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인의 숲 Oct 03. 2023

숨숨집

나만의 아지트가 필요해

나도 너처럼 그럴 때가 있었다. 혼자만의 세계가 필요하더라. 때로는 무심한 듯 등을 돌리고 있으마. 그러나 너무 오래 있지 않기를 바란다. 통로가 있어도 정작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손을 잡을 수 없단다. 



사랑한다. 얘야! 목소리라도 한 번 내 주지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니!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도 도대체 반응하지 않는구나. 너의 검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동그랗게 확장된 동공 그 블랙홀 속이 궁금해진다. 그랬구나. 한 집에 살면서 우리는 서로를 읽지 못할 때가 있다. 수다쟁이처럼 말참견을 엄청 해댈 때는 언제고 갑자기 샐쭉 해져서 그곳에 들어가 있는 거니. 


너의 낯선 행동 앞에서 나는 몹시 당황스럽다. 요즘 부쩍 말이 늘어서 제법 대화가 되는가 싶었는데 그 깊은 우물 속을 도무지 헤아릴 수 없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작은 동심원을 따라 빙글빙글 돈다. 너를 생각하며 했던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솔직하게 말한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렇다면 정말 미안하다. 부족한 내 마음이 너에게 가 닿도록 기도를 한다. 


우리가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너의 시간이 나의 시간보다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갑자기 슬퍼진다. 그래서 더 잘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오늘 아침, 우연히 한 영상을 보고 엄청 울었다.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가 하늘의 별이 되기 전까지 3일간의 기록을 영상으로 남긴 것이었다. 무언가 울컥울컥 너를 향한 내 마음이 폭풍처럼 밀려와 목소리까지 꺽꺽하며 울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겪어야 할 과정이기에 마치 그것이 내 일인 양 슬펐다. 고양이의 따뜻한 체온이 다 사라질 때까지 정성을 다하는 집사를 보며 또 따라 울었다. 


얼마를 지났을까. 내 울음소리를 너도 들은 거니! 고개를 내밀며 나오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머리를 쓰윽 들이대며 문지른다. 오호 예삐야 사랑한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준다. 너는 부드러운 혀로 내 손까지 핥아준다. 마음과 마음이 교감하는 시간, 나는 왜 그랬니?라고 묻지 않는다. 때로 우리는 처음부터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대신 너를 꼭 끌어안고 말한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살자".



그 시절 나도 아지트가 필요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전농동 주택은 마당을 중심으로 안방과 건넌방이 마루를 끼고 기역자 형태를 하고 있다. 마루에는 해마다 시골에서 올라오는 쌀 가마니가 놓여 있었는데 그 때문에 우리 집은 먹을 것은 걱정이 없어 보여서 주변에서 부잣집으로 통했다. 남들은 보이는 것만 보기 때문에 실질적인 우리 집 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 더운 날에는 쌀벌레가 꿈틀거리던 기억이 있다.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은 잠시뿐이었고 오랫동안 묵힌 쌀로 밥을 짓기 일쑤였다. 


나의 아지트는 안방 한 귀퉁이에 붙어 있던 좁은 다락방이었다. 자질구레한 세간살이를 갖다 놓기도 했지만 그곳은 혼자 있고 싶을 때 몸 하나 누우기에 딱 알맞은 공간이었다. 마당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서 하늘을 보면 밤마다 별은 총총 빛났다. 별빛이 마당에 막 부서져 내릴 때 그곳에 붙박인 듯 박혀있었다. 밤하늘을 보면서 별을 노래하는 시인을 생각하고 책갈피에 꽂힌 낙엽 위에 한 자 한 자 푸시겐의 시구를 적었다. 라디오를 끼고 자정을 넘기곤 했다. 사춘기의 감성이 고조되었던 시기였다. 나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며 일기를 적었는데 차곡차곡 쌓인 일기장이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 속에 들어있는 깔린 슬픔을 꺼내보고 시를 쓰게도 하고 감정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잦은 부재로 인해 늘 경제적으로 빠듯했기 때문에 방 두 칸 중에서 대문옆에 있는 방은 월세를 주었다. 우리도 그렇고 세 들어온 사람들도 그렇고 다들 옹기종기 살았다. 여름날 마당에 사람들이 나와 있으면 화장실 가는 것도 너무 불편했다. 엄마의 알뜰함과 부지런함으로 그럭저럭 생활은 꾸려나갔지만 사 남매의 학업을 이어나가기에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활발함 속에 늘 그늘이 묻어 있었던 것 같다. 사 남매 중에서도 유독 나를 사랑하셨던 아버지는 사실 집안에는 너무 소홀했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몰려오지만 학창 시절에는 그것이 무척 우울감을 주었다. 그늘 속에서 근심처럼 자라난 아버지는 바람 같았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다녀가는 분이었다. 


그리고 지나간 자리에는 바람의 생채기가 늘 남아있었다. 마당에 내던져진 밥그릇들이 기억나고 가끔은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를 피해 찾아들던 장롱과 벽 사이의 구석진 곳이 생각나는 것이다. 그리고 다락방이 생각나는 것이다. 먼 훗날이 된 지금 그 기억을 꺼내 가끔 만져본다. 그때는 몰랐지만  슬픔도 지나고 나면 다 이해할 수가 있구나! 나는 이제 그 속에서 첨벙첨벙 놀 줄을 안다.


해마다 칠월이면 아버지가 계신 언덕을 생각한다. 늘그막에 다리를 쓰지 못했던 아버지를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들어줄 것을 너무 무심했다. 떠나가신 다음에야 알았지만 내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냥 그립다는 것, 그것이 답이 될 수도 있구나. 이제는 상처에도 새살이 돋고 그것이 자양분이 되었다.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은 빈자리의 그리움이다. 지금 용미리 언덕에는 잎이 무성하겠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훨훨 날아다니시라고 잔디에 뿌려드렸으니 싱싱한 잎들의 잔치로 올여름도 풍성했겠다. 


나의 첫 시집에 수록된 시 한 편에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묻어있다. 책갈피에 두고두고 볼 그리움이다. 



누군가 흘리고 갔을까 이 슬픔/가만히 귀 기울이면/흔들리는 당신의 어깨가 보여/

그간 안녕하셨는지 /못 이긴 척 화해의 손 내밀까 /오랜만에 나도 당신 손 잡고 싶다//     

돌아서서 나직이 불러봐도/기다리던 대답은 없고/훌쩍 떠나버린 그날처럼/ 해마다 찾아오는 이 통증은/

아직도 못 박힌 흔적인데// 차라리 차가운 볼 비비며/사랑한다고, 용서한다고... 말이라도 할 걸/

그냥 그렇게 안녕을 했다// 누군가 흘리고 갔을까/몸에 밴 슬픔의 곡조/국화 한 다발 안고 간 언덕배기엔/

가다가다 지친 오랜 풍경처럼/ 낮달만 앉아/ 다 써 내려가지 못한 그리움을 읽고 있다//

  <졸 시: 용미리에서 전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