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캣맘으로 길고양이들의 엄마가 된 지 3년이 된다. 하루에 한 번씩 거의 같은 시각에 밥을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들. 비슷비슷한 얼굴도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 준다. 그리고 얼굴을 맞닥뜨리면 반갑게 인사한다. 안녕 쿠키, 안녕 콩아, 안녕 까꿍아, 안녕 수다쟁이야, 누랭아... 이들과 친구가 되어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고양이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함께 흘러간다.
아파트 끝자락에 있는 정자는 내가 길고양이들 밥을 챙겨주는 곳이다. 주민들이 통상 담배를 피우는 장소로 통한다. 이곳은 아파트 외부로 분류되어 길고양이들 밥을 주어도 누가 뭐라 하늘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길고양이들 먹이를 주는 일로 심심찮게 일어나는 언쟁을 보았다. 항상 찬반이 있는 법이라 밥을 챙겨 줄 때마다 행여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을까 염려한다. 밥그릇을 깨끗이 닦아서 밥을 담아주고 물을 갈아주면서 주변이 지저분하지 않게 신경 쓴다.
밥시간에 맞춰 찾아오는 길냥이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서 자꾸만 아는 척하고 싶고 말을 건네고 싶어 진다. 가끔은 나와 눈을 맞추는 녀석도 있는데 대부분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길고양이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지 그래야 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다가도 야속할 때도 있다. 밥만 먹고 도망치듯 가버리는 녀석들에게 "인사라도 해야지 그냥 가냐"라는 억지 말도 하면서 혼자 웃지만 먼 그대들이기에 이해한다.
쿠키도 정자에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 중에 하나다. 그런데 유독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으니 이게 웬일인가. 우리 예삐의 모습을 그 속에서 보았고 그래서 더 각별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간혹 쿠키가 보이지 않는 날이면 정자가 텅 비어있는 듯 너무 허전했다. 사람도 그렇듯이 강한 사람보다는 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지 않는가. 쿠키와 나의 사랑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쿠키는 한쪽 눈에서 짙은 갈색 물이 줄줄 흘렀다. 왼쪽 앞발을 절룩거리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쫓아 보냈다. 게다가 가래 끓는 소리를 심하게 해 대는 길고양이를 누가 그리 반기겠는가. 그래도 쿠키는 이리 쫒으면 저리로 가고 저리로 쫒으면 이리로 오고 참 넉살도 좋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사람이 있는 곳에 함께 있기를 좋아한다. 이런 길고양이들은 두 부류라 생각된다. 하나는 매우 연약해서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어서 찾아오거나, 혹은 누군가의 손에서 길러졌던 경험이 있는 고양이다. 그러면 대체 이 아이는 어떻게 이곳까지 왔을까!
너무 정 주지 말고!
남편은 내가 또 길고양이를 마음에 둘까 봐 미리 말을 던진다. 쿠키에 대한 동정의 마음을 읽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또 데려와서 기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그런데 어제는 약을 먹이다가 마음이 매우 쓸쓸했다. 평소에 그렇게도 따르던 아이가 나를 피해 슬슬 도망가던 뒷모습이 눈에 밟혀서 잠을 설쳤다. 멀리서 바라보던 두려움의 눈빛은 왜 그리 낯설었는지. 그 아이를 위해 했던 것이지만 돌아오면서 많이 생각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지.
방금 쿠키가 정자에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마음이 설레었다. 난 쿠키가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왜냐하면 어젯밤 그 아이 기억 속에는 지독한 기억으로 새겨질 만한 그런 일이었으니까. 결론적으로 쿠키에게 약을 먹이는 일은 모두 실패했다. 세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어제는 완전 최악이었다. 우리 둘 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음에 틀림없다.
아무래도 약국에서 구입한 약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추위가 오기 전에 완전하게 치료해 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약을 타기 위해 내가 얼마나 안절부절 한 걸 너는 알까. 몇 번의 시도 끝에 너를 이동장에 넣었지만 얼마나 요동을 치던지 그만 탈출하고 말았지. 생각보다 힘이 세서 놀랐고 무게가 있어서 놀랐다. 아니, 몸무게를 재려고 두 손으로 들어 올렸을 때는 그리도 얌전하던 녀석이 본색을 드러내는 것인지 생존 본능인지 아무튼 넌 대단한 녀석이더라.
겨우 처방받은 약을 들고 서둘러 찾아간 곳에 어김없이 앉아있는 흰 털의 소유자 쿠키. 이제부터 나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존재로 너에게 약을 먹여야 한다. 쿠키는 부스럭 거리는 비닐을 코를 들이대며 킁킁거린다. 준비해 간 숟가락에 추르를 잔뜩 넣고 약 한 봉지를 뜯어 새끼손가락으로 젖고 또 젖는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입에 갖다 대었는데 웬일인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추르에 혀를 슬쩍 갖다 대고 빨아대는가 싶더니 흰 거품을 줄줄 흘린다. 이렇게 첫날은 실패했다.
다음날, 나는 또 성공을 기원하는 두 번째 시도를 한다. 이번에는 참치캔에 섞어서 먹이기로 말이다. 참치에 약을 섞고 또 사료를 섞어 쿠키 앞에 조심스레 내밀었는데 또 웬일인가. 위에 올려진 몇 개의 사료를 걷어먹더니 주위만 빙빙 돌다가 저만치 떨어져 앉는다. 아무리 코 앞에 그릇을 가져다 대고 먹기를 청해도 아예 거들떠도 안 본다. 저 원망스러운 눈빛은 뭐지. 오늘도 흰 거품을 줄줄 흘리며 여기저기 구석을 찾는다. 풀밭에 숨는다. 이렇게 두 번째도 실패다. 그렇다고 내가 물러설 수야 없지 않은가. 이렇게 둘째 날도 실패했다.
셋째 날, 이번에는 우리 집 냥이 약을 먹일 때 사용했던 방법을 쓰기로 한다. 바로 주사기로 먹이는 것이다. 약을 물에 타서 주사기로 빨아 당긴 후 고양이 어금니 부근에 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얼떨결에 삼키던지 내뱉던지 그럴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의 강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철저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드디어 밤 9시, 약을 타서 정자로 향했다. 하루 종일 오던 비가 잠시 멈추었고 땅도 조금 말라있다. 계단을 오르는데 저만치 흰 생물체가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먼저 몸을 움직인다.
쿠키야 잘 지냈어!
나는 코맹맹이 소리로 친근감을 표시한다. 안약을 넣고 약을 먹이는 데는 순서가 필요하다. 오래 하다 보니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맨 먼저 푸른색 병에 있는 안약을 넣어야 한다. 이때 물휴지로 먼저 몸과 얼굴을 닦아주는 게 좋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서 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이때 찬스를 잡는 것이다. 두 손으로 얼굴을 살짝 들어 올리면서 눈을 열고 안약을 두 방울 얼른 떨어뜨리면 된다. 그리고 눈 주위를 살살 만져주면 약이 안으로 잘 들어간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주사기를 들고 순간을 노리는 중이다. 입을 벌려야 하는데 도대체 벌려지지 않으니 말이다. 어찌어찌하다 겨우 입을 벌려 주사기를 밀어 넣고 힘껏 눌렀다. 한꺼번에 다 밀어 넣은 것이다. 제발.
제발 토하지 말고 꿀꺽 삼켜라! 꿀꺽!
그런데 큰일이 벌어졌다. 꺼억꺼억 소리까지 내며 거품을 품어낸다. 웬 거품의 양이 그리 많은지 자꾸만 게워내고 또 게워낸다. 그게 너무 힘들어 보여서 내가 더 놀랐다. 이를 어쩌지. 걱정스레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쿠키가 너무 야속했다. 얼마나 썼으면 저렇게 괴로워하는 것일까. 배도 고플 텐데 먹이도 먹지 못하고 도망가듯 가 버리는 쿠키의 뒷모습이 눈에 밟혀서 잠도 설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뭔가 텅 비어있는 듯했다. 안약 도 하나 더 넣어야 했는데 모든 것이 아쉬웠다. 녀석, 너를 힘들게 하려는 생각은 정말 아니었는데.
쓴 약을 무지막지하게 입으로 밀어 넣다니. 엄마 마음이 아무리 그래도 좀 심했다. 어젯밤에 나를 피해 내려가느라 밥을 챙겨 먹지 못했을 것이다. 계단 옆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짠해서 얼른 밥을 챙긴다.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쿠키의 밥상을 차린다. 오늘은 마음 편히 먹어라. 엄마가 다시는 너를 힘들게 하지 않을게. 물휴지를 꺼내 아이의 몸을 닦고 안약을 넣는다. 그리고 새로 구입한 허피스 겔을 혀로 핥아먹으라고 다리에 슬쩍 바른다.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내며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본다. 쿠키야! 잘 자. 어둠 속에 서서 또 뒤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