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같은 시간, 마지막 선물같은 네 달
2023년 9월. 완연한 가을 날씨가 데이비스를 뒤덮는다. 그리고 엘리의 DPNS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DPNS 교실은 여전히 활기찼다. 여름방학 동안 키가 부쩍 큰 아이들, 새롭게 합류한 낯선 얼굴들, 그리고 12월이면 떠나야 할 우리 가족.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아렸다. 이제 겨우 완전히 적응했는데, 떠나야 한다니.
9월 첫째 주, 오리엔테이션에서 새로운 가족들을 만났다. 이번 학기에도 역시나 '동양인'은 우리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도계 가족이 하나 더 있긴 했지만, 인도인은 동양인으로 보기엔 너무 특색이 강해서 따로 분류해야 할 것 같았다.
"12월에 한국 간다고 했더니 다들 아쉬워하더라."
"그래도 남은 네 달이라도 DPNS 다니기로 잘했네.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이나 갈까 생각도 했었잖아."
맞다. 사실 12월에 떠날 거면서 굳이 9월 학기를 등록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4달 내내 여행만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남편도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들어야 했다. 졸업논문도 써야 하니 데이비스에 어느 정도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엘리가 친구들과 보낼 마지막 시간이 필요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이번 학기 우리 가족이 맡을 역할도 정해졌다. 바로 플레이도우(playdough) 만들기였다.
"플레이도우를 만들어오라고? 그냥 사는 거 아니었어?"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남편과 같은 반응이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플레이도우를 직접 만들 일이 없다. 대부분 쿠팡에서 주문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DPNS는 달랐다.
"이거 다 사서 공급하려면 돈이 엄청 들 거야. 우리가 만들어야 해."
DPNS는 경험식 보육을 중시하기 때문에 플레이도우를 정말 많이 사용했다. 아이들이 만지고, 주무르고, 찢고, 다시 뭉치면서 소근육도 발달하고 창의력도 기른다는 것. 즉, 30명 분의 플레이도우 약 1kg를 격주로 가져다주는 것이 우리 역할이었다.
DPNS는 단지 Duty Day만 하면 되는 곳이 아니었다. 학교가 잘 운영되고 아이들이 잘 자라고 배울 수 있도록, 학부모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맡아 노력하는 시스템이었다. 누군가는 간식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교구를 정리하고, 누군가는 행사를 기획했다. 우리는 플레이도우 제작 담당이 된 것이다.
첫 주, DPNS에서 준 레시피대로 플레이도우를 만들어봤다. 밀가루, 소금, 크림오브타르타르, 기름, 물, 식용색소. 재료는 간단했는데 왜인지 잘 뭉쳐지지 않았다. 끈적거리기만 하고 플레이도우 특유의 쫀득한 느낌이 나지 않았다.
"이거 맞아? 왜 이렇게 질퍽거리지?"
남편이 나무 주걱으로 휘저으며 투덜거렸다. 처음 만든 플레이도우는 완전 실패였다.
다음날 DPNS에 그 실패작을 가져갔더니, 대부분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다들 플레이도우를 한 번씩은 만들어 보았는지 여유가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Katy 할머니가 우리를 부르더니 속삭이듯 물었다.
"플레이도우 레시피 줄까? 내 비법 레시피 말이야. 그리고 내 푸드프로세서랑 주걱도 가져가."
알고 보니 Katy 할머니도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좋죠"라고 대답했고, 그녀는 종이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물 온도가 핵심이야. 그리고 크림오브타르타르 브랜드마다 결과가 이상하게 다르더라고. 꼭 내가 적어준 제품으로 사용해야 해."
그날 저녁, Katy 표 레시피로 다시 도전했다. 푸드프로세서로 조금씩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냄비에 재료를 넣고 약한 불에서 저으면서 가열하는데, 확실히 뭔가 달랐다. 처음엔 묽은 반죽이었다가 점점 되직해지면서 냄비 바닥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 이거다!"
남편이 힘을 주어 저으며 감탄했다. 확실히 되직해질수록 저어주는 데 힘이 많이 들었다. 한번 남편 대신 해봤는데 팔이 다 아릴 정도였다.
"헉헉... 역시 믿고 쓰는 Katy 할머니 레시피야."
"이걸 Katy 할머니는 매번 직접 만드신다는 거잖아. 아무리 봐도 나보다 힘이 세신 것 같은데?"
Katy 할머니는 덩치도 남편보다 크고, 실제로 힘도 더 세 보였다. 농장에서 자란 미국 할머니의 위엄이랄까.
플레이도우 만드는 법을 터득한 남편은 곧 Duty Day에서도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편이 Duty Day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무래도 무뚝뚝한 편이고, 영어로 현지인들과 대화하는 걸 그리 즐기지 않는 성격이었으니까. 하지만 플레이도우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몇 주 지나니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들려왔다.
"너희 남편? 걱정하지 마, 엄청 잘해!"
Katy 할머니가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일도 뚝딱뚝딱 잘하고, 해야 할 거 있으면 미리 찾아서 하고. 청소도 꼼꼼하게 하더라고."
"아 진짜요?"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제대의 힘인가, 남편을 보다 보면 우리나라 군대는 무슨 맥가이버를 만드는 곳인 것 같았다.
"대화도 곧잘 해. 근데 문장이 뭐랄까... 엄청 고풍스러워. 그래서 좀 어색하달까..."
집에 와서 남편에게 물어봤다.
"Bar 시험 공부하다 보니 자꾸 문어체가 나와. 'Would you be so kind as to...' 이런 식으로 말하게 돼."
오히려 구어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나는 반대로 문어체에 약해서 남편이 부러웠는데, 서로 없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나 보다.
남편의 Duty Day 적응은 엘리 도시락에서도 드러났다. 처음엔 실수투성이였다. 포도를 통째로 넣어서 엘리가 먹기 힘들어했고, 샌드위치에 잼을 너무 많이 발라서 다 흘러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몇 주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남편은 자신만의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월요일, 화요일: 딸기 + 비스킷 + 치즈 스틱
수요일, 목요일: 블루베리 + 참쌀선과 + 치즈 스틱
금요일: 샤인머스켓 + 그래놀라 바이트 + 치즈 스틱
"매주 똑같은 패턴이야?"
"효율적이잖아. 장볼 때도 편하고."
전형적인 ISTJ 남편다운 대답이었다. 엘리가 질려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엘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싸줘서 좋다고 했다.
"아빠 도시락이 제일 좋아!"
엘리의 이 한마디에 남편은 더욱 자신의 시스템을 고수했다. 매주 화요일마다 플레이도우를 만들고, 매주 수요일마다 정해진 패턴대로 도시락을 싸는 남편. 미국 생활에 나름대로 적응한 모습이었다.
9월이 10월로 넘어가면서 데이비스의 나무들이 조금씩 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는 모든 게 낯설고 어려웠는데,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히 적응한 지금, 우리는 떠나야 했다.
"엄마, 우리 언제까지 학교 가?"
"12월까지."
"그다음엔?"
"한국 가는 거야."
"그럼 페이지는? 루시아은? 램지는?"
매번 같은 질문을 하는 엘리에게 매번 같은 대답을 해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4살 아이에게 이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다는 걸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매주 남편이 Duty Day를 하면서, 그리고 격주마다 1kg의 플레이도우를 만들어 가면서 우리는 마지막 DPNS 생활을 충실히 보냈다. 12월까지, 딱 네 달. 짧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느 날 Katy 할머니가 말했다.
"너희가 떠난다니 정말 아쉬워. 특히 엘리가 보고 싶을 거야."
"저희도요. 여기가 그리울 것 같아요."
"그럴 거야. DPNS는 한 번 거쳐 간 사람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거든."
그녀의 말이 맞았다. DPNS는 단순한 유치원이 아니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곳, 공동체의 의미를 배우는 곳, 그리고 타국에서 만난 따뜻한 안식처였다. 아마 미국에 고향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이곳 데이비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