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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Sep 14. 2023

야옹아!
햇살이 눈부셔도 눈물이 난다  

집사가 고양이에게 쓰는 편지 

저 어디쯤에서 밀려오는 뭉클함일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단다.


하마터면 네가 거기 있는지조차 모를 뻔했다. 나는 밀린 일을 하느라 분주했고 너는 없는 존재처럼 붙박여있다. 창밖 햇살은 왜 그리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일까. 뼛속 깊이 햇살의 가시가 박힌다. 이상하다. 햇살이 너무 환해도 마음이 아프다는 것.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의 눈을 뜬다. 밝음과 어둠이 베란다 창을 사이로 경계를 긋는 순간이다. 무심코 돌아본 거기, 외로움의 무게가 크게 느껴진다. 


야옹아! 햇살이 너무 눈부셔도 눈물이 나더라. 


외로움은 가슴 저 밑바닥에 우물 하나씩을 안고 사는 거란다.  맑고 깊은 그곳에는 감성이란 그릇이 놓여있지. 감성의 그릇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누군가를 생각한다면 사랑아! 하고 불러보렴. 사랑이 마음속 깊은 우물에 풍덩하고 떨어져 내리면서부터 외로움도 더 깊게 자리 잡는단다. 지나고 보니 기억조차 아름답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감성인 것을 나는 그땐 몰랐어. 


학창 시절, 책갈피에 낙엽을 넣어 말리는 날이 많았지. 그땐 뭐가 그리 우울해서 비가 오면 한 없이 비를 바라보았어. 뭔가 막연하게 그립더라고. 낙엽만 굴러가도 깔깔거린다는 그 말이 딱 맞더라. 고만고만한 친구들끼리 뭉쳐서 갈래머리에 교복 입고 빵집 데이트라! 그리고 나선 김에 우르르 경복궁까지 섭렵했지. 나름대로 신선하고 건전했노라고 지금도 웃으며 얘기한단다. 


사랑이라는 것은 무얼까. 사랑의 감정이 클수록 외로움도 크더라. 사랑이 서로의 교집합처럼 굴러가면 좋겠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야. 그래서 마음의 공간을 채우지 못하는 빈자리에 외로움이 머무는 가봐.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 거 말이야. 그러나 조언컨대 빈 공간을 채우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는 마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물처럼 막을 수 없단다. 그냥 빈 마음을 그대로 두는 거야. 


햇살이 환한 날에는 햇살이 놀다가 가도록 내버려 두고, 먹구름이 몰려오는 날에는 비가 맘껏 내리도록 비워두는 거지.  빗물에 젖어 질척거리는 땅을 울컥울컥 밟기도 하는 거야. 사랑은 그런 거란다. 


그러니 사랑할 수 있을 때 맘껏 사랑하고, 

안아주고 싶을 때 실컷 안아줘야 해. 그리고 빈 마음을 즐겨라. 이건 필수.


너는 오래도록 그렇게 앉아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나는 더 이상 다가가지 않으려 한다.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서로 존중받아야 하니까.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는 것이 중요해.  때로 우리는 자기만의 영역을 고집할 때가 있다. 내 안에 스스로 벽을 쌓기도 하지. 그래, 크건 작건 경계가 있음에 분명하다. 그건 성격이 까칠한 것이 아니야. 사람은 다 그런 거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페이지에는 나만의 공식이 존재한다. 결코 서로를 다 읽지 못하고 내 방식대로 결론을 짓고 말지만 말이다. 


알면서도 간혹 네 생각을 읽지 못해 너의 세계를 침범하더라도 용서해라. 그것은 내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나는 지금 기다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떤 이는 나를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나처럼 속 좁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나는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몹시 슬퍼한다. 감정과 설움이 복받쳐 소리 내어 꺽 꺽 울기도 하지. 금방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 올라 난감할 때가 많단다. 


나는 일찌감치 슬픔이란 단어를 알아버렸고 일찍 성숙해 버렸다. 너도 그런 것인가. 어떤 슬픔인가. 사랑인가. 그리움인가. 


너의 등을 보면서 팔순 노모의 등을 생각한다. 어머니의 굽은 등을 말없이 바라볼 때가 많았다. 한평생을 외로움으로 버틴 어머니가 내게는 늘 아픔이었고 거룩한 짐이었다. 어머니를 뵙고 돌아올 때면 가슴 저 밑바닥 우물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나는 본시 감성의 그릇이 동생들보다 좀 컸던 모양이야. 이렇게 자주 눈물이 나고 못 해 드린 것만 아쉬움으로 남아 마음이 아프니 말이야.


세월이란 참 여문 것이어서 오래도록 지난 다음에야 깨닫게 한다. 단단한 열매 하나 넌지시 건네주는 9월, 어느새 가을 한 자락이 성큼 걸어 들어와 지나온 길과 내가 가야 할 길의 방향을 다시 짚어 준다. 좀 더 천천히, 그러나 맛을 음미하면서 가라고 바람도 한 끝 불어와 기운을 북돋운다. 바람의 손은 부드럽고 때로는 따스해서 함께 가고 있는 듯하다. 특히 새벽바람은 등 뒤에서 손 모으는 기도의 입술 같다.


등은 아무 말하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젠가 보았던 어귀스트 로댕의 작품 중에 다나이드의 등에도 깊은 우물이 있었다. 긴 머리카락에 파묻힌 희고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등, 여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아도 영혼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했다. 꽃잎처럼 쓰러진 여인의 등을 보면서 나는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오늘 새벽예배를 마치고 기도를 드리는 남편의 등을 보았다. 늘 보던 일상이었는데 머리를 숙인 그 모습이 더 겸허하게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살짝 일어나 한 컷을 찍었다. 새벽을 깨우는 건 늘 남편의 몫이다. 사람들은 그게 편한 거라고 말하지만, 여기까지 함께 걸어오는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매우 약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러나 세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내가 이제 믿음의 중심으로 들어가 보니 남편의 고마움을 알겠다. 저 등에 실린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묵묵한 등이 외로울까 봐 오래 바라본다. 서로의 존재가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알게 된다. 


사람의 뒷모습은 참 정직하다.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이 그곳에 새겨져 있다. 등을 보면 앞모습을 보지 않아도 그 사람의 표정이 보인다. 나의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누군가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잘 살아왔다고 얘기해 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사랑아~~ 하고 부르면 내 안에 깊은 우물에서 풍덩 하고 외로움이 파문처럼 퍼진다. 외롭다는 것은 결코 혼자 있다는 말이 아니다. 빈 여백의 공간이 있어 내가 그릴 수 있는 풍경이 한없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외로움도 즐겨라. 나는 지금 나의 여백에 또 한 편의 시를 적어 넣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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