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대나무 숲이 필요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어느 한 나라의 임금은 남모르는 심각한 고민이 있었는데, 바로 귀가 당나귀 귀처럼 크다는 것이었다. 왕은 자기의 치부인 긴 귀를 숨기려 했고, 왕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발사는 함부로 발설할 수가 없으니 벙어리 냉가슴 앓듯 심한 마음고생을 하며 지내야 했다. 결국, 골병이 든 이발사는 '에라, 병으로 죽으나 처형당해 죽으나 어차피 죽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차라리 속 시원하게 말을 하고 죽자'라고 굳게 결심하고 한밤중에 뒷산의 대나무밭 중심에 땅을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렇게 계속 소리를 지르자 속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뻥 뚫려 속 시원하게 병이 나았는데….
26년 동안에 내가 살던 방식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적응하느라 지친 난 언제나 그 이발사의 대나무 숲이 고프다.
2021년 올해는 나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결혼해서 미국에서 산 해와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해가 같다. 26년 전 새로운 시작의 시발점은 나의 삶에 권태로움에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 한참 떠들던 얘기들은 ‘네 꿈이 무엇이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는 말들이 많이 화두에 올라왔었다. 나 또한 이 물결에 휩쓸려 나의 정체성에 의문이 생겼고 미술을 전공해서 디자이너로 직장을 다니고 있던 나에게도 이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소심한 생각으로 180˚ 다른 직업을 알아보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남편은 나보다 5년 먼저 미국에 이민 와서 살았고 한국에 사는 형을 보러 왔다가 나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몇 번 대화를 나눠 보니 나와 생각이 같고 마음이 맞아 나의 반쪽이라는 생각에 만난 지 몇 달 만에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해서 가족을 떠나 홀로 낯선 미국에 왔을 때 부부의 인연을 맺은 남편, 그리고 남편의 가족과 만남은 나에겐 새로운 고행의 시작이었고 마음에 없는 패션(passion)이었다. 이해할 수 없이 낯설고, 어렵고, 불편한 현실의 십자가를 짊어진 듯 결혼을 나의 어깨 위에 턱 얻고 방향 없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나 스스로 방황하는 시기에 결혼이라는 선택이 인생의 갈림길에서 쭉 뻗은 고속도로라 착각했고 편하게 가려는 무임승차였다. 그리고 ‘여자가 잘해야 집안이 잘된다’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이 나의 결혼 가이드라인이었다. 하지만 26년 동안에 내가 살던 방식과 정반대되는 다른 가족들과의 삶에 적응하느라 지친 난 언제나 그 이발사의 대나무 숲이 고프다.
타향 미국에서 사는 이웃들은 아는 사람을 물어물어 연결하면 다 친척, 이웃사촌이다. 세상이 좁다는 말이다. 그래서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금방 퍼져서 감당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이런저런 하고 싶은 얘기들이 생기는데 나에겐 얘기할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바다 건너 있는 친정엄마를 내 얘기 보따리에 태워서 이리저리 흔들리게 하고 싶진 않다. 단짝 친구도 나와의 시간과 공간 차이도 무시 못 하는 데다가, 사는 형편이 달라 짧은 얘긴 몰라도 긴 얘기는 마음이 맞지 않는다. 또한 가볍게 만나는 지인들에게는 더더욱 속 얘기를 못 한다. 이런 내 속내를 하루 이틀 그리고 한해 두해 뱉지 못하고 꿀떡꿀떡 삼키다 보니 어느새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로 쌓여 풍선처럼 커져 내 혀를 누르고 내 생각을 누른다.
“에라, 병으로 죽으나 처형당해 죽으나 어차피 죽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차라리 속 시원하게 말을 하고 죽자” 도저히 이런 용기는 나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자 속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뻥 뚫려 속 시원하게 병이 나았다는데 그 순간일 뿐 그다음에 오는 후 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나는 없다. 이 우화에서도 임금은 큰 깨달음을 얻고 성군이 되지만 가깟으로 목숨을 구한 이발사에 대한 얘기는 없다. 그가 한순간의 후련함으로 마음이 편했을까? 죽음을 모면한 그 순간에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응어리를 조금씩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내가 키운 응어리가 너무 익숙하고 오래되어 이미 나의 살이 돼 따로 떼어 놓을 수도 없다. 이 또한 나 자신이고 이겨 내야 할 나의 몫이 되었다. 내 나이 50에 접어들고서부터 나의 소리를 조금씩 내기 시작한다. 내 나이의 무게도, 그리고 나에게 스스로가 ‘너 이젠 괜찮아’라는 용기가 받아들여짐을 느낀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계절풍에 몸서리를 친다. 나는 버릇이 되어버린 편안함에 안주하려 하고 변하려 하는 새로움에 불안, 두려움, 포기의 유혹이 나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랴? 이런 계속되는 노력이 심심치 않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늑대: “이발사 당신은 이제 유명해졌군. 가게에 손님들로 가득하고… 그런데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걸 혼자서 참느라 정말 힘들었겠어.”
이발사: “많이 힘들었어요. 내 경솔함이 임금님의 귀는 허물이 아니라 백성의
소리를 잘 들으라는 깨달음을 알게 했죠.”
늑대: “그런데 말이야. 이번엔 진짜로 비밀을 지켜줘야겠어. 내가 엄마 양을
잡아먹고 그 새끼들을 잡아먹으려 양의 탈을 써야 하는 데 몇 군데 다듬어
줘야겠어. 새끼들을 감쪽같이 속여야 하거든. 만약 이 얘기를 다른 데 가서
얘기하면 내가 너를 잡아먹을 거야. 명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