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이름으로 행복을 만들어가자
울 집 냥이 심심할까 봐 친구들을 붙여 주었다. 멍멍이, 오리, 곰... 처음에는 양양펀치로 죄다 떨어뜨리더니 지금은 저렇게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건다. 요즘은 모두 친구가 되어서 나란히 앉아있을 때가 많다. 그 모습이 좋아서 사진 한 컷 남기니 볼수록 예쁘다. 냥이가 외로울까 봐 하나 둘 모아서 올려놓은 것인데 따로 인 듯하면서도 서로 조화롭다. 서로 몸을 기대고 있으면서도 저마다 활발한 표정이 보여서 좋다.
그래, 예삐야!
냄새도 맡고 만져도 보고 얘기도 들어주는 거야. 친구란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란다. 귀를 기울여주면 얘기가 들리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다가가는 냥이. 먼저 다가가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이야.
우리 주인님이 심심해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저리 빠르고 날렵한 냥이의 에너지를 어찌 우리가 다 감당하겠냐마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겠지. 냥이의 놀이담당은 남편 몫이다. 아침저녁으로 짧게나마 놀이를 거의 담당하고 있지만 어떨 때는 바통 터치를 하듯 내게로 슬쩍 넘어온다. 고양이 육아가 이래서 힘든 것인가. 그래서 요즘에는 혼자놀 수 있는 장난감을 구입했는데 그것도 금방 싫증을 낸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들보다 지능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놀잇감에 반응하는 속도가 높은 편인데 반해, 싫증도 빨리 낸다. 나 편하고자 이런저런 궁리도 해 봤지만 내가 힘들거나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고양이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산책 가는 길에 예삐도 동행을 했다. 고양이와 함께 산책을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햇빛도 실컷 쐬고 바람도 직접 느껴 보라고 천천히 걸었다. 목줄을 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랬다가는 잃어버릴 확률이 많다는 병원선생님의 말에 대신 이동장에 넣어서 데리고 나갔다. 나름 이동장이 넓어서 편히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일부러 사람들이 드문 곳을 택해서 산책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보면서 "어머 고양이네"하는 소리를 들으면 내 새끼 자랑하듯 뿌듯해졌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며 커피를 마셨다. 간혹 새가 날아와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예삐의 검은 동공이 사뭇 확장되었다. 사냥 본능이 발동된 것인지. 아니면 호기심이 만발한 것인지.
그러나 사냥본능이 발동한다 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늘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남편의 또 다른 제안처럼 저 풀밭에 풀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실컷 놀게 하고 싶다는 그 말에는 찬성을 하지만 남편이 부른다고 고양이가 주인에게 달려올까. 아마도 남편은 강아지들이 주인이 부르면 달려오는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과연 고양이가 그럴 수 있을까. 고양이는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면 앞으로만 달려간다고 한다. 결국 주인에게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는 것인데 이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 줘도 남편은 고양이가 영역 동물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두 번 이렇게 산책을 한 후로 고양이와 같이 산책 간다는 생각을 아예 접었다. 왜냐하면 산책을 갔다 오면 즐거워야 할 텐데 현실은 정말 달랐다. 집에 와서 이동장 문을 열자마자 튀어나온 고양이는 거실 바닥에 몸을 쭈욱 펴더니 사람으로 말하면 그대로 뻗어버리는 것이다. 사지를 쭉 뻗고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피곤했으면 저럴까 싶다. 우리의 생각이 오히려 저 아이를 더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고양이는 사람보다 감각이 뛰어나서 환경에 더 예민하다고 한다. 고양이 귀에는 32개의 근육이 있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귀를 180도 조절할 수 있으니 얼마나 많은 소음이 저 귀에 들어오겠는가. 그러니 고양이에게는 밖에 나가는 것이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많은 소음들을 다 담아두지 않고 자기가 필요한 소리만 듣는다니까 다행이긴 하다. 가끔은 우리 집 냥이를 불러도 들은 척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해가 간다. 무시해서가 아니고 너무 많은 소음 속에 나의 말이 들어있다는 것이니까. 우리가 서로 알고 나면 이해 못 할 것이 없다. 다만 조금 인내가 필요할 뿐이지.
우리는 조금씩 고양이에 대해 그리고 영역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아가가 첫걸음을 떼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가듯 3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하다 보니 표정만 봐도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어머 배고프구나! 어머 심심하니! 어 왜 뭐가 필요해! 이런 모습을 보고 군에 간 막내아들 왈 "내 자리는 이제 없어졌네, 넷째가 다 차지했어" 그러면서도 슬쩍슬쩍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은근 다정하게 말이다.
나에게도 친구가 필요해.
고양이가 친구들과 함께 노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은 외출을 한다. 이건 내 생각일 테지만 말이다. 내가 문 닫고 나가면 고양이는 더 좋아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뭐. 그럴 수 있지. 내가 이렇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도 괜찮지! 가을이 아직 뒷전인가 싶었는데 오늘은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예전부터 비 오는 날은 마음이 차분해져서 나는 이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이 비가 그치면 본격적으로 가을이 오겠지! 떨어져 내린 은행이 보도블록을 노랗게 물들이며 거리가 온통 구수한 냄새 천지다. 구수하다는 이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렇다. 으악!이라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고.
비 오는데 뭐 하니. 맨발 마사지 할래!
염색을 하러 강동역에 나왔다가 J에게 갑작스러운 호출문자를 보낸다. "비 오는데 무슨 맨발! 나 오늘은 패스한다." 그러나 비 올 때 하는 맨발 걷기가 진짜 재밌다는 말에 이끌려 결국 나와 약속을 잡는다. J의 집 근처이기도 하지만 나의 막무가내를 받아주니 고맙다. 오늘은 영어구연동화강의 듣고 모처럼만에 커피 마시며 쉬고 있다는 J는 40년이 넘은 오랜 친구다. 곧 정년퇴임을 앞두고 지금은 쉬고 있지만, 백수가 더 바쁘다는 내 말을 적극 공감한다. 타인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웃음이 많은 그녀가 무엇을 하든 나는 적극 박수를 치며 응원할 것이다. 그만큼 잘할 수 있는 동력이 많다. 그동안 직장에 매여 있었으니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을까. 버킷 리스트를 짜서 실천하고 있다니까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이 눈에 선하다.
친구와 함께 가까운 영역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맨발 걷기를 한다. 우산이 지붕이 되어 마치 내가 가진 하늘인양 좁은 영역이지만 마음은 가장 큰 부자로 걷는다. 가끔 따끈 거리는 돌멩이들이 콕 콕 박혀와 몸이 움찔거린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면서 숲의 기운이 활기차게 느껴진다. 산에서 흘러내는 황톳물을 벗 삼아 첨벙거리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학창 시절 호들갑을 떨던 소녀가 된다. 그랬다. J와 나는 낙엽 굴러가는 모습만 봐도 깔깔거리며 웃었다. 여덟 명의 친구 중에 유독 그런 유전인자를 함께 타고 난 모양이다.
그렇게 뭉친 우리 모임은 팔색조라는 이름을 가졌다.
제각각의 매력 방출! 다양한 면과 색깔을 지니고 지금도 지속하고 있으니,
세상의 어떤 것이 이보다 더 진하게 다가오는 우정이겠는가!!!