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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엘리 Mar 18. 2024

한 여름날의 꿈


여전히 더운 기가 가시지 않은 아침이다. 탁상시계의 유브이 라잇이 밤새 시간을 내뿜고 있다. 침대에서 내려오는 그녀의 몸이 굼뜨다. 한 발 한 발 조심했지만, 바닥에 내려선 그녀의 몸은 중력에 의한 하중으로 뼈 마디마디마다 자리를 잡는 고통이 들이닥친다. 요즘 들어 손가락과 발가락이 밤새 터질 듯 부어  새벽 아침  침대 안에서 손발을 펴는 운동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불행하지 않다.
그녀는 인생에 미치도록 열정적인 적이 없었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감정의 변화도 둔하고, 냄새에도 맛에도 둔하다. 그녀의 어머니 장례식에선 그녀의 친구가 하도 울어서 하객들은 그녀의 친구가 딸인 줄 알았고, 지인의 어머니 장례식에선 애도해야 할 자리에 그 지인이 하도 반가워 소리 내 웃으며 인사를 했다. 하물며 콩국수나 설렁탕 먹을 때도 소금을 넣지 않고 냄새는 80% 맡지 못한다. 새로운 도전은 항상 부러우면서도 그녀에게 시작은 두렵고 게으르다. 자신을 무엇보다 지루하게 생각한 그녀는 이곳저곳을 찔러보는 게 다반사다. 성격상 한다고 하면 지그시 밀고 나가는 끈기 덕분에 그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나 싶다.
팔색주(八色酒)의 글쓰기 숙제로 미숙한 그녀는 창조적인 일에 기꺼이 몸과 마음을 던져 본다. 노트북 앞에 앉아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하나하나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본다. 전 세계를 혼자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아름답고 이국적인 자연을 탐미도 해 보고, 세계 여러 나라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서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마음을 느끼고 싶다. 과거로 돌아가 나의 오해와 치부들을 하나하나 고쳐도 본다. 이런 상상만으로도 오늘 하루 그녀는 한 여름날의 꿈을 꾸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어릴 때 그녀는 앞으로의 날들이 무한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젊은 시절은 가버렸다. 지금의 그녀는 유한의 무거움과 새옹지마의 덧없음을 직시한다.
이제 그녀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녀가 감당할 만큼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나 힘들어. 그냥 남들처럼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 선택은 그녀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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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 p.300 <남아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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