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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엘리 Mar 18. 2024

애장(愛藏), 애증(愛憎) 그리고 애증(啀增)

애장 愛藏 = 자기가 아끼는 물건  

애증 愛憎 = 사랑과 미움

애증 啀增 = 개가 물으려고 으르렁 거림


나에게 애장품은 없다. 마음을 진즉에 비웠다. 뭐든 새롭고 좋은 것이 있으면 고이고이 모셔두고 아끼다가 정작 필요할 때 쓰지 못하고 결국 가지고 있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 나이만 잔뜩 먹은 채 지하실 구석구석 박혀 있다. 하지만 나에겐 애증(啀增)품이 있다. 반평생을 함께한 남편이다. 나는 남편한테 피해의식이 강해 불만이 많다. 하지만 한가지 사건으로 남편은 나에게 큰 펀치로 뒤통수를 강타한다. 

결혼 13년 차에 갑자기 엄마가 암 선고와 함께 6개월이라는 시한부라 연락이 왔다. 그때는 자식들이 다 미국에 살고 있었을 때라 어떻게 할지 몰라 결정을 못하고 우왕좌왕했었다. 그때 남편은 나와 상의 없이 한국으로 가서 부모님을 미국으로 모시고 왔던것다. 남편은 부모님을 모시고 전국 여행을 하면서 미국에 가자고 설득했다 한다. 당시 이민에 대한 두려움이 크셨던 나의 부모님은 남들은 받기도 힘든 초청장을 3번 모두 거부 하셨었다. 미국에 온 후 남편은 엄마를 모시고 매주 3번 병원 치료와 주말마다 산으로 바다로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 드렸고, 엄마는  묫자리는 물론 묘비까지 모두 자식이 아닌 사위와 같이 하셨다. 그렇게 엄마는 2년을 우리와 함께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픈 엄마에 대한 지극정성은 자식인 나도 놀랄 만큼이었다. 

이리 고마운 남편인데도 내 마음은 배은망덕하게 당장 눈앞의 불편함에 성질을 부린다. 내가 약에 내성이 강한지라 약발이 오래가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고마운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이 사건 하나로 내가 품은 모든 불만이 커버되는 내공이 나에게는 없다.  

시간이 흘러 혼자 산 날보다 같이 산 날이 많아진 우리는 서로 간에 암묵적인 협상이 만들어진다. 이젠 사랑으로 사는 건 아닌 것 같고 살아온 날의 정과 필요가 서로 조화를 이뤄 남은 날을 함께 할 것이다.  


에피소드 -애증 (啀增)한 사오정부부 

팬데믹 후 자동차 가격 상승으로 우리는 그동안 리스하던 차 두 대를 구입한다. 개인으로 등록을 바꾸면서 새로운 번호판이 나왔는데 문제는 가운데 번호만 틀리고 앞뒤 영문이 같은 것이다. 아뿔싸 둘이 두 번호판을 확인하다가 섞이고 말았다. 딸려 온 종이에는 표시가 없다.  

나: "차 번호판 62가 아우디라 했잖아. 몇 번을 말을 해야 해?" 

남편: "네가 언제? 언제 그랬어. 네가 42라 했잖아."

나: "언제 내가 언제??? 기가 막히네… 42라는 번호는 꺼내 본 적도 없는데, 42는 혼다야."

남편: "그러니깐 왜 섞어가지고…."

나: "내가 그랬니? 내가 혼다 번호판은 따로 놔두었잖아."

남편: "언제? 그래서 아우디가 42라고???"

나: "아니라 했지!!!! 62라 했지!!!!"

남편: " 너 도대체 왜 그러니?"

나 "내가 62라 했는데 왜 그리 못 알아들어?"

이런 하찮은 애증( 啀增)이 일상다반사 다. 

우리 부부의 대화는 참으로 가볍고 칩(cheap)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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