조)


"We're leaving next month."

Whaleback 놀이터에서 루시아와 아이들이 뛰어노는 걸 보며,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하지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귀국 소식을 전했다.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여와 쥐어짠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Oh no! Really?"

엘리슨의 눈이 순간 커졌다.

"But... but we just became real friends!"

그녀 말이 맞았다. 2년이라는 시간 중 처음 1년은 서로를 관찰하고, 다음 반년은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이제 막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 시점이었다. 왜 친구가 되는 데는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Ellie, Lucia and I will miss you so much!"

엘리슨의 딸, 루시아가 엘리 손을 잡아끌었다. 두 아이는 언어가 완벽하게 통하지 않아도 이미 베스트 프렌드였다. 어른들처럼 복잡한 과정이 필요 없었다.

"I brought something for you guys."

한지로 만든 필통을 루시아에게 건넸다. 그녀는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나를 꽉 안았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예뻐. And I'll miss you so much."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엄마 친구'가 아닌 '내 친구'를 만났는데, 이제 헤어져야 한다니.




그 다음은 릭. West Manor Park에서 만난 은퇴한 변호사 출신의 교사 할아버지.

릭은 내가 페이지 가족과의 관계로 고민할 때 진짜 조언을 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Stand up for yourself"라며 부당한 일에는 맞서야 한다고 가르쳐준 것도, 엘리를 위해서라도 당당해야 한다고 격려해준 것도 모두 릭이었다.

("#37. 걱정 마요, 아이는 알아서 자라요", "#38 나도 이제, 미안하지 않기로 했다" 참조)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찰리의 요란한 짖음 소리가 들렸다.

"Charlie, stop!"

문이 열리자 찰리가 뛰쳐나와 내 다리에 뛰어올랐다. 이 스탠다드 블랙 푸들은 내가 올 때마다 이런 식으로 환영해줬다. 아니, 사실 누가 와도 이렇게 반겼지만.

"릭, 우리 다음 달에 한국으로 돌아가요."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릭이 잠시 멈췄다.

"I knew this day would come, but... it's too soon."

나도 말을 잇지 못했다. 잠깐의 정적 끝에 가까스로 말을 돌렸다.

"우리 남편, DC Bar에 합격했어요. 릭에게는 정말 후배 변호사가 된 셈이죠."

"Oh, really? I thought your husband would pass the Bar."

릭은 짐이 아직 오지 않아서 아무것도 없었을때 엘리를위해 좋은 동화책을 선물해줬다. 그리고 언제나 랍비처럼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아 그리고 찰리를 위해 준비한 게 있어요!"

가방에서 씹으면 삑삑 소리 나는 공을 꺼냈다. 찰리는 벌써부터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And this is for you."

릭에게는 작은 유리병에 담긴 수제 김치를 건넸다. 평소 내가 김치 담글 때마다 조금씩 가져다줬는데,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Your kimchi is the best I've ever had. Even better than the ones from Korean market."

"거짓말 마세요."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No, I'm serious. There's something... special about homemade food. 특히 친구가 만든 거."

찰리가 새 장난감을 물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걸 보며,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가끔은 침묵이 더 많은 걸 말해주는 법이다.




그 다음으로 인사한 친구는 새라. Davis International House의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었다. 페루에서 살다가 데이비스로 돌아온 두 아이의 엄마. 지적 호기심이 넘치지만 같이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어 외로움을 느끼던 친구. 아웃라이어, 넛지와 같은 다양한 책과 주제에 대해서 지식을 공유할 수 있었던 존재...

1:1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Viliage Homes 주변을 산책하거나 새라네 집에 초대되어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매주 UC Davis Student Farm에서 얻은 신선한 채소들을 나눠주었다. 약간은 내 동생 같을 때도 있고, 또 약간은 내 언니 같을 때도 있던, 내 친구 새라.

("#59. 뜻밖의 겨울", "#60. 375도 오븐에서 데이비스 겨울을 구웠다" 참조)


"데이비스에 좀 적응할 만 하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네요. 너무 아쉬워요"

나의 불멘 소리에 새라가 살풋 웃으며 말했다.

"I felt the same way when I was in Peru."

새라가 라떼를 저으며 말했다.

"It’s only when it’s time to leave that a place truly starts to feel like home."

그녀 말이 정확히 내 마음을 찔렀다. 2년 내내 적응이 안 된다고 투덜거렸는데, 막상 떠나려니 데이비스의 모든 것이 아쉬웠다.

"Let’s keep in touch on WhatsApp. Even with the time difference, we can still talk about books, news… all of that."


실제로 그녀와는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가까워진 것 같기도 했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각자의 문화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해주며, 진짜 '펜팔'이 된 것이다.

"이거... 한국 전통 문양이에요."

새라에게 준비한 선물은 나비와 꽃이 새겨진 한지 북마크였다. 책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딱 맞는 선물이었다.

"Beautiful! Whenever I see this, you’ll come to mind."




케이티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은 이제 눈감고도 찾을 수 있었다. 몇 번이나 칠리 수업을 받으러 갔던가. 울프와 엘리가 함께 뛰어놀았던 뒷마당, 할머니표 쿠키 냄새가 가득했던 부엌... 모든 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했다.

("#40. 극I 엄마와 극E 딸이 미국에서 살아남는 법", "#60. 375도 오븐에서 데이비스 겨울을 구웠다" 참조)


"Ellie! We're here!"

문을 열자 울프가 먼저 뛰어나왔고, 뒤이어 케이티 할머니가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Come on in. Today I’ve got cookies and lemonade just for you! I made the lemonade myself with lemons I picked."

들어와요. 오늘은 특별히 쿠키와 레모네이드를 준비했어! "내가 딴 레몬으로 직접 만든 레모네이드야!"

뭔가 했더니, 할머니가 한국에 돌아갈 우리를 위해 쿠키와 레모네이드를 해 두셨단다. 그것도 그냥 마트에서 산 게 아니라 직접 만드신. 그 정성에 또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It reminds me of when we first met at DPNS. At that time, you were shy, and now you’ve become such a perfect co-op mom."

사실 아직도 DPNS에서 아이들을 공동으로 케어하는 건 어려웠다. 게다가 이번 학기부터는 남편이 주로 엘리와 DPNS를 맡고 있어 조금 머쓱한 기분도 들었다. 확실한 건, 내가 DPNS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 케이티 할머니가 계속 격려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첫 달에 포기했을 것이다.

"이거... 할머니께 드리고 싶어요."

한지로 만든 작은 보석함을 꺼냈다.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보더니, 안에 있는 전통 문양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Something this beautiful… I’ll treasure it forever.."

"크리스마스마다, 엘리 생일마다 연락할게요. 울프 선물도 보낼 거예요!"

실제로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서로 카드를 보내고, 아이들 생일에는 작은 선물을 교환했다. DPNS에서 시작된 인연이 태평양을 건너서도 이어진 것이다.




지금도 가끔 WhatsApp 알림이 울리면 가슴이 뛴다. 새라가 보낸 책 추천, 기사, 팟캐스트일 수도 있고, 케이티 할머니가 보낸 울프 사진일 수도 있다.

737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진짜 친구를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친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데이비스에서 찾았다. 같은 언어를 쓰지 않아도, 같은 문화권이 아니어도, 심지어 나이 차이가 40년이 나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진짜 우정은 "Goodbye"를 말한 후에도 계속된다는 것.


미국에 와서 나에게 남은 건, 세탁기 없는 아파트와 포기한 미국 박사의 꿈 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엔 내 마음의 한 조각들이 남아있다. 루시아와 엘리가 뛰어놀던 놀이터에, 릭과 찰리가 우릴 반겨주던 집 근처 공원에, 새라와 커피를 마시던 테이블에, 그리고 케이티 할머니의 부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